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 그리고 막연함
자신이 막연함을 품고 있다고 인식하는 인간은, 필시 더 깊은 곳에서 막연함에 대한 불안을 싹틔운다. 정서는 안정을 주고, 안정은 편함을 준다. 궁극적으로 몸을 입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편함이다. 이를 보수라 부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주관하는 편함이라는 가치를 쟁취하고자 하며, 그 이유를 깊이 사유하지도 않는다. 그 사유 자체가 편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살아가면, 그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색하다. 생뚱맞은 것 같기도 하고. 시작과 끝? 애초에 내가 무슨 행동이나 재스쳐를 취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하다. 나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이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다. 자신감? 도전? 선택? 어쩔 수 없는? 사유? 생각? 옳고 그름?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만약 나라는 개념이 실존한다면, 적어도 그게 나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알 수 없다. 이 단어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 맥락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들은 모두 어디서 나오는가? 나는 어디서 나온 무엇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지껄이는 듯하다. 애초에 예술이라는 게 사물을 대하는 본질에 대한 경험이지 않나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무엇 하나 정답이라든가 확실한 것 하나 없이, 오직 느끼는대로 써내려 가는 것. 사실 내가 안정을 느끼고 궁극적으로 편함을 쟁취하는 정서라는 것은 그 실상이 근간 없다. 다 봐도 봐도 뭣도 안보인다. 보이는대로 보면 그게 단줄 안다. 근데 좀 뭔가 이상하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결국에는 이거, 도통 뭔지 모르겠다. 그저 느끼는대로, 내 feel대로 살고 싶다. 그러나 배부를 때는 이런 생각, 하지 않는다. 굳이? 싶다.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봐야지만 움직인다. 근데 그게 또 웃긴 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미리 예상하고서 그걸 대비해 움직이는 건 더 이상하다. 결국에는 다 지랄인 것만 같다. 그냥. 그냥 다 어이 없고 이상하다. 뭔가 부질없고, 한없이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부실한 극 같기도 하다. 웃긴다. 모순적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뭔가 막 내뱉다 보면, 또 뭔가가 얻어걸리나? 머리가 복잡하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말하려 하는 거지? 뭐를 하고 싶길래, 아니 왜, 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 욕망? 그걸 굳이 따라갈 필요가, 따라가지 않을 필요가 있나? 이 세상이, 인간이나 혹은 사람이라는 종자들이 만든 룰이나 가치관, 시스템과 같은 것들이 참 부질없고 멍청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냥 다 똥꼬쇼다. 그냥 잘 모르겠다. 뭘 어쩌라는 건지. 뭘 어쩌겠다는 건지, 둘 다 내 알 바에 안 닿는다.
절에서 대웅전에 들어가 불상 쪽으로 삼 배를 올리는 현곡을 보고,
현곡, 현곡은 누구한테 절하는 거에요?
석가모니불이지.
현곡의 석가모니불이 뭔데요?
말로 표현 못하지.
저는 왜 될 것 같은 걸까요? 아니, 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잘 안될까요. 나도 헷갈려요, 내가. 내가 그때 무슨 생각 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배고픈 결에 뭐라 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 한 말이 기억은 나거든요? 그런데 그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바보인 걸까요? 난 그때 그 말을 한 나를 이해하고 싶은데. 그 내가 잘 그려지지 않아요.
현곡 그거 알아요? 우리는 사람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 이미지가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걸 그려보려 하면 안돼요. 나는 분명 이미지로 떠올리는데, 되게 어정쩡한 기억이 나를 속인 걸까요? 넌 기억하고 있어라고, 그거면 마치 된 것처럼 저를 속인 게 아니었을까요. 무섭구나. 무서워.
모든 게 너무 멀어요. 가깝다는 생각 붙잡고 외면하듯 살아가는데, 막상 보면 나랑은 다 멀어요. 뭔가 가깝다고 느끼는 게 있으면 무조건 다가가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매달리는 게 쉽지 않아요. 막상 보면 다 나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어요.
