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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동산의 모든 축복의 모습과 하와의 부족한 말을 생각해 보며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1-6)
1. 은성아, 오늘 창세기에서 사탄이 하와를 어떻게 유혹하며, 하와와 아담은 어떻게 죄를 짓게되었는가를 배웠다. 아무리 배우고 또 배워도 죄와 죄의 전가란 신비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받고 믿으며, 죄의 결과로 받게 될 진노와 형벌에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이다. 그런데 하와가 뱀과 주고받은 말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2. 먼저 에덴 동산의 모든 축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다 만드신 후에 흙으로 사람을 지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에서 살도록 하셨다. “에덴”이란 “기쁨, 즐거움”과 “풍요함”이란 의미가 있고, “동산”은 경작을 위해 둘러싸인 장소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얼마나 좋은 곳을 마련하셨는지를 잘 알기 위하여 매츄 헨리의 설명을 읽어 보자.(Bible 25 앱 창세기 2,3장에서)
(1) 아담이 거주하도록 정해진 곳은 동산이었다. 그곳은 상아로 만든 집이나 금으로 입혀진 궁전이 아니라 동산이었는데 그것도 기술자로써가 아니라 자연으로 꾸며지고 장식된 동산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이 사는 집의 지붕은 하늘이었다. 하지만 어느 지붕이 그처럼 기묘하게 꾸며지고 단장될 수 있겠는가! 또한 땅은 그의 마루였으며 그 어떤 마루도 그처럼 훌륭하게 단장될 수 없을 것이다. 나무 그늘이 그의 휴식처였고 그 아래가 그의 식당이며 침실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들도 이곳들보다 멋있게 꾸며질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솔로몬의 영광도 이 모든 영광과 견주어 볼 때 이것들만 못하였다.
(2) 하나님께서 친히 지혜와 능력으로 이 동산을 고안하고 설비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동산을 창설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시고 정하신 것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영혼을 만족시키거나 기쁘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곳이 아니고서는 아무 데도 참된 낙원이 될 수 없다.
(3) 이 동산의 환경은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이 동산은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에덴이라는 곳에 있었다. 그 장소에 대해서는 특별히 여러 가지 특징과 경계로써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4) 이 동산에 심겨진 나무들
1)이 동산에는 모든 가장 좋은 나무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아담의 유익뿐만 아니라 그의 즐거움도 고려하셨다. 죄가 없는 곳에는 변치 않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2) 이 동산에는 특별한 두 나무가 있었다. 그 한 나무는 ‘동산 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였다. 이 나무는 아담에게 그가 무죄한 상태로 계속 순종만 하면 창조주가 베푸는 은혜로 말미암아 장수와 행복을, 더 나아가서는 불멸과 영원한 축복까지 받게 될 것을 보증하는 징표와 인증이 되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아담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또 영원히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신다(계 2:7; 22:2). 또 하나의 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무엇이 선인가?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이 선이다. 무엇이 악인가?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악이다.
(5) 이 동산을 적시는 강들이 있었다(10-14절). 이 네 강(혹은 한 강에서 갈라져 나온 네 지류)이 동산의 쾌적함과 비옥함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에덴에는 그보다 무한히 더 좋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생명나무와 하나님과의 교제였다.
은성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덴 동산이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며 아담과 하와와 만나고 교제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왜 에덴 동산에 기쁨과 생명의 풍요로움이 가득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며 예배를 받으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에게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아담은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다(창 2:20). 이렇게 하신 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권한을 주신 것인지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친히 하와를 준비하여 돕는 배필로 주셨다(창 2:20-23). 참으로 부족함이 하나도 없도록 모든 것을 마련하여 주신 하나님이시니 아담과 하와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뻐하고 만족하며, 감사하고 찬송해야 마땅했다.
3. 은성아, 뱀의 질문에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는 말을 했는데 동산 중앙에는 무슨 나무가 있었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지 말라고 하셨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가끔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그런데 생명나무를 마련하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 좋은 것, 더 충만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눈을 돌리고, 일부분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만 마음과 눈을 집중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탄이 말하는 것만 바라보며 사탄의 간사한 의도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에게는 늘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다. 칼빈 선생님도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셨는데 조금 어렵더라도 찬찬히 생각하면서 두세 번 읽어보면 고개를 끄떡일 수 있을 것이다.
