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 나라 궁예 왕은 자신의 영토가 넓어지고 세력이 강해지자 거만해지더니, 성질마저 사납고 포악해졌습니다. 처음 후고구려를 일으키던 때의 큰뜻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아무리 공을 많이 세운 훌륭한 신하라도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면 그 자리에서 사정 없이 목을 베었습니다.
또한 부인을 행실이 나쁘다는 핑계로 죽이는가 하면, 그것을 말리는 아들들까지 모두 죽이고도 후회하는 빛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기의 가족까지 죽이니 부하나 백성들에 대한 행패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마침내 궁예의 신하인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등이 왕건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왕건 장군, 지금 임금은 왕비와 왕자들까지 죽이고, 신하들을 괴롭히며, 백성들을 매우 살기 어렵게 만들었소. 예로부터 성질 이 사납고 악해진 임금을 버리고, 어진 임금을 내세우는 것은 천하의 큰뜻이니 왕건 장군은 부디 우리의 뜻을 받아 주시오.“
”이미 여러 대신들과 의논하여 결정된 일이니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왕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찾아온 네 장군은 입을 모아 한결같이 왕건에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충직함을 목숨처럼 지켜 왔소. 지금 비록 나라의 임금이 폭군이 되었다고는 하나 어찌 감히 신하 된자가 임금을 몰아 내고 그 자리에 앉는단 말이오. 더구나 나같이 덕이 없는 사람이••••••.“
그러나 찾아온 네 장군은 왕건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고, 기회는 만나기 어려운 법입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시면 도리어 크나큰 재앙을 받게 됩니다.“
그 때, 슬기롭고 어질기로 이름난 왕건의 부인인 유화 부인이 밖에서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어질지 못한 사람을 어짐으로써 치는 것은 예부터 있어 온 당연한 처사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저 같은 아녀자도 분함을 참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대장부이신 당신께서 어찌 참는단 말씀을 들으니 저 같은 아녀자도 분함을 참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대장부이신 당신께서 어찌 참는단 말씀이십니까? 이것은 백성을 구하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어서 큰일을 이루십시오.“
유화 부인은 서둘러 갑옷을 가져다가 왕건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왕건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마침내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 때, 네 명의 장군들이 왕건을 호위하며,
”왕건 장군께서 의로운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하고 외치니,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왕건의 뒤를 따랐습니다.
서기 918년 6월, 왕건은 드디어 왕위에 올라 나라이름을 ‘고려’ 라 정하니, 고려의 첫임금 곧 태조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 때 어진 유화 부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편에게 힘을 북돋우지 않았다면 왕건은 고려 태조가 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반대로 유화 부인이 자기 집안의 편안만을 바라고 찾아온 네 장군을 궁예 왕에게 고발했다면 왕건은 의를 버리고 자기 목숨이나 이어 가는 천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역사에 졸장부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어진 부인은 자기 남편을 귀하게 하고 악한 부인은 자기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는 교훈은 시대를 달리하여도 변함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어진 부인은 남편을 귀하게 하고, 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예림당) 이야기 명심보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