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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제는 내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했던 것 같다고. 그러니 오늘은 좀 더 쉬엄쉬엄 가자고 다짐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한적한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또 언제 쉴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둘째 날도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렸다. 처음에는 강구면 시가지를 지나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넜다. 그러자 강변을 따라 쭉 이어져 있는 횟집 거리가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진 횟집 거리를 지나자, 마침내 조금 한적해 지면서 카페가 몇 개 나타났다. 하나는 언덕 위에 으리으리한 카페였고, 다른 하나는 언덕 아래 비교적 작은 카페였다. 물론 비교적으로 작다 뿐이지, 언덕 아래에 있던 카페도 보통 카페보다 큰 카페였다. 나는 카페가 나타나자 오늘의 종주를 시작하기 앞서 좀 쉬어가자는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갔다. 언덕을 올라가고 싶지는 않아서 언덕 아래에 있던 카페 봄으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어느 정도 쉬었다 싶었을 때 즘, 나는 카페에서 나와 다시 종주를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갔을까. 우측으로는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되어 있던 항구 길을 지나던 중, 갑자기 뒷바퀴 휠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멈춰서 뒷 바퀴를 확인하곤, 자전거를 옆 돌 단 위에 눕히고서 살펴보았다. 그러자 바퀴 속 튜브가 휠과 타이어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펑크가 난 듯했다. 우선 당황하지 않고 튀어나온 튜브를 다시 타이어 안으로 접어 넣으려 애썼다. 그러나 타이어가 워낙 질기고 탄성이 강해서, 튀어나온 튜브가 잘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맨손으로는 튜브를 집어넣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짐가방에서 쓸만한 도구를 찾아 튜브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확실히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 있었지만, 되려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당장 튜브를 다 집어넣는다 해도, 이는 임시방편조차 되지 않는다. 일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을 뿐, 불길이 신발을 홀랑 태워버려 드러나 버린 맨발을 감싸지는 못하니 말이다.
나는 튜브를 다 타이어 안으로 집어넣은 후, 휴대폰을 꺼내 인근 자전거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가장 가까운 거리 1.5km로, 아까 지나쳐 온 강구면 시가지에 자전거포가 하나 있다고 나왔다. 앞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자전거포는 15km 바깥에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다시 자전거를 돌려 돌아갔다. 뒷바퀴 바람이 다 빠져버려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었기에,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속으로 지금 상황에 대한 신세 한탄이 이어졌다. 둘째 날 시작부터 펑크가 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니, 이러다가 오늘은 별로 못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시가지라고 해도 과연 정말 자전거포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카카오맵을 통해 자전거포를 찾기는 했지만, 만약에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랬을 땐 정말 답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일수록 의연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면, 기껏 돌아갈 거 마음 편하게 가자.’
이런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던 도중, 마침 지나치고 있던 횟집 앞에서 호객 중이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어?”
나는 잠시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생각하다가, 이내 나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고 대답했다.
“대전에서 왔어요. 지금은 포항에서 출발해서 국토 종주 중이에요.”
“어유, 대전이면 멀리서 왔네. 근데 어디 가는 길이야?”
나는 아저씨에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말했다.
“마침 뒷바퀴에 펑크가 나 가지고. 그런데 저기 시가지에 자전거포가 있다고 해서 그리로 가는 중이에요.”
“아… 그래? 그럼 한번 다녀 와 봐.”
“예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아마 젊어 보이는 내가 짐 한가득 들고서 자전거를 끌고 있었으니, 무슨 일인가 하고 말을 걸어줬던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을 마저 가고 있자, 이번에는 또다른 횟집 앞에서 호객하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왔다.
“총각 어딜 가?”
“지금 자전거 타고 국토 종주 중인데, 뒷바퀴에 펑크가 나서 저기 자전거포 찾아 가고 있어요.”
그러자 대뜸 아주머니 옆에 있던 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 아마 거기 자전거포 없을 텐데…. 아니면 다리 지나서 있지? 왼쪽으로 가면 농협 옆에 주유소가 있을 거야. 거기서 꺾어서 쭉 가면 바이크 매장이 있을 텐데, 거리를 한 번 가봐. 거기서 아마 잘 해줄 거야.”
“어유, 감사합니다. 예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 봐.”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횟집 거리를 지나, 다리를 건넜고, 우선 카카오맵으로 찾은 자전거포에 먼저 가보았다. 주소는 시장 안 거리에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자전거포가 있어야 할 건물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바이크 매장을 찾아 가기로 했다. 시내를 어찌저찌 헤매고 있다 보니, 겨우 주유소를 찾았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어디로 가라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나는 아예 주유소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혹시 여기서 자전거 바퀴 바람을 채울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묻자, 주유소에 계시던 아저씨는 나를 자동차 바람 넣는 곳으로 데려갔다.