11. 하나님의 작품들만 동경하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헛됨과 어리석음
그러나 비록 여호와가 자기의 작품이라는 거울 속에 그 자신과 그 자신의 영원한 나라를 아주 명백하게 표상하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토록 명료한 증거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무뎌져서 그것들이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고 사라지게 한다.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다양한 지역의 땅들을 두루 돌아보며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구조와 배열에 관해서 말하면서도, 창조주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되새기기는커녕 그것들의 조성자를 배제시킨 채 그 작품들의 외관만 동경하고 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통상적인 과정을 벗어나서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그것들에 휘둘리고 나뒹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운명의 맹목적인 무분별함의 통치를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때때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그러하듯이, 그러한 사건들의 인도와 지도로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어떤 신성에 대한 의식을 무모하게 마음에 품기 시작하면, 곧바로 우리 육체의 광기와 사악한 허구들에 빠져들어 우리의 덧없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오염시키고 만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범하는 고유한 오류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나, 한 분 참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괴상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다. 평범하고 무딘 천품을 지닌 사람들이나 아주 탁월하고 어떤 특별한 예리함을 지닌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질병에 걸려 있다.
존 칼빈 지음, 『기독교 강요 1』, 문병호 옮김, 215.
4. 은성아, 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욕심을 따라 불평과 불만을 크게 보려고 할까? 바울 사도가 한 말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사탄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지었던 것이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8-10). 하와가 뱀의 말을 들으면서 벌써 그녀의 마음에는 수건이 덮이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그녀에게 참된 경건이 있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영광의 주”를 신앙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눈과 마음을 돌려 자기를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품으로 달려간 것이다.
하와를 비롯한 우리들의 잘못을 잘 알려주시는 칼빈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내가 경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결합된 경외심인데,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지식이 그것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빚지고 있다는 것, 자기들이 그의 부성적(父性的) 돌보심에 의해서 양육된다는 것, 그가 그들 자신에게 모든 은총을 베푸는 조성자시라는 것을 지각해야만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밖에서 찾지 않게 된다. 이렇듯 전적으로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자기를 그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안에서 자기의 순수한 행복을 만들어 가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자기 전부를 진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그에게 바치지 않을 것이다.
존 칼빈 지음, 『기독교 강요 1』, 문병호 옮김, 174.
5. 은성아,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지식”이 경건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다한 자발적 복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씀이 너무 좋구나. 하와도 그러했고, 그 이후의 사람들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거나 왜곡되어서 경건에서 떠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니? 우리는 에덴 동산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세상을 바라볼 때에 청교도가 전해주는 가르침을 잘 배우기를 소원한다.
그러므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거든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 얼마나 위대하시고 아름다우실까?’를 생각하십시오. 자기보다 강한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해와 달을 연구하여 수년 전부터 미리 일식과 월식을 알아내는 인간의 지혜를 보거든 ‘피조물인 사람을 이렇게 지혜롭게 만드신 하나님은 그 얼마나 지혜로우실까?’를 생각하십시오. 고래와 코끼리의 힘, 폭풍우와 천둥의 위력을 보거든 ‘이렇게 강하고 두려운 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 얼마나 강하시고 위대하시고 두려운 존재이실까’를 생각하는 지혜를 가지십시오.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거든 ‘이렇게 달콤한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실까’를 생각하십시오. 꽃과 새들이 지닌 고운 색깔과 사랑스러운 자연의 광경을 보거든 ‘이것들을 만드신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실까’를 생각하십시오.
루이스 베일리, 『청교도에게 배우는 경건』, 조계광, 안보현 옮김. 126-127.
6. 은성아,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자. 사도는 에베소서 1장에서 인사를 한 후에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야기하고,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그 기도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자.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16-23)
창세 전에 예정을 입어 구원을 받고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이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알아야 할 내용이 얼마나 놀라운지 항상 묵상하기를 소원한다. 특히 부활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진한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베푸신 은혜도 놀랍지만 우리에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항상 붙들고 읊조리고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으로 충만해서 사탄과 세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시고(엡 5:18), “말씀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골 3:16). 흥미로운 것은 에베소서 6장에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는 마귀의 간계를 물리치지 못하고 넘어졌지만(고후 11:3),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당당히 서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시험을 받을 때는 항상 예수님처럼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라고 선포하여야 한다. 사탄이 주려는 그 어느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요,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나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잠시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로 이끄는 것임을 명심하면(잠 14:12),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것이다(계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