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불
들찔레 가지에 새잎 돋아 덤불 한 감에 푸른 잎물이 번진다
들찔레 가지에 새잎 돋아도 엉킨 내 뜻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팔에 팔을 손목에 손목을 屈曲에 굴곡을 한 획에 한 획을 가필해
나의 덤불은 육체는 부끄러움 없이 가을날까지 휘고 번진다
나의 오늘이 더 큰 참혹함을 부를 뿐이오나
새봄이 오면 나는 또 잊는다, 내 가슴속 거대한 亂筆을
문태준 시집 《가재미》 중에서
屈曲 굴곡
亂筆 난필
머릿속에 떠오른 감동을 급하게 글로 옮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태준 시집을 읽으며 가장 많이 읽은 시다. 나는 이 시에서 가장 큰 아픔과 가장 큰 희망을 느낀다. 엉킨 것을 인지하고도 곧은 뜻, 가필된 수많은 것들, 더 큰 참혹함을 부르는 오늘, 그러나 이 모든 난필을 잊게 만드는 새봄. 시의 모든 낱말이 올해를 반추하게 만든다. 새잎 얻은 나도 엉킨 뜻은 고치지 않는다. 내가 나를 가필하고도 흘리는 시간은 더 큰 참혹함을 부를 테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 가슴속 거대한 난필을 잊게 할 새봄이 그런 의무는 아닐까 싶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