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신뢰하는 낙담하지 않는 종
주일에 목사님께서는 이사야 42:1-4을 중심으로 “이 사람을 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네 가지로 본문을 설명하셨는데 네 번째로 “낙담하지 않는 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약하여 보내주신 것을 먼저 옮겨봅니다.
4절에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어려움이 참으로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쇠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세상에 정의를 세워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일평생 동안 환난과 핍박과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예수님처럼 많은 핍박을 당하고, 예수님처럼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쇠해지지 않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마귀가 방해하는 방법은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고 오해할 때 낙심하게 되고, 열심히 일하는데 알아주지 않고 비방할 때 낙심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고난이 오고 박해가 올 때 낙심하기도 합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우리가 낙심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낙심될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참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소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도 낙심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즉시 낙심하는 마음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시편 42: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낙심하는 자신을 스스로 꾸짖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평안이 오고 감사가 생기고 찬송하게 됩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슬픔과 낙심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로마서 15:13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기쁨과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됩시다.
참으로 마음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낙심에 대하여 며칠간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접했던 자료들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1. 천국에 대한 두 순례자의 대화
이렇게 해서 '완고'가 떠난 뒤에 '크리스챤'과 '유약'은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넓디 넓은 벌판을 함께 걸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크리스챤' 씨,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또 그곳에서는 무엇을 얻게 되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해 봐요."
그러자 '크리스챤이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어요. 또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쓸 수 있고 찬란하게 빛나는 옷을 입게 될 거예요."
"생각만 해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네요. 또 다른 것은 없나요?"
"그곳은 우리가 살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곳이랍니다. 지금까지는 늘 슬픔 속에서 지냈지만 이제 그곳에 가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흘린 눈물을 모두 닦아 주시거든요."
이에 '유약'도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정말 마음이 흐뭇해지네요. 매우 유쾌합니다. 나의 다정한 친구여, 우리 좀 더 속력을 내서 걸어요. 그곳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요!"
그러자 '크리스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난 내 등에 짊어진 이 무거운 짐 때문에 당신처럼 빨리 걸을 수가 없어요."
'낙심의 수렁'에 빠진 두 순례자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벌판 한 가운데에 있는 수렁에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을 꿈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수렁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두 사람 모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수렁은 바로 '낙심의 수렁'으로 이곳을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빠졌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리다 온 몸이 진흙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크리스챤'은 등에 진 무거운 짐으로 인해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어가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유약'이 '크리스챤'에게 소리쳤습니다.
"'크리스챤' 씨, 도대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요?"
"아, 나도 모르겠어요."
'유약'의 불평과 포기
순간 '유약'은 '크리스챤'의 말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노한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이제껏 나에게 말한 행복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가요? 얼마 떠나지도 않아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으니,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유약'은 간신히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짐이 없었기 때문에 '크리스챤'보다 쉽게 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유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자기 집으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크리스챤'
'유약'이 떠난 뒤 수렁 속에 혼자 남게 된 '크리스챤'은 좁은 문이 있는 목적지를 향해 기어 오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드디어 그 주변까지 다다르긴 했지만 등에 진 그의 짐 때문에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크리스챤' 앞에 나타난 '도움'
바로 그 때 '도움'이라 불리우는 사람이 '크리스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챤'을 보더니 그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그곳에 빠졌나요?"
"'전도자'라는 분이 이 길로 가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데 걸어가다 그만 이런 지경이 되었답니다."
"아니, 왜 징검다리를 못보았소?"
'크리스챤'이 이에 대답했습니다.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보지를 못했어요."
'도움'의 원조
"자. 이리 손을 내밀어 봐요." '도움'은 즉시 그를 수렁에서 끌어 올리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은 바로 낙심의 수렁이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자주 빠졌지요. 바로 당신처럼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라오. 이곳에는 두려움이나 공포, 의심이나 낙심 따위가 가득 고여 있소. 그러므로 수렁이 이러한 진흙들로 잔뜩 고여 있을 때에는 징검다리를 찾기가 힘들답니다.“
2.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문에 새겨진 글귀
단테는 지옥의 뱃사공 카론을 지나서 지옥의 문과 거기에 새겨진 글귀를 보게 된다. 가장 유명한 구절인 제3곡 첫 번째 부분은 마지막의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라샤떼 오니 스페란짜, 보이 껜뜨라떼: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
내 앞에는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Before me things create were none, save things
Eternal, and eternal I endure.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3. 365 날마다 주님과 함께 생명의 말씀 12월 25일의 말씀
몇 년 전 뉴잉글랜드의 동부 연안에 있는 한 항구에서 많은 고깃배들이 출항했다. 그러나 오후쯤 되어 큰 폭풍이 일자 어선들 중 단 한 척의 배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온 가족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한 오두막에 불이 났다. 다음날 아침 기쁘게도 모든 어선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그때 불타버린 집의 여주인만은 울상을 지으며,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집과 모든 물건들이 다 타버렸어요.”라고 하자 남편은 “여보, 오히려 그 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바로 그 불 때문에 모든 어선들이 무사히 올 수 있었다오.”라고 말했다.
4. 어떤 분의 글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 91:15)
넘어졌다고 다 패배한 것이 아니다. 넘어진 후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진짜 패배다. 사탄은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넘어졌을 때 너무나 기뻐서 깔깔대며 웃고, 두 번째로 우리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여 좌절시킨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가 승리할 수 있다.
*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 길에서 이런저런 짐을 지고 가면서 낙심의 수렁에 빠질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몸과 마음이 쓰러져 있을 때 오직 사탄만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늘 도와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수없이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두려워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들지 못하고 의심할 때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픈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낙심의 수렁에 빠진 크리스챤에게 도움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는 두려움이나 공포, 의심이나 낙심 따위가 가득 고여 있소. 그러므로 수렁이 이러한 진흙들로 잔뜩 고여 있을 때에는 징검다리를 찾기가 힘들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처럼 많은 어려움을 겪고, 배반을 당하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의 최종의 승리를 기억하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