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과 목적
I. It has been urged that the custom was primarily based on the law of inheritance;
(물질적)유산상속의 법에 근거한다는 주장이 있다.
당연한 것이므로 생략
2. J. F. McLennan, however, would assume the levirate to be a relic of polyandry,
맥레넌은 다부일처제의 잔재라는 추측을 한다.
뻔한것이므로 생략
.... But among many races who follow the custom, such as the Fijians, Samoans, Papuans of New Guinea, the Caroline Islanders, and some tribes in the interior of Western Equatorial Africa,...
피지인 사모아인 파푸아 뉴기니아인 캐롤라인 섬주민 그리고 서부적도상의 아프리카 몇몇부족.....
.... Further, there is no known race where it is permitted to a son to marry his own mother. ...
엄마(생모)를 물려받아 결혼하는 풍습을 가진 종족은 없다.(주:있다면 해외토픽감)
Bakalai, an African tribe, .... The Negroes of Benin and the Gabun and the Kaffirs of Natal
그외 취수혼을 가진 부족들..
3. Another explanation of the custom has been sought in a semi-religious motive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종교적인 것을 생각해 볼수 있다.
뻔하므로 생략
Jewish, Hindu and Malagasy
여기에 해당할 만한 종족들
4. Yet another suggested origin of the levirate is agrarian, the motive being to keep together under the levirate husband the property which would otherwise have been divided among all the brothers or next of kin.
또 다른 기원은 부동산(땅)의 소유 경작 등에 있다고 볼 수있다. 죽은 남편의 재산이 형제와 친척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막고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함.
지금 보니까 여기의 'agrarian' 은 꼭 농경이라는 뜻은 아니네요. 여전히 농경이라는 뉘앙스가 있기는 함. (요즘은 거의 농경이라는 뜻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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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사회와 연관이 없어보입니다요.
내가 생각하기에 동북아의 수렵 혹은 수렵/원시농경민이 어떤 일정한 이유에서 취수혼적인 풍습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후에 유목민생활을 습득하고 나머지는 수렵/농경민 생활을 유지하고 하며 일부는 농경/목축민 일부는 유목민 이런식으로 돼나간 것 아닌가 합니다.
취수혼을 근거로 부여인이 원래 유목민이었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생각.
첫댓글 단 중국측 기록에 부여가 동호와 예맥의 혼혈이라는 류의 기록이 있는데 어떤이들은 이것을 부여가 유목민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함
ㅋㅋ 감사~! 결국 부분 번역을 해주셨군요. 저도 i를 나로 해석하길래 적잖이 웃어재꼈습니다. 쩝,,그런데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암말도 안했는디,,꼭 확인 사살까지는,,ㅎㅎ 음,,취수혼하고 서옥제,,가지고는 유목민 성향을 말할 순 없긴 하겠군요. 어쨋거나 자세한 답변 감사,,
그런데 말씀하신 기록은 전거가 어딘가요? 저도 처음 들어보는 거 같은데요. 아님 기억을 못하는 건가? 참,,그리고 유목의 발생 양상에 대한 자료 있으시면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말과 관련된 형태의,,) 다시 생각 좀 해보려구요.
그 기록은 김용만님이 아실 확률이 100%. 80 년대에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가 고구려의 기원에 대해 그렇게 쓴 책도 있음(몽골과 퉁구스족의 혼혈이라며). 인터넷 상에서는 안찾아 지네요.
한단인님이 취수혼에 대한 착각을 했군요. 목축 경제 자체가 취수혼의 발생을 가능케 한 것이 아니며, 농업사회인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보이는 인류 혼인사에 널리 보이는 양식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부여와 고구려에 사례가 보이고, 부여가 흉노와 유사한 풍습을 가졌다고 하니까, 착각한 모양이군요
그리고 위 글의 출처는 정확히 알 수는 없네요. 워낙 부분 발췌라서. 다만 노태돈 교수의 [고구려사 연구] 2부 2장에 실린 <취수혼과 친족집단> (본래 이 글은 1983년에 발표된 글이지요)에 취수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으니, 참고하기 바랄 뿐입니다.
음,,환경의 혹독함이나 먹고 살기에 따라서 취수혼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잠깐 잊어먹었네요. 취수혼에 대한 개념을 유목민족을 예로 들어서 머릿속에 쳐박아뒀더니,,고정관념처럼 된 모냥입니다. 반성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