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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노해”
이러한 서문으로 시작되는 시집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면서, 우리 문학사에서 비로소 노동자가 쓴 아른바 ‘노동시’라는 범주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적지 않은 시인들이 민중들의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시들을 창작했지만, 그의 시는 시인이 몸소 체험했던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후 박노해의 작품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 현실을 노래한 시’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백무산을 비롯한 노동 현장을 다루는 시들이 적잖게 산출되기 시작했다. ‘노동문학’이라는 범주는 이제 1980년대 이후 한국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작은 박노해라는 노동자 시인의 창작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잇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독재 치하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얼굴 없는 시인‘으로 살아야 했던 당시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의 필명이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의 본명(박기평)도 밝혀졌지만 그의 작품 활동은 여전히 박노해라는 필명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방대한 분량의 시집을 12년 만에 출간했던 시인은,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흐른 금년 301편의 작품이 수록된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펴냈다. ‘시인의 말’이나 다른 사람의 발문조차 없이 그저 시인의 작품만이 수록된 시집은 500면이 넘는 분량이다.
하지만 그의 시집을 읽다 보면, 이 시집이 ‘한 날도 거르지 않고 / 한 자 한 자 피로 쓴‘ 시들 중에서 ‘다시 12년 만에 / 시집을 펴낸다고 원고를 꺼내’서 ‘3천여 편의 / 내 육필 원고’ 중에서 ‘301편을 간추리고 / 3달 내내 빼고 줄이고 / 다시 쓰고 고쳐 쓰고 / 갈아내고 응축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짐짓 자신의 ‘초고는 쓰레기’라고 시의 제목을 붙이지만, 그렇게 세상에 선보이는 시인의 작품들은 이제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인이 초고를 간추리면서 퇴고의 결과로 출간한 시집은 모두 7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항목이 시집 1권 분량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12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써왔던 시들 가운데 간추려서 시집을 낸 이유를 시인은 그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 책이 300부가 팔렸다, 좋다,
3천 부가 팔리고 3만 부가 팔리자
슬그머니 겁이 나고 무서워졌다
10만 부가 되어가자 아이쿠,
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뭔가 잘못 된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10만 명이 읽었는데도 세상 사람들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책은
그냥 간식거리거나 쓰레기일 테니
<‘내 책이’ 전문>
이처럼 시인은 시가 단지 지식이나 흥밋거리로 전락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못된 현실에 매서운 비판이 담겨있고 사람들의 위선을 질타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도,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이들에게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집에는 시인에게 ‘노동자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세상의 끊임없는 비판에 대해서, 그동안 세상이 변하고 시인 자신의 삶과 철학도 변했음을 고백하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이제는 바뀐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시인은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일곱 살의 나를 두고 / 너무 빨리 저 강을 건너고 말’았던 아버지와 ‘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 첫 입사 면접에서 떨어지고 온 날’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는 내용을 소개하기도 한다. 과거 시인이 감옥에 갇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몰래몰래 내 몸 안쪽의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신을 새겨’ 이제는 ‘흰 이부자리에 탁본처럼 새겨’지는 ‘내 몸의 문신’에 대해 힘겹게 토로하기도 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목도하면서 세상을 직시하며 살고 있는 시인에게 ‘그들은 나에게 거기에 /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 요구하’는 이들이 있지만, 시인은 ‘난 이미 여기 와있고 /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는 중’임을 당당히 밝히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토로하고 있다.
새해가 오는 밤에
계획을 지운다
일 년을 꽉 채우려 한
크고 작은 계획들을
하나 둘 지운다
내 몸은 너무 지쳐있다
나는 너무 열심히 달렸고
내 영혼은 너무 숨가쁘다
새해가 오는 밤에
계획을 지운다
긴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비움을 환히 세운다
<‘계획을 지우고 비움을 세운다’ 전문>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작품이라 하겠는데, 나 역시 이 시처럼 계획보다는 그날그날의 현실을 충실히 채우며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살기 위해 ‘느리고 불편하게 살자’는 것을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기려면 오히려 내 삶의 중심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스마트폰이 아닌 2G폰을 고집하면서 SNS에 접속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즐기면서 살려고 한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기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에게는 ‘계획을 지우고 비움을 세우는 삶’이란 매일매일 시를 쓰면서, 자신의 역할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시집의 표제작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인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너무 힘들고 눈물이 흐를 때는 / 가만히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나의 하늘이 어떤 모습인지를 고민해 보아야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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