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시대의 의식의 분화
-『국가』의 정의관을 중심으로-
이 광 수
Ⅰ. 들어가는 말
Ⅱ. 언어와 신화
Ⅲ. 플라톤의 고민과 이상적 폴리스
Ⅳ. 나오는 말 |
Ⅰ. 들어가는 말
이상세계(理想世界)에 대한 추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탄생이후 부단히 이어져온 사상의 흐름일까? 플라톤이 그 사상을 펼친 아테네의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떠한 뇌의 분화가 이루어져서 어떤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져 있었을까?
국가 1, 2권을 읽다보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계속 이어진다. 뭔가를 먹었는데 소화도 되지 않고, 포만감도 없는 헛헛함은 무엇일까? 플라톤은 왜 정의라는 개념에 천착했을까? 산파술이라면 정확한 개념분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이론의 도출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논을 전개하는 플라톤의 논증방식은 명쾌함이 덜하다.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대화법이 자칫 자신의 주장을 은근히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며, 빈약해 보이는 이론은 순환논리를 보는 듯하다. 현대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듯 보이는 기본개념에 무척 공을 들인다.
아무래도 그 시대 사람들의 뇌의 발달이 아직 세분화된 논리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예 낯설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전제하에 BCE 4C경의 아테네로 잠시 돌아가 보기로 한다. 그래서 그 시대 위정자에게 정의개념이 왜 그토록 절실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Ⅱ. 언어와 신화
1. 문자이전의 시대
문자를 도입하기 이전의 사회는 그들의 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주로 구전에 의존한다. 비교적 늦게까지 암송으로 경전을 전수한 인도 불교문화의 흔적을 지금까지도 볼 수 있다. 초기불경의 반복 · 중첩적인 구조의 정형성은 암송하기 쉬운 형태의 전형으로 보여 진다.
고대 그리스의 문자가 없던 시기도 비슷한 유형의 신화 암송이 있었다고 논의되고 있다.
쥴리안 제인즈(Julian Jaynes)의 “양원적 인간”에 대한 가설을 기초한 김봉률의 논문을 참고하면 인간에게 언어가 발달되면서 우뇌에서 좌뇌로 뇌의 신호체계가 발달하게 된다. 외경심에 의한 초기 신의 개념이 탄생하고, 사물신에서 조상신으로의 신개념이 뒤섞이게 된다. 일족의 우두머리가 살아있을 때 지시한 명령어가 뇌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죽은 뒤에도 조상의 소리가 들리게 된다. 이 소리를 듣는 기능은 주로 뇌의 우반구에서 이루어지고, 이 명령어는 좌뇌로 전달된다. 조상의 많은 언어들과 명령어는 모여서 신비한 힘을 지닌 신으로 모셔지고, 신화의 태동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신의 명령어를 이행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런 신화의 시대는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부족사회의 형태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은 정의롭지 못하고 폭력적이며,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신화시대의 산물로 『일리아드』가 거론된다.
2. 문자의 시대
이후 문자가 발명되고 서사시를 통한 신의 명령의 기록인 의식의 엮기가 이루어진다.
기록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에게는 ‘나’라는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일리아드 100년 이후 오디세이의 주인공은 정체성을 뚜렷이 나타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만과 배반, 속임수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신을 속이고 위기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스위치만 누르면 움직이던 자동기계로서의 모습을 탈피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은 생물학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 주장하는 제인즈는 의식을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 논을 차치하고라도 금속과 농경의 발달로 잉여농산물이 비축되고, 사회가 집단체제로 형성되고, 비축자본을 강탈하기 위한 전쟁이 발발하면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에 의한 살육의 현장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아와 삶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 해 본다. 가혹한 전쟁과 보복, 외부의 항성이 형성되지 않은 바이러스의 유입으로 대량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서, 인간 감성의 저변을 여지없이 자극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두 번의 참전으로 그의 사고의 변화가 이루어진 모습을 알키비아데스는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의 이성적 내면의 소리 ‘데몬(démon)’에 사로잡혀 몇 시간이고 홀로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Ⅲ. 플라톤의 고민과 이상적 폴리스
아무튼 자의식이 생기고 철학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던 플라톤 시대에도 여전히 신들은 광포하고 인간보다 더 변덕스러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여기서 플라톤은 이의를 제기한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신은 인간의 본보기가 되지 못했다. 또한 신화를 닮은 인간의 이기적인 탈취와 거짓에 염증을 느끼고, 앞으로의 국가사회의 발달에 이성의 확립이 없으면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라는 폴리스는 약탈로 부강해지고 아테네인 한사람에 너덧 명의 노예를 거느리던 사회이고 보면, 정의개념을 설정하기 무척 힘이 들었으리라 본다. 어떠한 개념을 들이대도 사회구성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빛 좋은 개살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은 나라(polichnion), ‘참된 나라’(alethinè pólis), 건강한나라(hygiēs polis)로 설정한다. 또한 현실의 세계인 아테네를 반영한, 불가피하게 호사스런 나라를 설정할 수밖에 없어 염증상태의 나라(phlegmainousa polis), 돼지의 나라(hyōn polis)를 상정하고, 이 돼지의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수호자(phylakes)가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수호자들은 이 돼지의 나라를 나름대로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마부(기능; ergon)의 위치로 세운다. 단출한 차림의 여행자라면, 행동이 자유롭다. 비록 발품은 팔아야 하지만 구름에 달 가듯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마부는 말을 다룰 줄 알고, 손님을 싣고 목적지에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말을 모는 체력과 말을 다루는 지혜가 있어야만 한다.
