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하느님의 뜻을 깊이 알게 한다
“교만한 자들이 제게 거짓을 꾸미나 저는 제 마음 다하여 당신 규정을 따릅니다.”(시편 119,69)
악한 자들이 시인에 대해 중상모략을 하고 올가미에 몰아넣어서 시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좌절시켰습니다. 악인은 오랜 세월 계획했겠지만, 시인은 하루아침에 대책 없이 당했기 때문에 분노와 당혹감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원망하기 가장 좋은 바로 그때, 시인은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주님, 당신의 법규가 제가 의로움을 제가 압니다. 성실하시기에 저에게 고통을 겪게 하셨습니다.”(시편 119,75)
악인들 때문에 억울하고 극심한 고난을 오랜 세월 겪고 있는데, 그 와중에 하느님의 의로우심과 성실하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얼핏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인생이 잘 풀릴 때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은 정말 성숙한 믿음입니다. 시인은 고난 속에서 지극히 깊은 신앙의 세계로 올라선 것입니다.
상담 전문가로 유명한 데이빗 씨맨즈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이 세 살쯤 되었을 때, 발이 비뚤게 태어나 정상적으로 걷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빠가 30분씩 병으로 아이의 발을 잡고 밀어주는 것인데 아이가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꾹 참고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보니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아빠 싫어. 아빠 미워”를 외쳐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계속 치료를 했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나, 완전히 회복된 건강한 두 발로 자기 학교의 테니스 대표 선수가 되어 펄펄 나는 아들을 아버지는 지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원망했던 아들은 지금은 항상 아버지에게 그때 일로 고맙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는지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알지는 못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를 믿기에 이해가 안 돼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실수가 없으심을 믿고 감사하며 담담히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절규를 들으시면서도 하느님께서는 그냥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해야 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도 하느님께서 듣고 계시지만 그냥 겪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직은 알 수 없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원이 하느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심을 보여줬듯이,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느님의 어떤 선하신 뜻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숨겨진 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저자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보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시편 119,72)
시편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로 그분과 살아 있는 대화를 하게 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직접 입을 열어서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명필들이 쓴 위인들의 말을 표구해서 걸어두고 봅니다. 그런데 우주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내게 현재진행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난관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평온과 즐거움도 주시며, 도와줄 사람도 보내주십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어느 외국인이 “한국어에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욕을 먹었다”, “한 골 먹었다”, “한 방 먹었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영어에는 절대 이런 표현이 없습니다. 욕을 듣고, 한 골을 잃고, 한 방 맞는 것이지, ‘먹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주 속상하고 기분 나쁜 일인데, 냉면 한 그릇 해치운 것처럼 ‘먹었다’라고 표현하면 완전히 느낌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뭘 먹으면 그것을 소화해서 더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비판도, 배신도, 고통도 다 먹어버리면 됩니다. 소화만 잘 시키면 더 성장하게 됩니다. 고통을 용해시키는 영혼의 소화액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고통 속에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고통에 담긴 독소는 다 녹아버리고 하느님의 은혜만 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의 공격에 반응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까닭없이 저를 억누르니 교만한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그러나 저는 당신의 규정을 묵상합니다.”(시편 119,78)
사람들은 나를 박해하지만,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극심하지만, 그것을 묵상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영적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내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자꾸 생각하면 분하고, 잠이 안 오고, 속병이 쌓입니다. 백해무익입니다. 독풀은 씹을수록 독만 나오듯 상처와 사람도 묵상해봐야 영혼에 독만 나옵니다. 이것은 고통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약초를 오래 씹어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고통스러울수록 하느님 말씀을 간절히 묵상해야 생명수가 흘러나옵니다. 배고파봐야 음식 귀중한 것을 알 듯이, 고난 속에 들어가 봐야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전에는 건성건성 듣더 말씀이 고통 속에서는 하나하나 불꽃 같은 말씀이 되어 .마음에 새겨집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