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이는 오름이 지미봉이다. 저 오름은 제주에 일주일 이상
머무르는 사람만이 오를 수 있다. 2박 3일 정도로
제주에 온 사람들은 저 오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므로.
중간고사 기간에 모두 제주시로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다.
불타는 한라산의 노을은 일상에 찌든 마음들을
장엄하게 만든다. 육지를 고향으로 삼은 이방인들의
눈에 저 한라산은
거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해가 진다. 나는 엊그제로 만 51세를 찍었다.
오래 살았다. 그러나 한 살을 살고 죽건 100살을 살고 죽건
전체 우주의 나이로 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부처는 그래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생각한 거다.
成住壞空이다. 이루어서 머물러 살고 무너지고 공허만 남는다.
그러나 공허를 깨닫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주를 떠돌다
지구별에 안착한 하나의 풀씨가 생명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원의 생명체가
유전자를 집적하고 후세대에 물려주어
내가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너는
실은 나이고, 나는 또한 너이다.
그러고 보면 The selfish gene(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불교도인지도 모른다.
제주섬은 화산이 폭발하여 이루어졌다.
모든 해안선이 저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제주에 처음 와서 저 바위들을 보면서
짙은 동류의식을 느꼈다.
내 마음의 숱한 구멍들도
마음 속의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 등대가 서 있다.
며칠 전 캄캄한 저녁에 소주를 사 들고 와서 바다를 보면서 마셨다.
그런데 인기척이 들려와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니
한 여자가 와서 소주를 마시며 울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내가 등장하면서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어젯 저녁 학교 회식 자리를 떠올렸다. 교감, 교장의 인사말과 건배 제의가 끝나자 마자
술판은 술병과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형국으로 돌변하였다.
절반이 서 있었다. 10분도 안 돼 내 옆자리가 5명이 바뀌었다.
3학년 학년주임이 술병을 들고 주당들 옆으로 가니
학생부장 고안수 선생이 와서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권했고, 조금 있으니 수학 김대원 선생이 왔고,
조금 있으니 체육 김성식 선생이 와서
내년 여름엔 자기랑 같이 스킨스쿠버를 하잔다.
30분도 안 돼 소주를 서너 병 마신 것 같았다.
일어나 보니 제주항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있었다.
술도 깰 겸 세화에서 성산까지 걷기로 했다.
바다의 색은 여자들이 손가락에 끼는 에메랄드 반지 색깔이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비싼 카메라를 사는 이유를
알았다. 의현이가 준 이 카메라도 좋지만
저 바다의 색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는
조금 못 미치는 것 같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성산까지 걷는 도중 나처럼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온갖 탈것들이
제주 해안도로를 질주한다.
자전거, 스쿠터, 최민수가 타는 오토바이,
자동차...나는 자전거도 없으니 걷기로 한다.
실은,
멈춰있는 것이 좋다. 더 좋은 것은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딛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다시 멈추는 것이다.
나는 유독 물을 좋아한다.
더구나 저 맑은 제주도의 바닷물의 색깔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 바다에 좌초한 네덜란드 사람 하멜은
맨 처음 제주에 상륙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당시 조선 사람들은
왜 하멜의 활용가치를 인식하지 못했을까. 나라면 금방 친해져서
매일처럼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 없는 그 무엇을 신기해 했을텐데.
그는 결국 탈출하여 일본 나가사키로 가고 말았다.
물론 일본인들은 그를
120% 이용해 먹고 그를 조국인 네덜란드로 돌려보냈다.
저 검은 바위들에 선혈이 뿌려진 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와 죽창 등으로 찔려죽었다.
제주도의 마을들에는 집집마다
제삿날이 같은 경우가 많다. 야만의 세월을 간신이 보내고 나서 60년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섬은 아직도 상처가 채 치유되지 않았다.
저 검은 바위들은 그날의 아우성을 기억하고 있을까.
출항하지 못하고 기둥에 매여있는 조각배 한 척. 난바다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마음에 난바다가 있다.
나는 내 마음에서 파도 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어떤 선율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였다.
오랜만에 평화가 내 마음에서 물결친다.
매여있는 배를 보고 마음 아파 할 일은 없다. 물을 건너면
뗏목을 불살으라고 한 이는 부처였다. 마음 속의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잘 드는 칼로 잘라버리면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렇게 한 것처럼.
서울 용산에 가면 '전쟁기념관'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못마땅하다. 기념할 게 없어서 전쟁을
기념하는가. 기념이란 좋은 것을 오랫동안 가슴에 새기기 위하여 존재하는 단어이다.
같은 맥락으로 저 '해녀박물관'이라는 말도 못마땅하다.
해녀는 사람인데 사람을 어떻게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는가.
낚싯대를 둘러메고 저 길의 끝에 가서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대폿집에 들러서
대폿집 아낙네에게 내 잡은 물고기로 환심을 사서
막걸리 한 됫박 마시고 싶다.
바다에 아무것도 없는 듯싶지만 자세히 보면 점점이 고기잡이 배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바닷속에는 숱한 물고기들이 놀고 있을 것이다.
이번 생은 인생이지만, 나의 전세나 내세는 축생일 수도 있다.
나라는 유기체에 누군가의 유전자를 집적하도록
지령한 이는 누구일까.
저 바위들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면
저 돌담은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구멍이 있기 때문에
수양버들처럼 흔들리면서 무너지지 않는다.
노자의 말이 딱 맞다.
"이는 부러지지만 혀는 살아남는다. 굳센 것은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살아남는다."
저 돌담 곁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스마트폰에다가 시를 썼다.
이렇게 혼자 먼 길을 가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아직도 세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이 맑으므로 내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는 것 같다.
오늘밤까지 성산에 도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가다가 어느 주막집에서 잠을
청하면 되니.
첫댓글 얌마 넌 제주도 애들 가르치러 갔나? 술병 들고 여행하러 갔냐? 하여튼 부럽다, 멋진 사진 몇 장 옮겨간다.
애들이 내 선생인데 어떻게 애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 너나 애들 잘 갈쳐라. 나는 애들하고 놀다 갈란다.
제주도의 바람이 느껴지네요~ 자유까지^^
제주섬은 화산이 폭발하여 이루어졌다. 모든 해안선이 저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제주에 처음 와서 저 바위들을 보면서 짙은 동류의식을 느꼈다. 내 마음의 숱한 구멍들도 마음 속의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글이 내 맘에 와닿네요>
찾고 싶어서 가고, 갔더니 맘이 훈훈해지고 편안해 진다면 내 생의 어느 한 조각에 그곳과 연이 있었을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저, 그냥 바라만봐도 나인냥, 하나인듯 서글퍼지면. 에전에 나는 그것이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