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께서는 우리의 탄식을 듣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말씀 가운데 ‘이와 같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8장 1~25절까를 자세히 보면 성령께서 이미 우리의 나약함을 돕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피조물의 탄식을 듣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8장 3절에서 바오로는 ‘나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로마 8,3)
또한 ‘고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고난입니다. 탄식하게 만드는 것도 고난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바오로는 우리의 나약함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의 나약함과 고난과 진통을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이 도우시는 성령께서 다시 우리의 나약함을 도와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 나약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의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나약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성령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나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강함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강할 때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할 때 도와주십니다. 그것도 기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약해져 있을 때 도와주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강할 때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할 때 도와주십니다. 그것도 기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약해져 있을 때 도와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어떤 방법으로 도와주실까요?
첫째, 성령께서는 위로를 통해 우리의 나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무너져 내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위로는 우리의 슬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위로는 충고가 아닙니다. 위로는 우리가 살플 때 함께 슬퍼해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슬프냐고 함께 아파해 주는 것입니다. 충고는 쉽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약합니다. 우리 인생을 힘듭니다. 우리에게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약해지면 충고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위로자이십니다. 우리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닦아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십니다. 바오로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고난 예찬론자가 아닙니다. 고난을 이야기할 때 고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3-4)
고난이 아무리 힘들어도 위로가 있으면 견디게 됩니다. 고난을 폭풍우처럼 몰아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우리는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환난의 때에는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위로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2코린 1,6)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을 공급해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위로하다’라는 뜻의 ‘comfort’는 ‘옆에 와서’라는 의미의 라틴어 ‘com’과 ‘힘을 실어 주다’는 의미의 ‘fortis’가 합해진 말로, ‘옆에서 힘을 실어 준다’는 뜻입니다. 즉,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단순히 슬픔을 달래 주는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기운을 불어넣고 힘이 솟아나게 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위로란 위를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느님을 갈망하게 하십니다. 그리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고난을 견디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둘째, 성령께서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고난은 힘듭니다. 고난이 정말 힘든 것은 고난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뜨립니다. 고난으로 인해 부서지는 것을 경험할 때 너무나 아픕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을 때 수치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욥의 하느님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욥의 신앙과 하느님을 향한 확신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고난은 다양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질병으로, 파산으로, 상실로, 갈등으로, 이혼으로, 오해와 비난으로 찾아옵니다. 때로는 한꺼번에 다양한 문제가 몰려옵니다. 그때는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두렵고 우울하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약해집니다. 마음도 약해지고, 몸도 약해집니다.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신앙도 약해집니다. 기도할 의욕도 상실해 버리게 됩니다. 냉소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냉소주의란 다 소용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위해 일했는데, 그토록 헌신적으로 섬겼는데, 왜 이토록 모진 고난이 찾아왔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잘해 주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배신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고 수용하느냐입니다. 고난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난을 낭비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난을 잘만 선용하면 놀라운 역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고난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실까요?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입닏. 고난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고난을 기뻐하고 환영하라고 권고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2-4)
고난은 고통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한센병 환자들을 섬겼던 폴 브랜드 박사는 고통이 하느님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지어 내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나는 하느님이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실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폴 브랜드
한센병 환자는 고통을 감지하는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면에서 고통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위험을 잘 감지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선용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통해 드러나십니다. 우리의 나약함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면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손에 올려놓으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의 나약함은 마치 오병이어처럼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손에 들어가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