“이거 자동차 바람 넣는 건데, 혹시 이런 거 넣을 구멍이 있어요?”
당연히 없었다. 아저씨가 손에 들고 보여준 거는 너무 컸으니까.
“어… 그거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이 근처에 자전거포가 있을까요?”
내 말에 주위에 계시던 다른 직원 분들이 모두 모여 둘러서서는, 마치 작당 모의를 하듯 의견을 나누었다.
“거기가 아직 남아 있나?”
“거기 도로 건너편에 하나 있지 않나?”
“어 어, 맞아.”
“좋아 그러면 뭐라고 설명해 줘야 되지?”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한 분이 내게 가는 길을 설명해 주셨다.
“이쪽으로 쭉 가서 꺾으신 다음에, 마트가 보이면 거기서 왼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요. 그러면 보일 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예 안녕히 계세요.”
나는 주유소 아저씨가 가르쳐 준 대로 길을 갔다. 솔직히 설명에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아서, 과연 자전거포로 잘 갈 수 있을까 긴가민가 했다. 또 거기에 과연 자전거포가 있을지도 불확실해서, 그냥 아저씨의 말을 따라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자전거포가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주유소 아저씨의 말대로 길을 가고 있는 상황 자체가 재밌었다. 아까 전의 횟집 아저씨 아주머니 분들도 그렇고, 이렇게 호의로 말을 건네준 분들이 고마웠다. 솔직히 지금 상황을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는데, 그분들의 작은 호의가 낯선 곳에 떨어져 낯선 상황에 처한 나에게 분명한 긍정으로 다가왔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피워내는 꽃. 이번에 나는 인심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때, 저기 길 건너편에 자전거포가 보였다. 추레한 건물에 실내에는 낡은 자전거들이 널려 있는 모습. 맹락 없는 자전거포의 모습이었다. 나는 길을 건너 자전거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래되고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나는 이 냄새조차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아마 근래 재밌게 본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형사 준호가 신비의 섬을 찾았다면 이런 기분을 받지 않았을까. 마침 자전거포 안에는 아무도 없어서, 나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사장님이 오질 않아서, 밖으로 나와 간판에 써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받고, 이내 건물 2층에서 절뚝거리며 내려왔다. 사장님은 자전거를 보시더니, 이내 능숙하게 튜브를 교체해 주셨다. 금새 뒷바퀴에는 새로운 바람이 채워졌고, 원래의 쌩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비용은 만 오천 원. 이제 계산을 해야 할 때였는데, 사장님은 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현금 5만 원을 건넸는데, 사장님께서 거스름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혹시, 뭐 살 거 없어?”
나는 사장님의 말에 따라 집을 놔두고 요 앞 마트에 가서 양갱 하나를 샀다. 양갱의 값은 800원이었다. 계산할 때 5만을 건네자, 계산을 해주시던 아주머니 얼굴에 잠시 이상한 놈 보는 표정이 스쳤다.
나는 급히 말했다.
“제가 거스름돈이 필요해 가지고….”
첫 인상은 굉장히 무뚝뚝해 보이던 아주머니였는데, 내 말에 웃으시며 거스름돈을 챙겨 주셨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자전거포로 돌아왔다. 그렇게 계산을 하고서, 자전거를 타고 마침내 다시 길을 나섰다. 자전거포 아저씨에게는 잊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드디어 다시 길을 나섰다. 거의 두 시간을 펑크와 씨름하며 보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른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나. 멀쩡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너무나 좋았다. 나는 순식간에 다시 시내를 나와, 다리를 건너, 횟집 거리를 지나쳤다. 마침 점심 시간이었어서, 횟집 거리에는 차가 많았다. 그 긴 거리가 주차하려고 줄 선 자동차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멈춰 있는 자동차들 옆으로 지나가며 횟집 거리도 잘 빠져나왔다. 그 후로부터는 다시 텅 빈 거리가 펼쳐졌다. 마침내 종주 중에 자주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 길 위를 신나게 달리며, 아주 쭉 쭉 나아갔다. 그렇게 한 10km정도 가니, 저 앞에 길고 가파른 경사가 보였다. 나는 그 경사를 꾸역꾸역 페달을 밟아가며 올라갔다. 유독 오늘 따라 기운이 넘쳤다. 펑크라는 큰 사고를 잘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홀로 헉 헉 거리며 열심히 페달을 굴려서, 마침내 오르막 끝, 정상에 다달았다. 거기에는 왠 게 손에 감싸진 듯한 모양의 등대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는 자전거에 기대서 잠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후덕하고, 다리가 아팠다. 그러나 정작 기분은 좋았다. 힘들었음에도 끝까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잘 타고 왔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쉬고 가기로 결정하고서, 옆에 있던 천막 안에 들어가 어묵 4개를 사 먹었다. 그리고 어제 편의점에서 산 삼각깁밥과 바나나 우유도 꺼내 같이 먹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랜 후,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청포말등대라고 하는 이곳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지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잠시 보고 있던 웹소설을 보면서 충분히 쉬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마저 길을 나섰다. 청포말등대에서 부터 이어진 데크 산책길은 길을 따라 쭉 연결되어 있어서, 나는 데크길 위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런데 이때, 뒷바퀴에서 이상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빵빵한 바퀴가 굴러가면서 전해지는 데크 바닥의 느낌이 아니라, 거칠게 전해져 오는 날것 그대로의 데크 감각이었다. 그리고 이 감각에 이어 이상한 소리마저 같이 들려왔다. 끼익 끼익. 딱딱한 것들 끼리 긁히며 나는 소리. 바로 오늘의 두 번째 펑크를 알리는 소리였다.
