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스트릿저널]투-포수간 거리 18.44m에 담긴 비밀
조회수 4.3만2022. 08. 06. 11:49 수정
[볼스트릿저널]투-포수간 거리 18.44m에 담긴 비밀 | 민훈기의 인생야구 (daum.net)
야구는 숫자와 기록과 통계로 이루어진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야구의 수많은 숫자 중에 60피트 6인치, 18.44미터라는 거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로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입니다.
60피트 6인치를 ‘야구의 신성한 숫자’, 이렇게 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이 거리가 규정으로 정해진 1893년을 야구의 원년이라고 합니다.
야구 투수판부터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가 어떻게 해서 18.44미터가 됐는지 그 기원을 한번 찾아들어가 보겠습니다.
미국 최초의, 즉 세계 최초의 조지적인 야구팀으로 인정받는 1845년 뉴욕 니커버커스
미국 최초의 조직적인 야구팀으로 인정받는 뉴욕 니커버커스(New York Knicker Bockers)는 1845년에 생긴 팀입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 인근에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Alexander Cartwright)라는 분이 지역의 청년들을 모아서 야구팀을 결성을 했습니다. 미국 야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트라이트가 니커버커스라는 클럽을 만들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나 하게 되는데, 최초로 성문화된 야구규정집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그 최초의 야구 규정집을 찾아봤더니 홈플레이트부터 투수판까지 거리가 뚜렷이 나와 있는 부분이 없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 거리가 별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초기 야구의 규정을 보면 ‘투수는 공을 배트에 맞을 수 있도록 잘 던져줘야 된다.’라고 투수의 의무로 규정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투수는 언더핸드로 타자가 정확히 칠 수 있게 잘 토스해주고 재빨리 피하는 것이 투수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니까 초창기 야구에서는 사실상 투수부터 타자까지 거리, 뭐 이런 게 별 의미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 일대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이라기보다는 한 인물이 출현이었습니다.
짐 크레이턴(Jim Creighton)이라는 분이 등장해 투수의 역할과 야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미국야구 사상 최초의 스타플레이어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짐 크레이턴 투수,
1841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크레이턴은 어려서부터 운동도 잘했고, 특히 크리켓 선수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1857년 브루클린에서 만 16세 때부터 클럽 야구팀에서 투수로 뛰기 시작했고, ‘역사상 최초의 야구 스타’로 떠오를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특히 1860년 브루클린에 엑서시어스(Excelsior of Brooklyn)라는 팀에서 투수를 했는데 이때부터 사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크레이턴은 독특한 자신의 투구 동작과 구종을 개발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스피드와 스핀으로 타자들을 농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야구 역사가는 그의 피칭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짐 크레이턴의 피칭은 야구에 핵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엄청난 파급 효과로 야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당시 동영상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크레이턴의 투구를 역사책이나 아니면 당시 기사나 이런 데서 추정을 해 보면 아마도 요즘의 서브마린 투수 같은 그런 동작으로 공을 던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기존의 투수처럼 그냥 공을 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골반과 허리와 손목을 사용해서 스피드와 스핀을 만들면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이 크레이턴이라는 투수가 나오면서 야구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당시까지는 그야말로 타격 일변도의 야구였기 때문에 32대 27, 28대 19 이런 스코어가 당연시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크레이턴이 나선 경기는 22대 3, 28대 6 이렇게 한 팀이 저득점 경기가 나오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크레이턴이 너무 까다롭고 어려운 공을 던지니까 타자들이 꼼수를 부립니다. 웬만하면 안치는 겁니다. 어려운 공이 들어오면 안치고 계속 기다리다가 실투나 가운데로 공이 오면 그제야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요즘의 ‘루킹 스트라이크’라는 규정이 그 당시에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10개고 15개고 투수가 던지는 걸 마냥 기다리다가 타자들이 좋은 공만 골라 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모든 타자들이 이용규처럼 많은 공을 던지게 한건데, 다만 파울볼이 아니라 그냥 마냥 서서 기다려도 무방했습니다. 한 타자에게도 열 몇 개씩, 한 이닝에 50개 넘게 공을 던지고, 때로는 한 경기에서 200개 300개 이렇게 공을 던지면서 크레이턴이 굉장히 혹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62년 한 경기 도중에 갑자기 쓰러집니다. 잠시 후 일어나서 그 경기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심하게 앓다가 사흘 후에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맙니다. 아마도 탈장과 장파열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의사들은 추정을 하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1862년 만 21살의 나이에 ‘야구 최초의 스타플레이어’ 크레이턴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아주 널리 퍼졌고, 또 많은 투수들이 그의 투구 동작, 그의 공을 따라하게 됩니다. 그러자 점점 타자들이 힘을 못 쓰게 되죠.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2년 후에 드디어 홈플레이트부터 투수판까지의 거리가 규정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 처음 생긴 규정은 48피트, 그러니까 14.63미터로 현재보다 훨씬 짧은 거리였습니다. 대신 투수 박스가 생겼다고 합니다. 길이 90cm 정도 되는 네모 박스를 그려놓고 투수가 그 안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는데, 그보다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마냥 기다리던 타자들에게도 그저 경고만 하는 게 아니라 1863년에 루킹 스트라이크 규정이 도입됐습니다. 아울러 볼에 대한
또 규정도 도입됐습니다.
