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는 개인적인 느낌을 적었습니다.
훈민정음의 미스테리 – 후기 / 하성일
처음 ‘훈민정음의 미스테리’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한글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문자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세종대왕은 몽골·여진·거란어, 산스크리트어 같은 여러 표음문자와 한자 발음 연구를 깊이 살핀 뒤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점이었다. 언문·훈민정음·한글의 차이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 초성·중성·종성을 명확히 나누어 만든 한글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삼분법적 문자다. 이 구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사유를 드러낸다. 삼태극, 삼일신고, 천부경, 단군신화처럼 전통 속에서 ‘셋의 조화’는 늘 중요한 원리였다.
물론 삼분법은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서양에도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 불·법·승의 삼보, 하이데거의 존재·현존재·존재자처럼 보편적인 삼분 구조가 있다. 그러나 서양은 구분과 분석을, 한국은 관계와 조화를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는 어릴 적 중국집에 가면 누군가 “짜장면으로 통일합시다”라고 하면 모두 웃으며 따랐다. 나는 그게 너무도 싫어했다. 웃어른이나 권위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싫었다. 오늘날에도 우리 문화에는 여전히 ‘통일’과 ‘함께’라는 정서가 강하다.
통일을 좋아해서 개성보다는 지금도 우리는 뭔가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조선이 망하고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에 미국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단체 행동이나 “다 같이 통일합시다”라는 것은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대신 내가 좋은 것을 선택하고, 양보와 배려보다는 손을 먼저 들고, 토론에서는 이겨야 하고,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 선진문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음식점에 가도 각자 자기 좋은 것을 시켰는데, 결국 서로 나누어 먹는다. 개인주의가 들어온 지 80년이 되었어도 우리는 관계성 언어를 쓴다. “저는 이게 좋아 보이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공을 자꾸 상대에게 넘기는 이 문화는 우리 사고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제와서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가 저급하거나 삼분법적 사고가 우월하다고 단정 짓기보다, 이분법적 사고와 삼분법적 사고의 통찰을 함께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분석과 경쟁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조화와 통합이 빛나는 순간이 있다. 상대적 사고를 통해 과학과 개성을 발전시키되, 무조건적인 통일성이나 모호한 경계로 개인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결국 균형과 통찰이 필요하다.
뒤풀이 자리도 마찬가지다. 함께 모여 대화하고 나누는 것은 좋지만, 경계가 모호해 늘 하는 사람이 억지로 더 부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카페에서 모이되, 음식은 회장단이 일회용으로 준비하고, 모두가 함께 나르고 치우며, 1차는 1시간 내로 정리하고 2차·3차는 따로 가자는 원칙을 세우면 좋겠다.
훈민정음의 삼분법은 결국 글자만의 원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까지 가르쳐 준다.
끝으로 임광기 님의 “메세나 코리아 29선”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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