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사하모래톱문학상 당선작
[대상] 몰운대 시편 / 유종인
푸른 안개와 주홍빛 구름에 가려서
근해(近海)는 거칠 거 없는 바람의 행로가 되었나
아니다 크나큰 돌부리처럼 구름에 가린 섬들에 발이 걸려
어떤 바람은 코가 깨져서 드디어는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던 몸을 드러낼 뻔 했던 곳,
안개가 서서히 밀릴 때면
그게 바람이 몸을 얻어 진솔의 옷 한 벌 갈아입는 기척이려니 싶은 새벽,
광야와 어둔 골짝을 지나 사막에서마저 흘리고 다닌 몸
어디 내 맞는 옷이 있는가 안개의 탈의실 한켠에 선 바람을
붉은어깨도요와 삑삑도요와 알락도요가
큰노랑발도요마저 불러 바람의 보일락말락한 허릿살을 흘끔거릴 때
바람은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몸을
안개와 구름에 가린 섬 뒤로 숨기며 산산이 흩어지듯
저 투명한 방랑기, 저 색깔을 입힐 수 없는 역마살(驛馬煞)은
도로 안개에 능놀다 부푸는 구름그림자마저 털고
몰운대의 긴 한숨처럼 묵묵한 갯바위의 정수리를 짚고 사라진다
이에 홀로 묵묵한 섬들이
안개의 주렴 너머에서
이제껏 파도와 적막의 뒷배를 자처한 섬들의 으늑한 행색을
습습한 몰골법(沒骨法)으로 뭉클하게 그려내는 수묵(水墨)의 파도소리,
번지는 그 파도에 조금씩 섬의 눈썹그늘이 짙어오고
새삼 소금물에 갈퀴발이 저린 괭이갈매기의 울음도
횡축(橫軸)의 몰운대도(沒雲臺圖) 왼쪽 한귀퉁이에 붉은 낙관(落款)으로 찍힌다
이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안개와 구름 속에서 한 피붙이로 살갑던
섬들마저
저마다 떨어져선 하얀 파도를 홑이불마냥 섬둘레로 끌어다 입고
몰운대 쪽으로 갈매기를 날린다
아까 안개와 구름 속에서 봤던 거는 눈감아 주기야, 몰운대여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어슴푸레 가리웠던 그 서늘한 장막 속에서는
어눌한 여명과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먼동을 기다리며
한 생애에 두 번의 풍광에 능노는 오지랖을 사는 거야
안개와 비구름에 잠겼던 섬들이 깨어나며
몰운대에게 그윽한 눈웃음을 제비갈매기떼로 대신 날리는 거였다
[최우수상] 다대첨사(僉使) 윤흥신(尹興信) / 윤주동
1
임진년 그 함성에
그날의 모습으로
노을에 부서지며
소리쳐 오는 파도
쏘아라
비장한 군령
그 외침도 들린다.
2
왜군의 침략으로
핏물에 찌든 바다
그때의 울부짖음
귓전에 생생한데
순절(殉節)한
다대첨사 윤흥신
파도 되어 묻혔나.
[우수상] 구평 가구프라자 / 배옥주
노부부를 내려놓은 3번 마을버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길을 오른다
산번지에 둘러싸인 가구 동네
볕 좋은 기슭의 ‘가구대통령’ 쥔장은
땡 처리 소파에 누워
노마진의 백일몽을 건너간다
길없슴 팻말을 간판처럼 끼고 서 있는
‘가나안’포장공장
선물 같은 박스들은
지나간 봄날처럼 겹겹 포개져 있다
비옥한 약속의 땅에서
벌나비들이 젖과 꿀을 찾는 사이
사거리에 들어선 <나무마음> 공방
물푸레 책상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려는 걸까
서랍의 속마음을 펼쳐놓고
푸른 물의 생각에 잠겨 있다
구평농장을 떠난 한센인들은
어디선가 간절한 삶을 꾸려가고
문드러진 발목으로 한 생을 버티는 의자 셋
느티그늘과 개미들이 쉬어가도록
기울어진 배려를 내준다
신평을 내려다보는 옥수수밭이
건장한 어깨로 울타리를 치는 구평
토박이로 자란 칡넝쿨은
거북섬을 향해 느린 순을 뻗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