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을 읽으면서 복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8-9)
우리는 복에 대해 많이 말하고, 기도하고, 남에게 복을 빌어주기를 기뻐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주 부르는 찬송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찬송입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복에 대하여 성경에서 가르치신 대로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바르게 알고 믿고 계시지만 또 많은 분들은 자기 나름의 복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박자 구원’ 혹은 ‘삼박자 축복’으로 많이 알려진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기독교인이면 누구나가 익히 다 아는 내용으로 이 구절 속에 ‘영혼의 구원’과 ‘생활의 복’과 ‘건강의 복’ 세 가지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원문과 전후 관계를 고려해서 살피면 5-7절에 나오는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의 ‘나그네와 이방인을 위해 사랑을 나눈’ 신실한 사랑을 전해 들은 요한이 그가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바로 2절의 말씀이요, “사랑하는 자여, ‘네 자신’(ψυχή)이 지금까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 있음과 같이 모든 일에 네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 건전하고 바르게 살아가기(ὑγιαίνειν, sound or be correct)를 내가 원하노라.”라고 번역함이 가장 합당하다고 신성욱 교수님(아신대 설교학)은 설명합니다. 우리가 대강 짐작하여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뜻의 가르침을 누군가가 잘못 가르쳤고, 그것이 잘 받아들여져서 견고하게 자리잡은 결과가 이제는 이렇게 바른 것을 전해 주어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면서 배척하고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과연 성경에서 복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몇 군데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1. BIble 25라는 앱에 있는 매츄 헨리 주석의 설명에서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을 설명해 줍니다.
* 아브라함의 복은 무엇입니까?
율법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
*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어떻게 다릅니까?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의 복은 건강·장수 등으로 물질 중심적이고 현세적이었지만, 신약의 복은 영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복이란 인간의 공적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으로 얻은 구원을 말합니다(창12:1-3).
*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컬음을 받고 그와 함께 복을 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없이 믿는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축복은 무엇입니까(3:26-29)?
믿음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종이나, 사회적 신분, 성별의 구분이 없이 모두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가 되며,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의 약속을 유업으로 상속받습니다.
이상에서 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모든 시대의 믿음을 가진 자(신자)들의 복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복인가를 알려면 만약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시지 않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진노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의롭다고 여겨주신 자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아는 자만이 이 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나 부귀나 권세가 줄 수 없고, 세상의 쾌락과 명예가 가져오지 못하는 복입니다.
2. 몇 분 목사님들의 가르침에서
*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어떻게 다른가?
구약에서 말하는 복과 신약에서 말하는 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구약에서 말하는 복은 대체로 육신적인 복(예: 장수, 건강, 부귀 등)인데 비하여, 신약에서 말하는 복은 영적인 복(심령이 가난함, 애통함, 마음이 청결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 등)이다. 구약의 복 사상은 동양의 5복 사상(장수, 강녕, 부귀, 유호덕, 고종명)과 흡사하다.
2) 구약에서 말하는 복은 현세적인 것인데 대해, 신약에서 말하는 복은 예수의 산상보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국(내세적)의 복(마 5:3-12)을 말한다.
3) 구약에서 말하는 복은 조건적인 복(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 신 28:1-14)인데 대해, 신약에서 말하는 복은 무조건적인 복이다(롬 3:23-24, 엡 1:3-5). 그리스도인은 구약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행위를 조건으로 해서 받는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값(=조건) 없이 복(=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그 전체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복 사상(창 12:1-3; 시 1:1 등)이 그 반대인 저주와 더불어 인과응보적인 논리로 선포되어 있으므로(신 28:1-19),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할 때는 구약의 복이 아니고 신약의 복을 뜻하는 것이다.
* 그런가 하면 복에 관련된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복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1) 먼저, 하나님의 선의를 심령으로 충만히 누리면서도 외적 번영 조건이 결여된 경우부터 살펴보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10~12)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벧전 3: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2) 또 물질적 은택은 상당한 정도로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선의(곧 구원의 은택 및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많이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1)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약 5:5)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노라.” (계 3:17)
*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은 좋은 설명을 하신 분도 계신다.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땅의 복을 배제시키고 하늘의 복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의 관계는 일종의 모형과 실체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땅의 복이 모형이라면 하늘의 복은 실체가 되는 것이다. 땅의 복을 완전히 배제하고 하늘의 복만을 주장하면 과거 기독교 역사 가운데 나타났던 이원론적인 이단 종파들의 뒤를 따르는 위험성이 있다. 동시에 땅의 복을 통하여 종국적으로 보아야 할 하늘의 복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기복 신앙이 되는 것이다. 참된 복음 메시지는 모형과 실체의 관계를 조화롭고도 균형 있게 인식시켜서 삶에 필요로 하는 땅의 복을 구하게 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영원한 하늘의 복에 대한 소망을 붙잡도록 이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족장들의 특징은 땅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동시에 하늘의 성을 바라고 소망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 그들의 복의 전부로 이해하였다면 현실적으로 받지 못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 때문에 매우 안타깝고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족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지만 이 땅에 사는 나날 동안에는 가나안에 있는 한 평의 땅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이 가진 땅이 있다면 죽고 나서 그들의 시체가 묻힌 무덤이 전부다. 만약 그들이 땅의 것을 복의 전부로 생각했다면 얼마나 비관적이었겠는가 생각해보라. 말할 수 없이 낙망하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족장들은 땅의 복을 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하늘의 소망을 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땅의 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도 아주 넘어지지 않았고 아주 낙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족장들의 신앙을 묘사하면서 첫 번째로 서술하는 표현이 "믿음으로"이다. 이 믿음은 하늘의 복을 소망하는 믿음이다.
참으로 좋은 설명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할 때에 복을 구하거나, 설교자들이 설교할 때에 복을 전하실 때 어떤 의미를 담아서 ‘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지나치게 현세적인 복을 구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에는 영적인 복을 구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어쩐지 정리가 더 잘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 과연 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구약의 족장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서 그들이 이 땅에서 추구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또 누린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했지만 한 번 더 소개하며, 요한 사도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10~1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덧붙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과 금이 복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일까요?(행 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