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이란이 국제여론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을 돕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에 대한 분석을 게재한다. 이와 관련 지면의 한계 상 증거자료 및 다른 관점의 해석을 충분히 싣지 못한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러시아에게 이란은?
소련 붕괴 이후 국력과 국제적 위상이 약화된 러시아는 구(舊)소련 지역에서의 패권 유지도 버거운 상태였다. 따라서 러시아의 최우선 정책은 자국의 안보 및 과거 소비에트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접경지역에서 발생하는 위협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중동을 비롯한 과거 비(非) 소비에트 지역의 정세는 러시아에게 있어 한동안 부차적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푸틴 집권 2기 이후 강화된 경제력을 기반으로 러시아는 비(非)서구(西歐)적 가치의 리더를 자임하며 핵심지역 외에도 영향력 확대를 추구해왔다.
러시아에게 중동 북부지역인 이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은 남(南)코카서스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인접한 지역으로 구소련 지역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러시아는 이 지역의 안보가 위협받지 않도록 이란이 우호적인 상태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
추가로 러시아는 이란과의 협력관계를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이용하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자신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또한 시리아 난민사태가 보여주듯 러시아에게 중동은 간접적으로 유럽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이란과 러시아는 이념적으로 유사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친밀하지 않아 상호 신뢰는 낮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와 서구적 가치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란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의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친(親)러시아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이란핵합의’ 이후 테헤란에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가입과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FTA를 권유하고 5억 달러의 차관 제공을 약속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엔 유라시아대륙 내 최대 지역안보협력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이란이 가입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기도 하였다.
시리아 내전이 종결되더라도 러시아는 비서구적 발전모델의 선도(先導) 국가로서의 지도력을 잃지 않아야 유라시아 지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위협하는 미국, 유럽, 중국, 인도에 대한 간접적 견제수단으로 중동에서 시아파 맹주로 불리는 이란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이란에게 러시아는?
이란의 러시아에 대한 전통적 불신은 깊다. 1828년 이란은 러시아와 불평등조약인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맺고 광대한 카프카스의 영토를 빼앗기고, 약 30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지불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조약은 이후 이란과 유럽제국 간 조약의 기준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이란인들에게 굴욕의 역사로 기억된다. 이후에도 러시아는 이란의 정치에 개입했으며 2차 대전 당시 소련은 이란 영토를 점령하고 전쟁 후에도 떠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란에게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개선이 더 이득이 되면 언제든 자신들을 버릴 수 있는 믿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란은 대(對)서방 외교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로 러시아를 활용하고자 하며 이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2016년 1월 양국은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하였고 그해 8월에는 공군기지(Shahid Nojeh)를 러시아 전투기들이 사용하도록 협조하기도 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이 자국 영토를 외국군에 작전용도로 제공한 것은 당시가 최초였다.
이란은 중동에서 시아파의 맹주이지만 다수가 수니파인 아랍세계에서 소수파의 위치에 있다. 사우디 등 대부분의 걸프연안 국가들이 미국과 제휴하고 있고, 서구적 가치로 보면 엄격한 신정(神政)정치를 고수하는 이란은 정상국가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이란입장에서는 비서구적 가치를 표방하는 글로벌 강자(强者) 러시아와의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시리아는 1950년대 말 이후부터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지속해온 유일한 아랍 국가이다. 하피즈 정권 당시에도 집권 바트당은 공산주의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련과 이념적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게다가 친소 노선을 지향했던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사망(1970년)하고 후임인 사타트 대통령이 친미 노선으로 전환하자 소련에게 중동에서 시리아가 갖는 위상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우호적 관계는 소비에트 붕괴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시리아는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아랍·중동 지역 및 지중해에서 영향력 투사를 위한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 당시(1971년)부터 동지중해의 타르투스(Tartus)항을 소련해군지원센터로 장기 임차해왔으며 이 시설을 앞으로는 완전한 해군기지로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현재 흐메이밈(Khmeimim) 공군기지에 전력을 증강 배치하여 이곳이 중동에서 서방군대의 활동을 견제하는 포스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국가들에게 자국과 구소련 지역의 안보에 관련이 있다면 역외(域外) 지역에도 개입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또한 시리아에서 반군이나 수니계 세력이 승리하는 상황을 막음으로써 자신들의 협력 없이는 시리아 내전, 중동 내 무장 세력의 확산, 유럽으로의 난민문제 등이 해결될 수 없음을 과시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의 해결과정에 적극 개입하고 이에 대한 댓가로 서방세계에 자신들의 크림반도 병합을 묵인하고 부과된 경제제재를 철회할 것을 압박하려 한다. 또한 2차적 중요성을 지닌 시리아에도 개입함으로써 사활적 안보 지역인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지역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이란에게 시리아는?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이란과 시리아는 미국, 이라크 및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유지해 왔다. 시리아는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공격했을 때, 중동국가 중 이란의 편에 서 준 유일한 나라였다. 양국은 함께 무장세력을 지원하여 아랍과 이스라엘 간 평화를 정착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좌절시켰고, 걸프전 이후 이라크 안정화 노력도 방해했다.
양국은 집권세력의 이념적 차이, 인종 차이 외에 종파적으로도 정서적 융합이 어렵다고 평가된다. 같은 시아(shia)파로 분류되지만 '열두 이맘파'는 '알라위파'를 이단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영향력에 대항하고 서방적 가치 침투에 저항한다는 공통 목표가 30년 이상 동맹관계를 가능케 했다. 그동안 이란은 아사드 정권 유지에 필사적이었으며 현재도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수니파 정권 등장을 사전 차단하여 자신들의 지정학적 고립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다. 소위 ‘시아파 초승달(the Shia Crescent)' 라 불리는 ’이란에서 이라크, 시리아 및 레바논을 연결하는 시아파 연합‘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내전 직전 시리아의 수니파 인구는 70% 이상이었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최소한 알라위파 정권을 존속시켜야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을 유지하면서 외교적 고립을 피할 수 있다.
'카타르 가스 파이프라인'과 '이슬람 가스 파이프 라인'
시리아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천연가스 운송 파이프라인에 관한 갈등이 지목된다.
지난 2011년 7월, 시리아·이란·이라크는 100억 불의 비용을 들여 '이슬람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이란은 자국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시리아·레바논을 거쳐 지중해 연안까지 연장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 계획은 현재 시리아 내전으로 중단 상태이다.
이에 앞서 2009년 카타르는 유럽시장을 위해 카타르·사우디·요르단·시리아·터키를 잇는 '카타르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아사드에게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처럼 시리아 내전의 이면에는 세계 최대의 가스 유전으로 알려진 이란의 남부 파르스 유전과 카타르 북부 돔 유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판매망 확보 경쟁이 있다. 그 판매망의 중심지에 시리아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것은 시리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란이 주도하는 이슬람가스 파이프라인이 현실화 될 경우 러시아는 천연가스 유럽 공급량 축소로 커다란 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유럽을 천연가스 통제로 압박해오던 우월한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가 시리아를 끝까지 지원하여 서방 및 중동지역 수니파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