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2. 7월 초대시조〉
민달팽이
김주경
별을 본다는 건 하늘을 본다는 것
하늘을 본다는 건 고개를 들었다는 것
잘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바닥만 섬겼을까
직립을 배우지 못해 생은 자꾸 흔들리고
처세술도 모른 채 곧추세운 두 개의 뿔
맨발로 걸어온 문장만이
첨삭 없는 자서였다
김주경
경남 밀양 출생. 201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등단. ‘서정과현실’ 신인상. 2015년 아르코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조집 『은밀한 수다』.
시인이 만든 시적 풍경이 암담하다. 연체동물로 태어나 바로 서지 못하고 바닥만 기어가는 민달팽이, 그러나 두 개의 뿔을 자존감인 양 곧추세우고 한발 한발 내딛는 민달팽이의 힘찬 기개가 엿보여 또한 희망적이다.
어느 회사의 면접 담당자가 면접을 보러 온 청년에게 “민달팽이 님, 언제 출근 가능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달력에다 “민달팽이 출근”이라고 써 놓았다는 글을 인터넷 검색하다 보게 되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교대근무에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과 일의 강도가 너무 센 그 회사에 합격이라는 문자가 오자마자 정중히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비록 첨삭 없는 자서 뿐이지만 청년들이여 가끔은 고개를 들어 ‘별’을 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하늘’을 보아야 한다. 우리 앞에 ‘바닥’만 놓여있는 것 같지만 눈을 들어보면 무수히 많은 반짝이는 별들과 호수만큼 깊고 넓은 푸른 창공이 펼쳐져 있다.
“첨삭 없는 자서”나 “맨발”이 은유하는 이 땅의 많은 민달팽이들, “왜”라는 시어 하나에 응축돼 있는 의미가 남다르게 가슴에 와 콕 박히는, 그래서 “잘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바닥만 섬겼을까” 라는 시인의 일설이 아프지만 희망적이다.
손영희 시조시인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