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Art Nouveau.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새로운 미술'이란 의미이며 19세기 말의 유럽에서 일어난 특수한 미술 경향을 말한다. 1890~1910년 사이의 '세기말'에 유럽과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유행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한 양식이다.
빅토르 오르타가 창시하였다.
아르누보는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사용한 말이며, 독일은 유겐트 양식(Jugendstil),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Stille Liberty), 프랑스는 기마르 스타일(Style Guimard)로 불렀다. 대표 작가로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알퐁스 무하(Alfons Mucha),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 구스타브 클림트 등의 작가가 있었다.
아르데코와 헷갈리기 쉽지만, 아르데코는 직선적이며 남성적인 분위기의 다른 양식이다.
2. 특징 ¶
'새로운 미술'이란 이름과 이러한 경향은 유럽의 전통적인 고전주의적인 미술의 방법에서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아르누보의 작가들은 르네상스 이후 그리스, 로마의 기둥과 조각만 줄창 바라보던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아르누보의 작가들은 그 해답을 과거가 아닌 자연에서 찾게 되었다.
다만 아르누보의 경우에는 순수미술보다는 주로 공예, 포스터, 건축 장식 같은 응용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순수미술 분야는 이미 인상파 등에 의해 혁신적인 운동이 진행되었었기 때문이다. 또한 윌리엄 모리스 등 공예가, 응용미술 작가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아르누보가 탄생된 배경도 고려되어야 한다. 더 이야기하면 너무 복잡하니 일단 패스.[1][2]
아르누보의 최대 특징은 예쁘다.(...) 농담 아니라 예쁘면 모든게 용서되는 시기였다. 그만큼 당시 시대 분위기는 낙관에 차 있었다. 표현상에서는 특징이 좀 있는데, 상당히 장식적이며, 여자가 주로 나온다. 예뻐야 되니까.(...)인남캐의 배척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었던 것. 또한 '새로운 미술'을 표방하고 나온 만큼 구시대의 입체적인 미술과 달리 표현이 평면적이며, 선과 면, 색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또한 고전적인 장식 대신 꽃과 덩굴 등 자연의 형태를 모방한 장식을 많이 활용하였고, 이 때문에 유려하게 흐르고 물결치는 선들을 많이 구사했다. 위의 알퐁스 무하의 작품이 전형적인 아르누보 작품이다.
아르누보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뿐만이 아니라 건축장식이나 가구 등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일단 구불거리는 덩굴같은 장식들이 수없이 휘감고 있는 기둥 같은 것이 보인다면 거의 아르누보 풍이라고 봐도 좋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역시 크게 본다면 아르누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2.1. 분리파와의 관계 ¶
아르누보는 그 당시 전 유럽에 강력한 영향을 떨쳤으며, 시기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개요에도 나와있지만, 지역별로 지칭하는 말조차 다르며, 산발적으로 생겨난 운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르누보는 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미술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는 분리파라고 불리우는 미술가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아르누보의 양식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클림트가 대표적인 분리파 작가다. 물론, 클림트의 경우에는 분리파에게 영향을 준 만큼이나 아르누보에도 강력한 영향을 준 기성작가이기도 했다.
분리파의 작품 역시 장식을 매우 선호하지만, 보다 직선적인 선과 기하학적인 문양, 남성적인 소재가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크게 봐서는 아르누보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다르지만, 큰 시각에서 본다면 비슷하단 말이다. 실제로 이후 시대에 벌어진 큰 변화에서 분리파나 아르누보나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사라졌다.(...)
3. 종말 ¶
아르누보는 순수미술보다는 주로 공예, 포스터, 건축 장식 같은 응용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르누보는 채 2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강력한 영향을 발산했지만, 금방 사그라들게 된다. 왜냐하면 20세기에 기계산업 중심으로 사회의 질서가 재편되었고, 이러한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미술을 부르짖는 모더니즘이 미술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르누보 역시 이전 시대에 비하면 새로운 미술이었지만,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어차피 낡았던 것이다.
게다가 장식을 불필요한 찌꺼기로 보며, 보다 순수한 형태, 기하학적 형상을 선호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입장에서 보면 장식과 아름다움에 헤롱거리는 아르누보는 퇴폐미술 그 자체였다. 게다가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장식이 많은 아르누보 제품보다는 모더니즘에 근거한 '디자인'된 제품이 훨씬 더 생산이 편리했다. 게다가 곧 터진제1차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금욕적이며 자기 비판적인 분위기로 간 점도 있다.
이러한 사회/이론적 당위성에 의해 아르누보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구시대 미술의 대표로 매도당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분리파 등의 비슷한 경향들도 같은 길을 걷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