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0
5. 사하촌(김정한) 줄거리
타작마당,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에 지렁이 한 마리가 개미 떼에 물어뜯기며 바둥거린다. 극심한 가뭄이다. 치삼 노인의 아들 들깨는 논에 물을 대려고 나갔다가 허탕만 친다. 그 알량한 보광사 중들이 죄다 그들의 논으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성동리 농민들 대부분이 보광사의 땅을 부치고 사는 소작농들이다. 치삼 노인은 중의 꼬임에 빠져 보광사에 논을 기부하고는 이제 그 논을 소작하는 신세이다. 절은 불공을 드린다고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고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는 횡포를 부린다. T시의 수도 출장소에서는 농민들의 폭동이 염려되어 잠깐 수도 저수지의 물길을 튼다. 그러나 생색만 낸 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서 물싸움이 벌어지고 인심만 흉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들깨는 눈에 물을 댈 수 있었는데, 고 서방이 물꼬를 터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고 서방은 연행된다. 성동리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보광사 역시 기우 불공을 드리지만 아무런 영험이 없다.
가을이 되었으나 추수할 것이 없는 정도의 흉작이었다. 다행인 것은 고 서방의 석방뿐이다. 어느 날 상한이, 차돌이는 알밤을 줍다가 산지기에게 들킨다. 도망을 치다 상한이는 굴러 떨어져 죽고, 그 할머니는 미치고 만다. 보광사에서는 흉작임에도 예전과 똑같이 소작료를 요구하고, 성동리 농민들을 대표한 고 서방, 들깨, 또줄이 등이 선처를 호소하나 거절당한다. 그리고 며칠 뒤, 고서방의 논을 비롯한 여기저기 논에는 '입도 차압'이라는 팻말이 붙고, 고 서방은 결국 야반도주하고 만다.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자 성동리 농민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하기 위해서 빈 짚단을 들고 보광사로 향한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늬에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든다. <조선일보>
핵심 정리
갈래 : 농민 소설
배경 : 시간(일제 중기). 공간(한밭에 시달리는 보광사 가까이 있는 농촌)
성격 : 사실적
문체 : 간결체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제재 : 모순된 농촌 현실
주제 : 농민을 통한 민족적 현실의 모순 비판과 농민 의식의 발현.
모순된 농촌 현실에서 수탈로 고통받는 모습과 현실 극복의 의지.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의지
부조리한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저항 의지
등장 인물
치삼 노인, 들깨, 철한이, 또줄이, 봉구, 고 서방 등 : 절 땅을 소작하며 고생하는 성동리 사람들
보광사 중, 순사, 군청 주사, 간평원 등 : 성동리 농민을 학대, 착취하는 계층
이해와 감상1
일제 아래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가뭄과 무자비한 소작료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봉기한 사하촌의 농민과, 지주이자 특권 계급인 보광사 승려와의 대립을 보여 준다.
작가 김정한의 작품 세계는 첫째, 역사를 과거의 일로만 묻어 버리지 않고 현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둘째, 전통적이며 토속적인 것을 강조한다. 셋째, 독자의 기준을 도시의 지식층보다 농촌 출신의 청년들에게 두고 있다. 넷째, 농촌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순수한 우리말을 되도록 많이 쓰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사하촌>이다.
김정한은 어느 작가보다도 치열하게 농촌 사회의 현실을 현장 속에서 깊이 투시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문학 세계는 특별한 소설 시학적인 국면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신에 현실을 보는 작가로서의 대담한 정직성과 고발적인 즉물성을 중시한다.
<사하촌>의 공간적 배경은 일제 아래 소작농들이 모여 사는 농촌 마을이며, 시간적 배경은 가뭄이 심한 초여름이다. 이러한 배경이 모순된 현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며, 작품 속에서 전개하는 갈등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보광사'라는 절 소유의 땅을 소작하며 살아가는 성동리 마을 농민들을 통하여 가뭄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흉년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소작료를 모두 바쳐야 하는 모순된 농촌 현실을 갈등의 원인으로 보여 주는 이 작품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싸우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린 농촌 소설의 한 유형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가뭄이라는 자연 재해와 소작 제도의 모순을 보여 준다. 일제 아래 시달리는 성동리와 보광리라는 두 농촌을 통해서 일제 수탈의 앞잡이인 순사. 군청. 주사. 농사 조합 평의원. 보광사 중들로 이루어진 지주(지배 계급)측과 이들에게 시달리며 빼앗기고 천대받는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 <사하촌>은 민족 운동의 계몽성과 사회주의의 목적성을 표방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농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웅, 김병학
이해와 감상2
'사하촌'은 일제 강점기의 가난에 찌들리고 모순된 농촌 현실 속에서 가뭄과 지주의 무자비한 횡포를 겪으면서 농민 스스로 연대 의식을 필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처음에 1930년대, 일제하 농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만신에 흙고물칠을 해 가지고 바둥바둥 굴고' 있으며, '새까만 개미 떼가 물어 뗄 때마다 한층 모질게 발버둥치는' 지렁이는 바로 가난과 가뭄, 소작료, 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빈농의 모습이다. 이러한 빈농의 대표적 인물인 치삼 노인은 신경통 통증에 시달리면서 미꾸라지를 찧어 바르려고 미꾸라지와 씨름을 벌이고 각혈까지 하는 참담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일제 말기의 사찰은 민족적 현실과 등을 진 경우가 많았는데, 법당 안에 '황군 무운 장구(皇軍武運長久)'라는 팻말이 서고 신도들이 준 땅이 많은 절일수록 대지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승려들과 일제의 압제 밑에서 절 밑에 사는 사람들, 즉 사하촌 사람들은 갖은 학대와 착취에 시달린다. 가뭄으로 흉년이 든 해에도 절에서는 소작료를 강요한다. 불응하는 사람들은 땅에 떨어지고 잘못하면 억울한 죄명을 쓰고 경찰에 끌려간다. 배고픔을 못 이겨 고 서방이 야반 도주를 한 얼마 후, 들깨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이삭이 맺지도 않은 빈 짚단을 들고 절로 향한다. 마지막 탄원을 위함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농민들의 소작 쟁의 행렬을 그리고 있으며,곡식이 달리지 않은 빈 짚단이나 콩대,메밀대 들을 손에 들고 가는 사태는 지주의 본거지에 불을 질러버릴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연 재해와 소작 제도의 모순 속에서 일제와 친일 승려들에게 횡포를 당하는 농민들의 저항은 이렇듯 명백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결코 극단적이지는 않다. 최서해의 '홍염'도 일제 치하에서 불합리하게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피폐상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가난한 이들의 저항적 행동이 살인과 방화 등으로 나타나 파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한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낼 뿐 결코 파괴적이지는 않다. 즉, 일제 수탈의 앞잡이인 순사, 군청 주사, 농사 조합 간평원, 보광사 중들로 이루어진 지주 계층과 이들의 횡포에 당하기만 하다가 드디어는 생존의 명백한 방식으로 저항을 택하는 소작인들의 대립을 보여 주되, 작가는 '사하촌'을 계몽주의적 민족 운동의 한계성과 사회주의 계열 문학 운동이 지나친 관념성, 목적성을 동시에 벗어날 수 있는 농민 소설로 승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