그리고 1886년에 America Association이라는 리그에서 현대 야구와 흡사한 스트라이크 존을 도입하게 됩니다.
야구는 구체적인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존, 투수판과의 거리 등의 구체적인 규정이 도입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훨씬 흥미로운 스포츠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명투수 크레이턴 사망 후 투수판부터 홈플레이트가지의 거리, 투수박스 등 새로운 규정이 도입되며 야구는 새로운 인기 소포츠로 도약하게 됩니다.
짧게 살다가 간 크레이턴이라는 투수는 야구를 정말 크게 변모시키고 떠나갔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투수력은 갈수록 점점 발전하고 강해지면서 48피트 거리로도 타자들이 당해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1880년대가 되자 리그 타율이 점점 더 떨어져서 2할 4푼대 밑으로까지 떨어지게 됐고, 타자의 삼진도 3년 동안 3배 이상이 확 늘어났습니다. 공격 야구가 힘을 잃으니까 팬들로서는 흥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요즘도 야구는 투수가 너무 강하다, 타자가 너무 강하다 해서 규정을 변경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자들에게 조금 더 이점을 주기 위해서 쓰리 스트라이크를 포 스트라이크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또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도 55피트 5인치로 늘리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이런저런 변화를 모색을 하다가 1893년에 드디어 60피트 6인치, 18.44미터라는 오늘날의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간의 거리가 도입됩니다.
자 그런데 왜 하필이면 60피트 6인치였을까요? 60피트로 했으면 간단하고 편했을 텐데요.
아마 이 얘기는 들어보신 분들이 분명히 꽤 있으실 거예요. 원래는 60.0피트라고 써서 줬는데 운동장 관리인이 갈겨쓴 메모를 잘못 읽어 60.6이구나 라고 오해해서 처음 규정을 적용할 때 60피트 6인치라고 만들었다는 이야기.
원래는 그러니까 18.44미터가 아니라 18.29미터였는데 실수로 이렇게 길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그건 완전 낭설이랍니다.
원래부터 60피트 6인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만 왜 딱히 그 거리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만약 15cm가 짧아졌다면 야구는 또 완전히 바뀌었겠죠. 1루, 2루까지 간격들도 다 바뀌었을 테고, 사실 5cm, 2cm 차이로 세이프 되고 아웃이 되는 게 야구니까 15cm가 줄었으면 투수가 훨씬 유리해져 타자들이 고전했겠죠? 아님 베이스까지 거리가 줄어 수비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을까요? 저마다 유리하고 또 저마다 힘들었을 테니 야구는 또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화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으면서 1893년에 60피트 6인치가 도입됐고, 그 거리는
100년이 훨씬 넘은, 1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크레이턴이 던지는 경기로 추청되는 경기를 그린 그림
하지만 이 거리가 영원히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베이스의 크기를 살짝 크게 만들어 주자들에게 좀 유리하게 만든다든가, 혹은 투수판을 조금 뒤로 미루자 미뤄보자는 시도들도 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130년 넘게 지켜온 60피트 6인치, 18.44미터의 거리가 규정으로 도입되기 까지는 이런 롱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야구의 근간이 되는
아주 소중한 숫자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볼스트릿저널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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