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임을 밝힌 이 작품의 내용은 그 시절을 겪었던 독자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안겨줄 것이라고 여겨진다. 작품의 배경은 서울의 인왕산 아래 산동네이지만, 당시 전국 어느 곳이나 이와 비슷한 동네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층 양옥집’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 잘 꾸며진 그 정원을 동경하던 주인공 ‘동구’의 모습에서 문득 어린 시절 나를 기억하곤 한다.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난독증(難讀症)’으로 인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만, 자기보다 6살 아래인 여동생 영주는 세 살 무렵부터 글을 읽는 능력을 보여준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아버지의 온전히 견뎌내야만 하는 동구는 그럼에도 동생을 너무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런 동구를 이해해주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서, 방과후 선생님과의 공부를 통해서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1980년 5월에 고향인 광주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선생님의 존재는 독자들에게 당시의 아픈 역사를 반추하도록 한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고부 갈등으로 힘겨운 삶을 견뎌내는 어머니의 위치는 그 시절 여성들에게 부괴되었던 남성 중심의 부당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이 가해지기도 하고, 할머니의 괴롭힘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는 동구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로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상황에서, 부모들의 부부싸움으로 인해 방에서 쫓겨난 두 남매는 마침내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할머니가 아끼는 하나 뿐인 나뭇가지의 감을 따려는 동생을 밑에서 올려주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영주가 다치고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가족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가고, 부모의 재결합을 바라는 동구는 할머니의 고향으로 가서 함께 살겠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가슴이 아려왔다.
가족의 희망이자 즐거움으로 여겨졌던 동생 영주가 없는 상황에서 동구는 ‘나도 영주 없이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정원이 있던 산동네를 떠나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되고 있다. 아마도 동구네 가족은 이전처럼 화목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산동네와 이웃들, 그리고 그 아름더운 정원은 동구에게 앞으로 살아갈 추억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너무도 아련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문득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