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재단 선생님들과 일본 원시림으로 트레킹 떠날 때,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비행기 기다리며, 잠자기 전, 조금씩 읽었습니다.
여행 가운데 절 반 정도 읽고, 돌아와서 조금씩 읽어가다, 드디어 마쳤습니다.
<깊은 강>. 인도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안고 갠지스강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여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죽은 아내의 환생을 믿고 인도를 찾은 이소베,
전쟁 중 동료의 인육을 먹었던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구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떠난 동화작가 누마다,
이혼 뒤 삶의 공허함으로 방황하는 미쓰코.
그리고 관광객은 아니지만 미쓰코와 인연이 깊은 오쓰.
이들은 각자 저마다 사연을 안고 ‘깊은 강’으로 모여듭니다.
이야기 중심에는 가톨릭 신부였으나 ‘모든 종교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다 파문당한 ‘오쓰’가 있습니다.
오쓰는 대학 시절 미쓰코와 동창생이었습니다.
오쓰는 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리고 껍질을 벗길수록 매운 향을 내며 자기를 내어주는 ‘양파’ 같은 존재로 고백합니다.
오쓰는 가톨릭 신부이면서도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는 갠지스강가에서, 허름한 천민의 모습으로,
이름 없이 죽어가는 이들을 묵묵히 등에 업어 나릅니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동행합니다.
소설 속 모든 사람이 모이는 장소인 갠지스강은 삶과 죽음,
선과 악이 구별 없이 하나로 섞여 흐르는 거대한 공동체적 모태를 상징합니다.
허무와 냉소에 빠져있던 미쓰코가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업는 오쓰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구원이란 화려한 교리나 제도에 있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내 등으로 견뎌내는 ‘대속적 사랑’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깊은 강을 통해,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영성과 타인을 향한 환대가 무언지 생각하게 합니다.
시간이 되면,
사회사업 현장에서 만날 이소베, 기구치, 누마다, 미쓰코, 오쓰와 같은 당사자를 어떻게 응원하고 거들면 좋을지
써보고 싶습니다.
거꾸로, 숫자와 매뉴얼에 매달리지 않을 것 같은, 오쓰와 같은 사회사업가의 모습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일본 트레킹 마치는 날,
말아톤재단 서울영동장애인주간센터에서 일하는 박진수 선생님이 일본어판 <깊은 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트레킹 마지막 날,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박진수 선생님은 일부러 서점을 찾아 이 책을 문의해 구매했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사회복지사의 고전 읽기 <깊은 강> 편을 쓰면, 박진수 선생님께 제일 먼저 보낼게요.
첫댓글 ‘이 모든 것이 뒤엉켜 흐르는 순리라는 이름의 깊은 강. 그 흐름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고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강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호숫가마을이야기 개정판, ‘도서관 철거’ 편의 마지막 문장에 담긴 ‘깊은 강’의 이미지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대한 오마주로, 모든 것을 품고 흘러가는 시간과 삶의 흐름을 가리킵니다.
김세진 선생님 책에 등장할 깊은 강이 반갑고 기대됩니다.
그렇군요, 호숫가마을 앞에 흐르는 강, 책 속 갠지스강!
나가사키에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다고 해요.
@김세진 와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