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를 잃다’
김승 시인
기댈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더 이상 등이 시리지 않았다
뭍에서 점점 멀어져 가던 섬의 심정이 이랬을까
고래처럼 높게 분수를 쏘아보지만
갈매기 등에 펼쳐진 노을은 무지개를 만나지 못했다
석양도 길을 잃는 바다 한가운데
날아도 날아도 멀어지는 수평선
그러다가 순간 넘어가는 저승처럼
등이 있다는 걸 잊고 나니 등이 아프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가슴 후벼 파는 사랑은 언제쯤 했는지
애절했던 눈동자 비에 젖은 머리칼과 엎질러진 커피가 겹치고
붉은 우산을 든 그녀와 절룩이던 하이힐
가는 어깨 위로 내리던 늦가을 빗줄기가
하나 되어 흔들리던 무채색 거리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 들리던 긴 경적은 이명처럼 떠나지 않고 있다
허물어질까 서로 등도 기대지 못했던 바닷가 여인숙
풍어의 핏빛 깃발을 흔들던 비바람 속 사랑도
또다시 익숙한 헤어짐을 약속하는
라면과 취기와 젓가락 장단에 멀어져 갔는데
또각또각 멀어지던 구두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 시작노트
인간의 육체를 떠받치는 것은 척추이다. 그러나 삶을 떠받치는 것은 사랑이다.
그분으로부터의 사랑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성 간의 사랑 등
온갖 사랑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사랑한다는
이유로 헤어지며, 사랑한다면서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타나토스적인 충동에
또 얼마나 빠져들었던가? 그런 잘못된 열정으로 얼룩진 청춘 또한 나의 삶.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때 그런 열정마저 그립다.
◆ 김승 시인 약력
- ‘시와편견’으로 등단
- ‘시와편견’ 공동 주간, 월간모던포엠 자문위원
- 시집 ‘속도의 이면’, ‘시로 그림을 그리다’, ‘오로라 &오르가즘’,
‘물의 가시에 찔리다’ 외 동인시집 다수 공저
- 시사모 동인회 회장
현대시학 작가회, 모던포엠 작가회, 시와편견 작가회 회원
- 경영학 박사
출처 : 경남연합일보(http://www.gn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