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이 서로 맞싸우던 무렵, 그 한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한 신라는, 그 중에서 가장 힘이 약하여 번번이 다른 나라의 침입에 시달려 야만 했습니다.
특히 만주벌까지 매우 강한 세력을 떨치던 고구려와 해안 지방을 자주 침범하던 바다 건너 왜국에서는 화평을 앞세워 신라 왕실의 미사흔과 복호 왕자를 각각 볼모로 데려갔습니다. 볼모란 나라 시이에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상대 나라의 왕자나 중요한 사람을 잡아 두는 일입니다.
신라 제19대 왕인 눌지왕이 임금이 되기 전에 이 두아우는 남의 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습니다.
눌지왕은 이 두 아우를 그리워하며 슬픔 속에서 나날을 보내다가 병까지 들었습니다.
그 때, 용기와 지혜를 두루 갖춘 삽량주 태수 박제 상이 임금님의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해 두 왕자를 구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박제상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도 나라의 대신을 지낸 사람입니다. 용기와 슬기가 뛰어난 박제상은 온 고을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미 나라와 임금님에게 몸과 마음을 바쳤소. 비록 내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임금님을 잘 섬기는 어진 백성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오.”
마침내 박제상은 임금님의 아우인 미사흔과 복호, 두왕자를 구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박제상은 먼저 고구려로 갔습니다. 고구려에 볼모로가 있는 복호 왕자를 갖은 슬기를 다 써서 몰래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박제상은 다시 왜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역시 온갖 슬기를 다 써서 미사흔 왕자에게 자기의 옷을 바꿔 입혀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제상은 미사흔 왕자 대신 잡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박제상을 당장 잡아들여라.”
왜왕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박제상을 불러 미사흔 왕자를 숨겨 둔 곳을 밝히라고 매질과 온갖 고문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제상은 미사흔 왕자가 왜군의 추격을 벗어나 바다 멀리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며 참기 어려운 고문을 견디었습니다.
왜왕은 박제상의 굽힐 줄 모르는 충성심에 감동하였습니다.
“너는 비록 적이긴 하지만, 네 임금을 위한 충성심이 갸륵하다. 이제라도 용서를 빌면 우리 나라의 대신으로 삼고자 한다. 네 뜻은 어떠한가?”
“분명히 말하거니와 나는 신라의 신하요. 조국의 두메에서 개, 돼지가 되고, 조국 산야의 한 줌 홁이 될지언정 왜국에 귀화하여 벼슬을 받기는 싫소. 나의 조국 신라는 죽음과도 바꿀 수 없소.”
박제상은 말을 마치고 굳게 다문 입을 다시는 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람한 바위산 같은 자세였습니다.
“여봐라, 저놈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 쳐라!”
왜병들은 박제상을 형틀에 매달고 발바닥 가죽을 벗겨 냈습니다. 그리고, 뵤족한 죽창 위를 걷게 하였습니다.
박제상은 이를 악물고 고문을 견뎌냈습니다.
“지독한 놈이로군. 저놈을 달리 처리하라!”
왜왕은 불같이 노했습니다.
박제상을 불에 달군 쇠판 위로 걷고 뒹굴게 하였습니다.
박제상은 신라를 생각하며 고문을 견디었습니다. 박제상은 고통으로 죽음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벗겨진 발바닥, 온몸에는 화상을 입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게 해 줄 터이니 박제상, 나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느냐?”
왜왕은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습니다.
“나는 신라의 신하일 뿐!“
박제상은 말을 내뱉고는 곧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박제상이 당한 고문은 사람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장한 기개로군! 저런 충신을 둔 신라의 왕이 부럽구나. 일개 태수가 저렇거늘 조정의 중신들이야 말할 나위 없겠지•••.”
왜왕은 온몸의 힘이 쭉 빠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봐라, 너희들은 보았을 것이다.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을. 신라는 임금과 신하가 하나같이 뭉친 참으로 무서운 나라다. 앞으로 각별히 조심하라. 그리고, 박제상은 비록 적이나 하나, 그 충성이 하늘에 사무치니 죽이지는 말고, 멀고 외로운 섬 목도로 귀양 보내라.“
왜왕은 대신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때는 서기 419 년 정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왜왕의 뜻과 달리 왜국의 장수들은 박제상이 귀양간 목도로 뒤쫓아가 그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박제상은 이국의 하늘 밑에서 거룩한 충혼을 불사르고 갔지만 신라의 얼을 영원히 빛내었습니다.
박제상의 부인은, 왜국에서 남편을 잃고 자기는 편히 사는 것이 죄스럽다 여겨 남편히 묻힌 왜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수리재 바위에 올라 슬피 울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부인이 울며 서 있다 숨을 거둔 바위를 가리켜 ‘망부석’ 이라 불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고려 말의 정몽주 • 최영을 비롯하여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응부 • 유성원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등의 충절은 지금도 만인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충신은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 충신이 못된다.
예림당) 이야기 명심보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