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력함과 믿음의 합작품
우리의 무력함은 믿음과 결합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없는 무력함은 밤중에 헛되이 부르짖는 괴로움의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들어줄 사람이 없는 고아의 부르짖음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옆에 있는 아이의 부르짖음은 다릅니다. 정확한 믿음이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할 사람은 하느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믿음이 없다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정도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와 괴로움을 가지고 딴 데 가지 않고 주님 앞에 먼저 나왔다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타이밍이 중요한데, 믿음의 크기와 주님께 나오는 속도는 반비례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께 빨리, 즉시 나옵니다. 빨리 오고,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옵니다. 자주 오고, 항상 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띄엄띄엄 옵니다. 느리게 오고, 다 망가져서야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마태 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먼저 그분에게 아뢴다면, 우리는 이미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그 믿음에 응답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 성령께서 기도를 교정해주신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큰 스승이 되십니다. 세상 모든 것에 스승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스포츠도 훌륭한 감독을 만나야 하고, 학교 공부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데, 기도에도 역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오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기도의 오용을 고쳐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람들도 기도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전교를 하다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해서 한 마을을 멸망시켜달라는 제자들의 기도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루카 9,54 참조).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욱하는 옛 사람의 성미를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푸는 도구로 잘못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주님께서는 십자가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는데 제배대오의 아들들은 주님의 나라가 오면 자기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며 야심을 이루는 방편으로 기도를 잘못 사용했다(마르 10,35 참조). 그런 기도는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3)
성령께서는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청하는 기도들을 고쳐주십니다. 욕정으로 쓰려고 잘못 청하면 청하여도 얻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청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잘못된 기도는 고쳐주시지 아예 폐기해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가 서툴고 실수해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잘못된 사용 때문에, 하느님한테 야단 맞을까봐 겁나서 아예 기도도 안 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감독을 만난 선수는 그 감독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감독 앞에 와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며 시도하고 실수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감독은 그것들을 다 고치고 다듬어주며 그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하는 심사위원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고 싶어 하시는, 승리를 위해서 우리를 코치하시는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완전한 기도를 하려고 하지 말고, 자유롭게 기도하십시오. 마음 놓고 그분을 사랑하면서 십자가 성혈을 붙잡고 자유롭게 기도하십시오. 거칠고 잘못된 것은 성령께서 부드럽게 고쳐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다.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수도 없이 많이 실수하면서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수 때문에 외국인들이 웃을까봐 두려워서 시도도 하지 않으면 평생 못 배웁니다. 영어 빨리 배우는 사람은 뻔뻔한 사람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서툴고 실수해도 계속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의 오용보다 더 나쁜 것은 기도의 중단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틀리더라도 계속 주님 앞에 와서 엎드리게끔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