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양
우리가 인지하는 대부분의 기억은 쉽사리 휘발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샌가 같은 패턴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기계 같은 삶에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우주처럼 아득한 곳이라면 그 먼 곳에 두고 온 것들은 어쩌면 추억이라는 이름의 천체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애프터 양’은 멀어져 가는 인간과 인간의 기억들 사이에 간극을 조금씩 좁히려 한다. 한걸음 안에 있던 따듯하고 다정한 순간들, 사려 깊이 전해지던 배려, 상실로 인해 생기를 잃어가던 공허한 눈빛들을 포착해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곳이 아닌 그 자체로 서있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되돌아 본적이 있나 묻고 있다.
제이크와 키라, 미카 그리고 양
영화의 시작은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프레임 앞에선 세 사람은 제이크와 키라, 미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처럼 짐작되는 양은 그들의 부름에도 좀처럼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의 요청으로 겨우 함께 찍게 된 4인의 가족사진 그 속엔 중년의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 오누이로 보이는 동양인 자녀가 함께 하고 있다. 영화는 어떤 이유인지 밝히진 않고 제이크와 미카 부부가 중국인 아이 미카를 입양했고 아이의 정서적 문화적 함양을 위해 테크노 사피엔스인 양을 구입해 가족의 일원이 되게 된다. 제이크는 차(茶) 상점을 운영하며 차에 빠져 있고 키라 또한 기업에 임원이라 육아에 전념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들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것은 양이다.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로 보이지만 사회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사라지진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카는 인종이 다른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진짜 부모는 어디 있냐는 폭력적인 말을 들어야 했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양은 과실수가 있는 정원으로 아이를 데려간다. 거기서 미카에게 ‘접붙이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네가 좋아하는 사과는 이 나무에서 열리는데 잘 영근 과일이 달리려면 이 나무가 자라는 와중에 다른 나무와 붙여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우린 서로 다른 형태로 만났지만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쳐 동화되어 가는 거라 말해준다. 영화는 이런 장면을 통해 아이에 대한 위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제이크의 가족들은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키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양’을 수리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가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였는 지, 양에게 저장된 기억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돌아보게 된다. 양의 메모리엔 제이크와 키라 그들의 입양 딸인 미카와 함께한 순간들 뿐만 아니라 이전에 함께 했던 가족들과 보낸 시절과 사적인 장면까지 담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겪어내는 생로병사, 감정의 유대 같은 학습된 프로그램에 없는 것들을 알아가게 된다. 기억을 쌓아서 빚어내고 그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는 인간이고 싶은 바람이 생긴다. 양은 말한다. “제게도 차(茶)가, 그냥 자식이 있으면 좋겠어요.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해요.” 그의 간절함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작동이 멈추고 더 이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후에야 알게 된다. 그의 기억에 관한 기록은 우리가 어느 순간 놓아버리고 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이란 사실이다.
나무의 질감
‘애프터 양’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지만 기존에 비슷한 장르에서 느껴지던 금속성 질감이 배제된 듯한 인상을 준다. 장면들을 살펴보면 양의 시점 쇼트로 진행되는 컷들에서 보이는 창으로 내리는 햇살, 나무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장면들은 숲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하다. 음악의 쓰임 역시 그렇다. 초반 시퀀스에 나오는 가족단위 댄스대회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음악들은 피아노와 마림바, 첼로로 연주되는 독주 음악을 엠비언트로 깔고 있다. 이것은 sf지만 인간 내면에 따스한 정서를 표현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과 호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이크는 차를 우려낸다. 씨앗은 싹에서 나무가 되고 잎은 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초반부에 그의 가게에서 한 손님은 가루로 된 차가 없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 손님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계단은 잎과 가루에 대해 차이는 계급적 문제로 인식하는 손님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차는 차일뿐이다. 가루든 잎이든 우려낸 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져도 같은 뿌리 비슷한 줄기를 가졌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며 우리는 얼마나 미세한 차이로 서로를 구분 지으려 하는 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코고나다 감독에게 나무의 질감은 sf라는 장르의 차가운 이미지와 대비되는 정서를 가져와 주제를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I Wanna Be
양은 미카에게 20세기의 노래를 알려준다.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 삽입곡 <glide>였다. 나는~ 가 되고 싶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0과1로 연산되는 결과가 아닌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태 없는 것이 생겨난 양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메모리에 저장된 기억들은 거울속에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려던 그는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원본을 복사해 나온 존재는 가짜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보드리야의 물음에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있는 가 ‘애프터 양’에게서 받은 질문들을 곱씹어 본다. 나는 나인가?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나?
첫댓글 선댓글 후감상 ㅋㅋ
잘 읽어보겠습니다~
간만의 리뷰이신거 보니
간만에 좋은 영화 접하셨나 봅니다 ㅎㅎ
꼭 볼께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봐야겠네요.
리뷰 잘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의 영화였군요 보고싶네요 리뷰 잘봤습니다
요새 파친코 보는데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라 하니 관심이.
소대가리님 리뷰를 읽고나니
꼭 보고싶은 영화가 되었네요~^^
저는 심플하게..기계의 오래된 저장까지 다 들여다 보는 인간의 욕심이 저는 좀 불현했어요
점점 더 기계화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조명 같은
내용을 알아서 실망하기보단 더욱더 어찌 표현했을까 궁금한 영화예요.
바로 영화관에 달려갈 순 없지만 보고싶음 리스트에 넣어 꼭 조용히- 보고 같은 것을 느껴보리라 생각합니다.
sf장르라는데 너무 따뜻한 느낌이네요..포스터도요..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보고싶게 만드는 소대가리님의 영화평♥︎
영화 보고 소대님 글을 읽어야 겠어요.
ㅋㅋㅋ 댓글만 남깁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 내가 나로 증명 되는 것은 내가 가진 개성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공각기동대의 다치코마들이 생각나요. ㅎ
다치코마 모두 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그들이 학습을 통해 다른 취향, 개성이 생기고..
자신들 만의 도덕적 기준도 생깁니다.
감정적 교류를 통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ㅎㅎ
그것 만으로도 그들이 말하는 고스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 그런 생각.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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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누워있는 양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당연하게 사람이 못 되어서 슬퍼했을 것 같냐며 콧방귀끼는 에이다의 말을 들으며
그렇지 못하기에 '양'은
가장 행복 할 때, 슬플 때, 편안할 때, 우울한 순간의 기억들을 멈춰서 저장하며
지금을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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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아직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고
작은 영화관에서 관람했습니다.
ost가 주는 울림이 엄청 컸네요.. ㅎ
낯설지만은 않았던 곡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당분한 한참 들을 것 같아요. :)
인간이 인간이라서 잊고지냈던 인간 본연이 가진 기억ㆍ추억의 감정에 가장 충실했던건 안드로이드 양이였던거 같아요.
순수한 모습의 양이 무척 인상적이였는데..
ㅜㅜ 보던 엄블레러 아카데미의 벤인걸 왜 못알아본거니~!!!!
찬찬히 다시 우주같은 양의 기억들을 쫓아가보고 싶네요.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팬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