전 어디쯤 있는 걸까요? 혹시 있긴 할까요? 난 뭐죠? 나는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죠? 혹시 알 수 없나요? 그렇다면 난 왜 살죠? 뭘 보고 살아야 하죠? 영화 속의 명대사들이 그 대답이 되어주질 않네요. 사실은 그 무엇이 대답도 되어준 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이게 내 얘기가 맞는 건지, 알송달송 합니다.
결국에는 또 눈앞에 있다고 믿어지는 쾌락에 몸을 맡깁니다. 잠시 답이 나오질 않는 물음을 멈추고, 멍청한 바보가 되어봅니다. 어차피 내가 이 글을 통해 석가모니불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기만 한데 뭘 합니까. 대체 뭘 한답니까. 마냥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만 하네요. 뭐라 지껄이는지 원, 나중 가서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세상이 마치 병신같습니다. 내 병신 같은 모습과, 세상 병신. 세상을 보다 보면 저 또한 자꾸 병신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잘. 아무래도 전 바보인 듯합니다.
도대체 논문 다 쓴 게, 애들 병신짓 하는 게, 축구 하는 게, 내가 뭔데, 아니 도대체, 이 한 문장 쓰면서도 의미가 몇 번을 바뀌는지 원. 도대체 이게 뭔데, 이게 뭔데요. 이거에 반응하는 내 반응은 또 뭔데요. 쌍으로 묶어서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뭔지. 뭘 어쩌란 건지. 막 뇌 과학, 인간에 대한 정의 이런 거. 그게 날 정의하는 건지, 별로 와닿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난 괜히 시달립니다. 그냥. 왜 그러는 걸까요. 편해지기 위한 업보? 애초 업보란 개념이 맞는 건가? 걍 일어난 일? 사건 경위에 잘잘못이 있나? 뭐지? 다 그냥 좀 이상합니다.
왜 사냐?
이 문장을 쓰는 내가 과연 전달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기도 하고 근데 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습니다.
막상 이 글들을 끄적이던 때에는 그냥 느끼는대로, 감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적었었는데 이제 와 보니 또 느낌이 색다르네요. 이 글을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당시 내 모습이 어땠는지 대조해보면 잘 맞질 않습니다. 마치 나라는 개체를 두고 두 갈래에서 마주보는 듯합니다. 당시에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그러니까 그때 느낀 감상대로 표현하였던 글인데, 지금 봤을 때는 뭔가 강렬한 에너지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혹은 안좋게 말하면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막상 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안그랬는데. 뭔가 나라는 매개를 통해 마치 정신병자와 세상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듯한 사람의 두 입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막상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변명 덧붙이고픈 마음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군요. 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그냥 끄적인거라 홈피에 올릴 생각은 없었는데, 문득 올리려고 다시 제 글을 읽어보니 뭔가 공감받지 못할 것 같아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서,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등등의 감정으로 인해 제 글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내 스스로 내 글에 떳떳하지 못한 걸까요? 아마 전 이 글을 홈피에 올리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내 글이 이랬구나, 하고서 말았었겠지요. 저는 이 경계가 참 독특하다고 느낍니다. 마치 이 선을 중심으로 내가 두 모습으로 나뉘는 것 같거든요. 한쪽은 순전히 나. 반대쪽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며 그 안에 만들어진 나. 아마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한쪽은 이름이 없고, 한쪽은 이름이 있다는 점이겠지요. 전자의 경우는 이름이 필요 없습니다. 나라는 개념이 별로 필요 없거든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이름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합니다. 명예, 지위, 공감, 이해, 사랑, 관계, 인정. 그 모든 것들이 이 이름과 연관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관계 속의 나로서, 나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반대의 나는 이러한 분별심이 의미가 없겠지요. 그곳에는 남이 없으니까요. 남이 없으니 나도 없고, 너와 내가 없으니 조금 저 순수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 듯합니다. 이곳은 선 너머의 세상입니다. 참 아름답죠?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썩 나쁘지 않습니다. 단지 설레고 호기심과 짓궂은 장난기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어쨌거나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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