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확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우리는 압니다’라는 표현은 정말 견고한 확신입니다. 바오로의 ‘안다’는 표현은 ‘믿는다’는 표현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보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그를 믿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뵌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8-9)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신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늘 사랑하고 기뻐하고 갈망하고 예배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본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 5,7)
바오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선포합니다.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보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는 차원보다 더 깊고 더 높고 신비한 차원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마다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기적은 날마다 매 순간 우리 앞에서 전개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연 속에 살아 계십니다. 또한 우리 숨결 속에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을 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먼저이고, 보는 것이 나중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며칠이 지나 라자로의 무덤을 찾아가십니다. 사람들에게 “돌을 치워라.”고 명령하십니다. 라자로의 누이 마르타가 예수님의 말씀에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라고 반응합니다. 마르타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아주 소중한 영적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믿음은 정말 놀라운 능력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즉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내가 압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물론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잠시 흔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섭리에 대한 지식과 믿음과 확신을 가지면 잠시 당황하고 잠시 흔들릴 수 있어도 아주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드라마입니다.
바오로가 로마서를 쓸 때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는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역경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고소를 당했습니다. 미움을 받았습니다. 많이 아팠습니다. 그는 약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확신에 차서 로마서 8장 28절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협력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압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느님의 섭리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은밀히 행하시는 하느님이신 까닭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구체적인 진모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서서히 드러납니다. 또한 우리 생애를 돌이켜 보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팔려 갈 때 그에게 일어난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포티파르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을 때 그가 섬기던 주인의 버림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재상이 되고 7년 풍년이 지나고 7년 흉년이 시작되어 그의 형제들을 만났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섭리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미워하여 자신을 판 형제들을 만났을 때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요셉의 언어 속에는 하느님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그의 온 집안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창세 45,5-8)
요셉은 모든 일이 하느님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의 형제들의 잘못까지도 하느님의 섭리임을 믿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찾아와 용서를 청하는 형제들을 보자 웁니다.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대한 요셉의 선포입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50,20)
하느님께서는 요셉의 형제들의 질투와 미움과 악함과 실수를 모두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라고 권고합니다.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은 뒤로 돌아볼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멈추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셨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우회로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우리에게 그 우회로들이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폴 투르니에
우리의 과거가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그 과거는 새롭게 이해되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누구에 대한 원망도, 불만도, 원한도 갖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 모든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때로는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가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