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초청한 시인_ 이진우 신작시>
집으로
이진우
그녀의 몸속에 혹처럼 돋아 있는
푸석한 흙더미
오르지 못하는 낮은 언덕 앞에
그녀는 혼자 서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빗물을 받아 먹고
풀이 무성해질 때까지
그렇게 자란 풀이 땅을 덮어서
아무도 그곳을 모를 때까지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자주 눈물을 삼켰다
몸보다 무거워진 풀숲을 지나느라
자꾸 걸음이 느려지고
걸을 때마다 살갗을 쓸고 가는
풀 소리가 들리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걷는 사람처럼
온몸엔 벌건 열꽃이 피고
꽃을 올리며 울먹이는
철없는 친구의 등을 토닥이고
그녀는 풀 밑에 두고 온 이름 하나를
오래 생각할 것이다
<시편이 초청한 시인_ 이진우 대표시>
홈커밍데이
이진우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닌데
여름이 온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벌써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감각들이 유빙처럼 떠내려갔지
애인을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의 얼음이 녹는 속도라든지 그 사람과 이별한 후 마시게 될 맥주의 온도라든지
우리는 우리의 이마와 코끝이 얼마나 가까운지도 알지 못했지
앨범에 넣어둔 사진이 눅눅해지는 건지도 몰랐지
그때 네가 입고 있던 반팔 티는 무슨 색이었나
벽지에 말라붙은 모기의 핏자국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장마처럼 햇볕이 쏟아진다
운동장엔
새로 자란 그림자들이 무성하다
다음 여름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름이 오는데
여름에 죽은 친구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이진우 시인
2023년 《조선일보 》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