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은성: 어머니,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요?
어머니: 거의 보름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서 물 주느라고 힘들었는데 단비가 내리니 얼마나 좋은지 찬송이 절로 나오는구나.
은성: 정말 오랜만에 비가 온 것이네요. 농사짓는 분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겠어요. 그런데 방금 부른 찬송가 가사가 좋은 가사인지 좀 의문이 들어요.
어머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사 일부를 살펴보자.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이 찬송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 부르는 것인데 아직 성령을 받지 않은 것처럼 간절히 기다린다고 말하고, 새 생명을 주라고 기도하고 있으니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은성: 그래서 저는 이 찬송을 부르기가 어렵더라고요. 찬송가 책에는 가끔 그런 구절이 있어서 마음이 착잡할 때가 있어요.
어머니: 성경과 달리 찬송가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서 신학적으로 잘 살피고, 성경적으로 어긋나지 않게 쓴 가사를 택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타협(?)이 이뤄지다 보면 원칙을 벗어나는 것들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옳은 전통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문제다.
은성: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바르게 알고 계시나요?
어머니: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지 않니? 내가 신앙생활을 한 지가 3년이 아니라 30년을 두 배로 한 것보다도 더 되는 68년이니 이런 정도는 알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니?
은성: 찬송가에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니까 성령의 은사를 달라고 해야 좋을 곳에 성령을 달라고 하는 가사나, 이미 거듭났으니까 그것에 감사하며 거듭난 사람답게 살아가게 해 달라기를 기도해야 하는 곳에 이제 거듭나게 해 달라는 가사가 제법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불가피하게 이런 찬송을 부를 때에는 목사님들이 잘 설명을 해 주시고, 교인들이 바른 깨달음을 가진 상태에서 부르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머니: 나도 동감이다. 성탄의 시기에 부르는 찬송 중에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라는 가사가 있는데 성경에서 ‘목자들이 양 틈에 자고 있었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눅 2:8)라는 기록을 볼 때에 그들은 충실하게 목자의 일을 하고 있다가 천사의 소식을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은성: 제가 영어 성경들을 살펴보니 어머니 말씀이 정확하네요. 어머니는 참 대단하시네요.
“And there were shepherds living out in the fields nearby,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s at night.” (NIV)
"And there were in the same country shepherds abiding in the fiel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KJV)
"In the same region there were some shepherds staying out in the fields an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NASB)
한편 우리말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어요.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바로 그 부근 들판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 충성된 목자들을 잠자고 있다고 했으니 너무 미안하다. 그런가 하면 이 천사들이 소식을 전하고 찬송을 했다고만 했는데 찬송가에는 성경에 없는 것을 덧붙인 것이 있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찬송가 112장)
은성: 그런가 하면 찬송가에서 교회 예배당을 성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서 이것도 조심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서 “주 영광 이 성전에 가득히 넘치네(찬송가 17장)”라는 찬송이나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찬송가 208장)”라는 찬송을 부르다 보면 무의식 중에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며 부르게 되고,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요.
어머니: 목회자나 교인들이 발음을 잘못하는 몇 가지도 문제다. 먼저 '환난(患難)[환ː난]'은 '근심과 재난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환란(患亂)[활ː란]'은 '근심과 재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환난’이 사용되고 있으니까 [활ː란]이라고 읽는 것이 아니라 [환ː난]이라고 읽어야 한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나 교인들이 [활ː란]이라고 읽는 것을 보는데 [환ː난]이라고 고쳐 읽으면 좋겠다. 나도 이것을 새롭게 알고 나서 성경과 찬송가를 살펴보니까 항상 ‘환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성: 어머니는 무슨 학자 같네요. 제가 듣는 성경을 들어보면 [환ː난]이라고 읽는 것이 분명했어요. 그리고 가끔 ‘빛을’ 읽을 때는 ‘비츨’이라고 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비슬’이라고 발음하고, 비슷하게 ‘낯을’ 발음할 때도 ‘나츨’이라고 해야 하는데 ‘나슬’ 혹은 ‘나쓸’이라고 발음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어머니: 또 어떤 분들이 자주 틀리는 것이 있는데 많은 목사님들과 선생님들이 혼동하여 사용하신다. ‘가리키다’는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집어 보이거나 알리는 것을,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기능 따위를 깨닫거나 익히게 하는 것을 의미하니까 잘 구별하여 사용하시면 좋겠다.
은성: 그래요.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정확하게 배워서 알고 있는데 목사님이나 부모님들이 기본적인 것을 자꾸 잘못 사용하면 마음에 어려움이 생기거든요.
어머니: 그리고 대표기도 시간에 한 사람이 기도를 하지만 모두가 기도하기 때문에 “**가 기도하겠습니다”보다는 “**가 기도 인도하겠습니다” 혹은 “**가 기도하심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고, 기도하시는 분도 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 구태여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생략해야 좋다고 알고 있다.
은성: 그래서 사경회나 특별집회에서 대표기도를 시킬 때에 “**가 기도 인도하겠습니다”라고 했군요. 비록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하지만 모두가 기도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어머니: 한마디만 더하자면 기도를 하면서 너무 자주 “하나님” 혹은 “아버지”나 “주여”를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부모님께 무슨 이야기를 할 때에 한마디 하고 “아버지”, 또 한마디 하고 “아버지”라고 하면 어색하지 않겠니?
은성: 맞아요. 목사님들은 대개 전체기도 시간에 하나님을 두세 번 부른 것 같은데 다른 분들은 너무 자주 부르니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요.
어머니: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면 훨씬 신중하고 준비된 기도를 할 것이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힘쓸 것이다.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순서를 미리 알려주니까 오랜 시간에 기도를 준비하면서 글로 써서 하는 것이 단정하게 기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만약 기도문 전체를 글로 쓰지 않았다면 최소한 핵심 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하여 여러 번 기도해보고 나서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자기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도를 흉내내면서 습관적이고 모양만 잘 갖춘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것이다.
은성: 어머니 말씀이 저를 기쁘게도 하고, 두렵게도 하네요.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기도하거나 찬송을 부르거나, 혹은 말씀을 들을 때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의식이 확실해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 우리가 알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늘 잘 배우고 바르게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오늘은 이만해도 되지 않을까?
은성: 예. 오늘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어머니 감사해요.
어머니: 나도 너에게 많이 배웠다. 앞으로도 서로 교제하며 우리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더욱 온전하기를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