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우리는 삼무곡에서부터 호산까지의 짧은 도보 여행을 나섰다. 하염없는 시골 풍경만이 계속되는 거리,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담백한 길이었다.
길을 나서기 전, 현곡께서는 ‘피안의 언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부처님의 반야심경의 마지막에 “아재 아재 바라아재 바라승아재 모지 사바하.”라는 말에서 나오는 말로, 내가 이해한 바로는 순수한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하는 듯했다. 이에 관하여 현곡은 일본 불교의 여러 고승들에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셨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스님은 한 시간 참신하면 한 시간 부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출발하기에 앞서 현곡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삼배를 올린 뒤 우리는 각자의 페이스대로 걸음을 옮겼다. 각자의 걸음이 향하는 대로 걷는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나와 동혁이, 금조, 주환이가 한 그룹이 되어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서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워크샵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크게 마음 쓰는 일 없이, 그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며 걸었다. 몸 또한 힘들면 쉬고, 적당히 쉬었으면 걸으면서 갔다. 가벼우면서도 깊이 있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얻은 소득도 적지 않았다.
특히 내려놓고 보니 알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삼무곡에 왔을 때부터 내가 규제나 명분, 관념 같은 것에 많이 매달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 명분을 찾는 것에 급급했다. 관계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그 이름으로 부르길 주저했고, 항상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만한 대중적인 이름을 찾는데 열심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내가 나인 것에 있어서, 이를 남에게 증명하고자 나는 아직도 그 명분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그렇게 진짜 내 이름을 꼭꼭 숨기다보니, 밖으로 내비치는 것 자체를 꺼리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거기다 내 스스로를 감추고 타인을 경계할수록, 자연스레 타인에 대한 존중 역시도 점차 잃어가게 되었다. 결국 나와 맞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서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을 낯설고 희미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애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가며 길을 걷고 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그저께 이미 이 길을 통해 한 번 호산으로 나갔었는데, 왜인지 그때에 비해 오늘은 시간이 더 오래걸렸다. 그러다 보니 결국 예정된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나의 도보 여행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지친 채로 식당에 도착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식당은 중식당. 그때 나와 같은 테이블는 윤하, 하린이, 주환이가 있었다.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고, 심심하게 음식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 짜장과 짬뽕이 나오기 전에 군만두 네 개가 먼저 나왔다. 나는 짜장이 나오면 같이 먹기 위해 지금 먹지 않고 남겨두었는데, 하린이는 미리 자신의 군만두를 먹었다. 만두가 나오고 나서 짜장 짬뽕이 나오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많이 비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내가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던 사이, 하린이가 대뜸 또 하나의 군만두를 집고 있는 것이었다.
“야, 뭐해? 지금 우리가 네 명인데 네가 두 개 먹으면 나머지 한 명은 못 먹게 되잖아.”
내가 말했다.
이에 하린이가 작은 탄식을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후 짜장면이 나오고 먹기 시작하자 하린이가 주환이에게 물었다.
“주환아, 너 군만두 안 먹지?”
주환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주환이 옆에 있던 내가 다시 한번 주환이에게 물어보자 주환이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이건 내가 먹을게.”
하린이가 군만두를 집어 갔다.
이후 열심히 짜장면을 먹고 난 후 같은 식탁에서 먹은 애들의 그릇을 보니, 주환이와 하린이는 면을 많이 남겼다.
주환이에게는 주환이가 면을 잘 먹지를 못하자, 먼저 짜장면을 다 먹은 내가 주환이에게 미리 물어보았다.
“음,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하린이는 주환이의 군만두를 먹고서 본인 짜장면을 다 먹지 못했다.
나는 진작에 내 그릇을 비우고도 배가 남아 같은 식탕 애들이 밥 먹는 걸 구경하고 있었었다. 체감상 오랜 시간 동안 애들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난 후, 나는 같은 테이블의 애들이 다 일어나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남겨진 식탁 위를 바라보며, 속에서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빡침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방금 전까지 몸을 힘들게 굴렸기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일이 지적질 할 마음도 없었다. 애초에 잘잘못 따지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못난 짓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속에서 삭히고 있는 이 깊은 빡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식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쟨 왜이리 욕심이 많을까’ ‘욕심이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없어. 그런데 그걸 어떤 식으로도 다스리려 하지 않는 건 네 문제지’ ‘물어봤을 때 제대로 말을 해야지’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내 모자람으로 남을 헐뜯는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목욕탕으로 향하던 와중, 문득 깨달았다. 나의 피안의 언덕에 대하여 말이다. 피안의 언덕을 향해 도보 여행을 나섰다는 건, 그리고 그 과정 안에 의미가 있다는 건 결국 내게 주어진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가 있는 곳이 피안의 언덕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지난 날 하반하 학교에서 여행을 다니던 시절, 나는 규율에 관하여 굉장히 엄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규율은 관계를 정의 내리는 편리한 창이었고, 나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당시의 습관이 남아있었기에 나는 오늘날 식당에서 윤하, 하린이, 주환이와 식사를 할 때에도 내 안의 규율을 통해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며 스스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음식이 나왔으면 그 음식의 양과 먹는 입을 고려해 자신에게 할당될 양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규율이다.
내가 알기로, 한 식탁에서 가장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는 수저를 들지 않는 것이 규율이다.
내가 알기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먼저 남에게 양보하고, 대놓고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규율이다.
내가 알기로, 음식을 남길 것 같으면 미리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규율이다.
그러나 오늘,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 나는 이러한 규율이 무심히 깨지는 것을 봐왔다. 그때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느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묵묵히 그 순간을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내 스스로가 편하자고 맹신했던 규율을 버리지 못했기에 내 안에서 일어난 수라도인 셈이다. 이런 맹신과 신념. 오늘날 당신이 신봉한 신앙은 무엇이었는가.
어쨌거나 이러한 하루를 통하여 내가 들은 한 말씀은 이것이었다.
“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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