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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30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나?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이렇다 할 질문도 없고 반응도 없어서 잘 알아듣는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 선생님은 정말 답답합니다. 세상살이에도 항상 반응을 기대하고 그 반응에 따라서 삶을 사는데 활력과 재미도 있을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도 상하고 감정도 고조될 수 있으며, 오해도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부부나 부자간에나 사제지간에는 그 문제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항상 같이 살고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반응에 의해서 생활은 크게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도 한쪽에서 자극을 주면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서 신앙의 크기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에서 반드시 매번 자극을 주어야 반응을 일으켜 신앙이 성숙된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령의 특은으로 생겨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오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교육학에서 말하는 '자극(stimulus) >>> 반응(response)'의 공식은 우리의 세상살이 순간순간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을 주시기도 하고, 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그 사랑에 반응하지 못하고 아주 무감각하게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현상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철이 들어 주님 앞에서 고백하고 저희도 당신의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성령을 받았으니 흩어져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심어주시면서 이제 우리가 나설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대로 반응 없이 짝사랑하시는 주님을 멀건이 쳐다보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주님께 실망하지 않도록 우리가 앞장서야 할 때가 이미 왔고 빨리 흘러가고 있답니다.
'세상을 이기셨다'는 주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로 생각됩니다.
첫째, 세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악마와 악마의 사주를 받은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그들과 한판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사슬에서 허덕이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죄와 악마의 사슬에서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모든 유혹과 악의 근원에서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답니다.
둘째, 전략적으로도 이기셨습니다. '승 - 승(勝 - 勝)'전략으로 이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승-패'의 전략도 아니고, 더구나 '패-승'이나 '패-패'의 전략이 아닌 'win - win'의 전략으로 세상도 이롭게 하시고,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승 - 승'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비굴하게 누구든지 끌어내리지 않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답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래야 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가 갈라져나간 형제들을 감싸 안는 포용력을 더 키워야 한답니다.
세째,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법은 탈출기와 같이 모든 재앙을 뛰어넘는 파스카의 신비를 통해서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을 통하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협력자 성령을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주시는 시련을 겪고, 극복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을 통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잘 인식해야 한답니다.
네째, 세상을 이기시는 방법으로 지옥문도 쳐 이기는 교회를 통해서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워주신 교회를 통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통해서 더욱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야 한답니다. 개인적인 승리 보다는 공동체의 승리를 더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개인적인 신심과 신앙생활보다는 공동체의 신앙으로 더욱 성숙된 교회를 건설해야 한답니다.
다섯째,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당신께서 처참하게 돌아가시고, 희생 양이 되시며, 멸시와 조소와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저희도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저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여야 한답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 동안 아주 교만하였던 삶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당신의 희생과 헌신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평화로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이기도록 무장시켜 주십니다. 평화와 사랑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이기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시어 우리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용기는 싸움터에 나가는 전투적인 크리스천에게 필수 조항입니다. 그런데 용기는 세상의 악과 악마의 권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용기이지만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께 상처를 드려 상심하실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과감히 치료하기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정신도 용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잘못한 것과 죄 지음을 용서 청하며, 이웃이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정신과 태도도 용기입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움과 큰 아량을 갖는 것도 용기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꾸준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9,1-8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축일5월 30일 성 요셉 마렐로 (Joseph Marello)
신분 : 주교, 설립자
활동 지역 : 아퀴(Acqui)
활동 연도 : 1844-1895년
