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나비재
한마리 흰나비가 뻑적지근한 숨을 고르는
할망구 흰머리카락 위 폴폴 고추모종밭 공중에 날고 있다,
사십구재 향을 사르고 있는 것이다
할망구 두개골에 눈물이 꼭 고였다
저 흰머리 할망구 두개골에 찍힌 발자국을 훔쳐간 도둑은 누구인가
저 흰머리 할망구 두개골에는
할망구 신발코에 발을 대보다 그냥 댓돌로 내려서는 깜깜한 구들장 같은 사내가 있던가
캄캄한 협곡에서 비가 내려선다
때때로 나도 나비도 할망구도 할망구의 두개골에 찍혀 있는 사내도
살고 죽는 일에 이, 저곳을 넘어가고 돌아오지 못해 콱 눈이 막힌다는 것,
비 내려도 나비도 이, 저 곳을 날지 못할 바에야
맴도는 흰나비도 매정한 절벽 사이에 갇혀 있다는 것,
오도 가도 못하는 귀신 같은 흰나비의 발자국 몇개만 아주 남았다.
- 문태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중에서
절벽 안에, 누군가가 떠나갔다.
이별은 여운이 남아 흰나비로 날아올라 절벽 안을 빙빙 돌고,
있었는지 모를 구들장 같은 사내는 뭣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흰머리 할머니 떠나가고 난 후,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절벽이 자신의 마음이고 흰머리 할머니 혼인 흰나비도 놓아주질 않으니 가질 못하고 빙빙 돈다. 구들장 같은 사내는 나. 관전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두루뭉술한 나다. 그리고 이곳에는 아주 발자국만 몇개 남았다.
어쩌면 흰머리 할머니는 시인의 늙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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