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춘 편지 쇼 수상 후기.
운전을 하면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여성시대와 함께 했습니다. 사연을 들으면서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내 삶이 아닌 다른 분들의 진솔한 삶의 얘기를 들으면서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가끔 사연을 보내 당첨되기라도 하면 그 설렘이 몇 달간 지속하곤 합니다. 또한, 매년 3월이면 목 빠지게 신춘 편지 쇼를 기다리다가 글제를 받고 나서는 때론 실망하고 때론 설레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글제가 나올까? 기대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라는 글제가 발표되자 아! 이건 나를 위한 글제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재혼하니 공교롭게도 서로가 두 번째가 되어 서로에게 첫 번째가 되어준 우리의 두 번째 인연 이야기. 딱 제 얘기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먼저 간 아내와 딸 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글을 써서 보내고 나니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아서 속이 후련했습니다.
4월 17일 마감일이 지나기도 전에 신춘 편지 쇼 예선 작들이 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선 작을 듣고 있노라니 그저 한숨만 나왔습니다. 아! 나는 안 되겠구나!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았습니다. 택배 업계는 업무 특성상 토요일 근무하고 월요일에 쉽니다. 우리 가구 배달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감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집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또 쓸데없는 광고 전화겠거니 하고 받지 않고 그냥 넘겼습니다. 샤워하고 나오니 같은 번호로 두 번이나 찍혀있길래 아! 광고 전화는 아닌가 보다 하고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전화하셨어요?”
“김태영 선생님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요.”
여성시대? 설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신춘 편지 쇼 작품 내셨죠? 50선 안에 들었는데 혹시 수상하게 되면 시상식 참석할 수 있나요?”
“시상식요? 무조건 가야죠?”
“아직은 몰라요. 21선 안에 들어야 입상이라서요. 입상하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예,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50선 안에 들었다는 건 그냥 예선 통과했다는 말인데 그런데도 전화기에 대고 절을 합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신춘 문예와 봄에 열리는 신춘 편지 쇼에 7년 넘게 도전해 왔지만, 예선을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입상 못 해도 예선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위안 삼을 핑곗거리가 생겼습니다.
다음날, 침대 배송을 위해 관 짝 같은 침대 틀을 메고 빌라 5층을 기어오르는데 어제와 같은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헉헉대면서 전화를 받으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김태영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숨이 거치신 거 보니까 무거운 거 나르시나 봐요?”
우리 작가님 눈치가 백 단입니다.
“아, 네네 지금 침대 배송 중이라서요.”
“선생님 입상하셨어요. 5월 6일 시상식에 어쩌고저쩌고….”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마약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요? 무슨 상인지는 발표전까지 모른다는 작가님의 말씀도 가볍게 무시합니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시상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영광인데요.
그날 저녁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무슨 상일까?
옷은 뭐 입고 가지? 양희은 선생님이랑 서경석 형님이랑 사진은 찍을 수 있을까?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가본 방송국인데 거기 가면 연애인 얼굴 볼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드디어 당선작들이 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입선만 돼도 어디야?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2750편의 작품들이 있는데 거기서 본선 올라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속은 은근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도 가작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아니지, 아니지, 기왕이면 우수상, 아냐, 아냐, 최우수상 받을 수도 있어.”
이런 허황된 욕심에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너무 욕심부리지 마. 입선이면 어떻고 최우수상이면 어때? 상 받는 게 중요한 거지.”
“근데 진짜 최우수상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당신은 아마 울걸, 글 쓰면서도 맨날 울잖아, 하하하”
“신춘 편지 쇼 최우수상이나 신춘문예 같은 상들은 글도 잘 써야 하지만,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나는 입선이나 가작이 딱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일거야.”
“그게 어디야, 2800명 중에 열 한 명 뽑는 거 라면서...”
잠자리에 누우면 시상식 갈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드디어 수상작 발표.
입선 다섯 작이 발표되는 동안에도 제 작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작인가? 혹시 우수상? 아니면 최우수상? 입상 전에는 예선만 통과해도 원이 없겠다더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은근 욕심이 계단을 타고 오릅니다.
마침내 가작이 방송되고 두 번째 발표작으로 제 이름이 불리자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어찌 됐든 모두가 부러워하는 시상대에 오르게 됐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고 있던 잊혀진 날에 대한 이야기가 양희은, 서경석님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시상식에 갈 생각으로 잠 못 이룬 1주일을 보내고 마침내 시상식 날,
아내와 아들과 아내의 지인 이렇게 넷이서 아침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딸의 결혼식 날 한 번 입어 본 후 1년 동안 아껴두었던 양복도 꺼내 입고, 양희은님, 서경석님께 사인 잔뜩 받아 올 거라며 A4용지도 잔뜩 챙겼습니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입선 당선 분부터 시상대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는데 어쩜 그리 다들 말씀을 잘하시는지...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애집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왔고 마땅한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에라 모르겠다.‘ 이 기회에 마누라한테 점수나 따자며 뜬금없는 사랑 고백을 하고야 맙니다. 저의 뜬금없는 사랑 고백에 방청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여보, 사랑해!”라는 나의 고백에 아내가 머위 위에 손 하트를 그리며 화답합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가 모인 자리, 사진 촬영이 끝나자 제가 존경하는 양희은 선생님을 행해 달려가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선생님께서는 스케줄이 있다며, 제 눈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 멀리 출입구로 사라져가는 양희은, 서경석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라는 옛 속담이 떠 오릅니다.
힝~ 사인 받을려고 A4지 열장이나 들고 왔는데.... 종이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개별 사진도 못 찍고, 난생 처음 가보는 방송국에, 난생 처음보는 연애인인데.... 아내에게 오지게 사인 받겠다던 제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상식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제가 준비해 간 A4용지를 흔들며 킥킥댑니다. 아내가 놀리는 바람에 제가 시무룩해지자 아내가 선물 꾸러미를 뒤져 양희은 서경석님의 자필 사인이 든 종이를 찿아냅니다.
“여보, 여기 사인 있는데, 코팅까지 되어있어.”
그러면 그렇지, 여성시대가 어떤 방송인데.... 애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 주는 센스! 여성시대 작가님들 피디님들 짱입니다.
5월 중순에 세금을 공제한 가작 당선금이 입금되었고 지난 주엔 여성시대 6월 호와 함께 시상식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아내에게 단체사진 액자에 담아 걸어달라 했습니다. 신춘편지쇼 사진과 상패 그리고 두 분의 사인은 우리집 가보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늘 애청자를 위해 힘쓰시는 여성시대 작가님들과 무든 관계자분들게 다시한 번 허리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멀리 포천에서 애청자 김태영 올림 (2022년 06월 20일)
추신: 아직 신춘 편지쇼 응모 글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저 뛰어난 작품들 중에서 내가? 라는 반문을 하곤 합니다. 한달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꿈만 같습니다.
첫댓글 상금 이백만원 받았다는 그 사연이지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네 맞아요 후기 보냈더니 방송내 보내 줬는데 전 건강검진중이라 못 들었는데 정성권 회장님이 방송 나온다고 전화 주셔서 알았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