같은 이름 : 마렐루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마렐로(Josephus Marello)는 1844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Torino)에서 아버지 빈첸초(Vincenzo)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마렐로(Anna Maria Marell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은 토리노에서 아스티(Asti) 근방의 산 마르티노 알피에리(San Martino Alfieri)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정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이 신심은 후에 그가 성소를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충실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12살 때 아스티의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의 선한 품성과 거룩한 생활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다. 19살에 발진티푸스에 걸렸을 때 그는 살려주시면 꼭 사제가 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했고, 무사히 병이 나아 1868년 9월 19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을 다해 사제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처음에 그는 아스티 교구에서 주교의 비서로 일했고, 이어 교구청의 행정을 조정하는 사무처장의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사목직 안에서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와 교리교육에 헌신하며 젊은이들의 윤리와 종교 교육을 충실히 도왔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맞은 교회를 위해 교황과 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통해 평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면서 그는 카르투지오회에 들어가 전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에 대해 고심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일깨우며 단념하도록 설득했다. 주교는 성 요한 마렐로의 전인적인 헌신과 열망이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당시 혁명 법의 여파로 아스티에서 질식하다시피 쇠퇴한 남자 수도회의 소생을 알리는 시작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성 요셉 마렐로는 1878년 3월 14일 하느님 말씀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돌본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는 ‘성 요셉의 봉헌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새로운 수도회의 신부와 수사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성 요셉의 헌신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지역 교회의 직무를 충실히 돕는 임무를 맡겼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그는 자신의 주교를 돕는 비서로 동행했는데, 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된 조악키노 페치(Vincenzo Gioacchino Pecci) 추기경은 이때 그의 덕성과 재능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에 즉위한 레오 13세는 그를 아퀴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그는 1889년 2월 17일 주교품을 받았다. 성 요셉 마렐로 주교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의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교리교육과 젊은이들의 신앙교육 그리고 본당사목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 선종 3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보나(Savona)에 갔다가 1895년 5월 30일 선종하였다. 1993년 9월 2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아스티에서 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애덕의 모범으로, 젊은이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꾸준하면서도 소리 없이 노력한 모범으로 그를 제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사목자와 전 세계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그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2001년 11월 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축일5월 30일 성녀 잔 다르크 (Jeanne d’Arc)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아르크(Arc)
활동 연도 : 1412-1431년
같은 이름 : 요안나, 요한나, 잔, 잔느, 잔다르크, 잔다크, 쟌, 쟌다르크, 쟌다크,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일명 오를레앙(Orleans)의 처녀로 불리는 성녀 잔 다르크(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Arcensis)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Champagne) 근처에 있는 동레미(Domremy)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농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시기는 백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고, 당시 동레미는 영국군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했던 그녀는 1425년 13세가 될 무렵에 대천사 미카엘(Michael, 9월 29일)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11월 25일)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7월 20일)와 함께 나타나 부친의 집을 떠나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을 찾아가고 나아가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군대를 몰아내라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 ‘음성’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순결 서약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 5월에 그녀는 샤를 7세(Charles VII)를 도와 부르고뉴(Bourgogne)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영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오를레앙 지역을 탈환하고, 내전으로 분열된 프랑스를 국왕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샤를 7세가 보쿨뢰르(Vaucouleurs)에 파견한 장군을 찾아가 프랑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언대로 샤를 7세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1428년 10월 12일 그의 거점 지역인 오를레앙이 포위되었다. 1429년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영국군에 의해 패배하자 그녀는 3월 시농(Chinon)에 피신해 있던 샤를 7세를 찾아갔다. 샤를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군사 작전에 나서기 전 푸아티에(Poitiers)로 가서 주교와 학자들 앞에서 최종적인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음성’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그 ‘음성’은 사실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주장에서 이단이나 미신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하느님이 파견한 예언자이자 투사로 알려졌고, 그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흰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1429년 5월 7일 오를레앙에 입성하고 5월 8일에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1429년 7월 17일 샤를 7세는 랭스(Reims)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1430년 4월에 위험에 빠진 콩피에뉴(Compiegne)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이 들은 계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한 결과, 1456년 7월 잔 다르크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그녀의 명예 역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는 1909년 4월 18일에야 비로소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셉 마렐로 (Joseph Marello) 형제들과 잔 다르크 (Jeanne d’Arc)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