“수호자의 자격요건을 천성으로 지혜를 사랑하며 격정적이고 날래며 굳세어야 한다.” (2권376c)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이런 지혜, 사랑, 격정, 용기가 있는 정의로운 수호자를 어릴 때부터 양성하기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몸(sōma)을 위한 교육으로는 체육(gymnastikē)이 있겠으며, 혼(마음: psychē)을 위한 교육으로는 시가(詩歌: mousikē)가 있겠네만.”(2권376d)
혼을 위한 교육으로 허구인 설화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신화의 내용을 감독하고 각색하기를 원한다.
“우리로선 무엇보다도 먼저 설화작가들을 감독해야만 하겠거니와, 그들이 짓는 것이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만 될 것 같으이. 그러나 일단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들을 보모들과 어머니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 그들의 손으로 아이들의 꿈을 가꾸어 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설화로써 아이들의 마음(혼)을 형성해(plattein) 주도록 설득할걸세. 그렇지만 오늘날 그들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것은 버려야만하네.” (2권 377c)
신화시대의 신은 인간의 거울이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그 당시의 신화는 크게 잘못되어져 있다. 거울에 때가 끼거나, 굴곡이 져 있다면 그 거울을 보고 아무리 매무새를 만져도 제대로 용모를 바라보거나 고칠 수 없다.
플라톤은 이 삶의 거울인 신화를 고치지 않으면 인간이 이성적인 사고나 정의로운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신화속의 신은 완벽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 누군가가 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을 경우에는, 그가 서사시(epe)로 짓든 서정시(mele) 또는 비극시(tragqdia)로 짓든 간에, 언제나 신을 신인 그대로 묘사해야만 된다는 것일 것 같으이.” (2권379a)
신을 신인 그대로의 묘사는 무엇인가?
“그러면 적어도 신은 참으로 선하므로(좋으므로),그렇게 이야기 해야만 하겠지?"
참으로 선하고 좋은 신의 모습, 정의로운 신의 모습이 완성된다. 또한 그 신의 안내자이며, 인간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수호자는 정의의 실현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Ⅳ. 나가는 말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한 화이트헤드의 말이 어떤 무게로 서구의 철학사를 이끌어왔든, 그 시대의 플라톤은 철학자라기보다 사회개혁자이며, 실천사상가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건 단지 미혹한 자의 착각인 것일까? 전쟁과 전염병, 거짓과 암투의 정치, 개인의 바닥난 도덕관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던 플라톤에게서 아무리 지우려고 해봐도 공자의 얼굴이 자꾸 겹치는 건 왜일까?
플라톤이나 공자나 ‘축의 시대’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떠돌았으나, 결국은 자신의 학당에서 후예를 키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많은 별들이 살아생전 지구위에 화려한 흔적을 남겼으나, 또한 이 두 거인(실제로도 컸다고 함)만큼의 족적을 남긴 이가 없음에랴!
요 며칠사이 온갖 사나운 뉴스가 지면과 화면을 덮고 있다. 가족을 살해하고, 전처의 가족을 살해하고, 사소한 자괴감으로 자살을 한다. 정치가는 음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의는 바닥에 떨어진 듯 보인다. 어디선가 현대의 ‘이라톤?^^’이 나타나 이 사회에 새로운 깃발을 꽂기를 희망 해 본다.
(국가 1권과 2권의 요약은 PPT로 간략하게 줄였다)
- 참고자료-
1. 박종현, 『플라톤의 국가』, (서광사), 11쇄 2013.
2. Walter J. Ong, 이기우, 임명진 역,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3. 김봉률, 『의식의 기원과 양원적 인간: 호메로스에서 정신분열증까지』, (새한영어영문학 8집), 2009.
4. 정헌경,『단숨에 정리되는 세계사 이야기』, (도서출판 좋은날들), 2014.
5. 투키디데스, 박광순 역, 『펠로폰네소스전쟁사』,(범우사), 1993
6. McKeen, Catherine, 『Polis』, (The Journal of the Society for Greek Political Thought, Volume 21, Numbers 1-2), 2004,
첫댓글 see~in
어름다운
판타지입니다.
^^
"의식은 생물학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
생각해봐야겠어요.언어와 신화의 관점두요.잘 읽었습니다^^
학구파 이십니다
좀 불안하네요
이론의 기초가 부실해서
새로운 깃발을 꽂기를 희망한다 :저도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박귀희 귀히여겨야 할 분^^~~
명쾌하네요
소화안되는 국가를 읽고난 후
활명수같사옵니다~~
큭
활명수
과찬이옵니다
그대의 예리한 의식이 부럽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