나는 얼른 자전거에서 내려 뒷바퀴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뒷바퀴가 바람이 다 빠져버려서 푹 눌러 앉아 있었다. 바퀴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가방에서 공기 펌프를 꺼내 뒷바퀴에 꼽고는 열심히 펌프질을 시작했다. 제발, 제발 하고 비는 심정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오르막을 한참 올라와 주변에는 해안가 위로 쭉 이어진 도로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펌프질을 하고서 바퀴를 확인하자, 일단 바퀴에 바람이 잘 들어갔다. 나는 펌프를 다시 집어넣고서 자전거에 올라타 주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뒷바퀴에서는 다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최대한 이성을 부여잡고서, 주변에 있는 자전거포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자전거포와의 거리를 찾아보니 7km였다. 암만 빨라봐야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야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거리였다. 나는 다시 타이어로 정신을 돌려 바람이 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타이어에 박혀 있던 조개 껍질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처음 펑크가 났었을 때, 정신이 없어서 살펴보지 못했던 펑크의 원인이 두 번째 펑크를 일으킨 듯했다.
일단 박힌 조개 껍질을 빼내고, 그 구멍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다. 휴지를 가지고서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설령 타이어의 구멍을 막았다고 해도, 어차피 튜브에 구멍이 난 이상 공기는 샐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다시 생각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지나가는 차에게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내기도 전에 접었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와 함께 마음도 같이 꺾여 버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빠에게 거는 전화였다. 그냥 여기서 포기하고, 아빠에게 부탁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다, 이내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전화를 건 이유를 물었고, 나는 답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가능한 절망은 빼고 이성을 통해 말을 전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빠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다. 먼저 내가 있는 곳 위치를 물었고, 인근의 자전거포를 찾아보았다. 그래.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했고, 나도 해봤던 방법이었다. 나는 정말로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으니까. 아빠도 납득할 만한 상황에 놓인 것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전화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때 이어지는 아빠의 말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그러면 정하야, 주변에 자전거포 있지. 거기에 전화를 해서 픽업해 달라고 부탁을 해봐.”
순간 무슨 말도 안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도로 삼켰다. 그러고는 이성적으로 다시 아빠의 말을, 내 감정 상태를 검토했다. 이미 한번 절망하고 집으로 가자 마음 결정을 내린 나기에,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랬기에 내심 반발심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태와 별개로, 내가 타고난 성향상 별로인 마음도 있었다. 애초에 내가 이 방법을 혼자 생각해 내지 못한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서였으니까.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서 생각해 보니, 분명 해 볼 만한 방법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절은 그쪽의 몫이고, 당장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 이상 설령 포기를 하더라도 부탁 정도는 해보고 포기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주변 자전거포에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심정에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처음 전화를 건 삼천리자전거 영덕점은 세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계속 부재중이 떠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는데,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자전거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름은 두발병원. 나는 그곳에 전화를 걸어, 픽업이 가능하겠는지, 가능하다면 사례비를 꼭 드리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전화 속 아저씨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20분 정도 후, 트럭을 몰고 아저씨가 나타났다. 트럭 짐칸에 자전거를 싫고, 여기서 10km 떨어진 축산항에 있는 두발병원으로 향했다. 두발벼원에 내려서는 곧바로 아저씨가 자전거를 봐주셨고, 금새 튜브를 바꿔 주셨다. 거기에 더해 타이어에 난 작은 구멍도 밴드 같은 것을 붙여서 막아주셨다. 그렇게 이동비부터 수리비까지 총 7만 원을 결제하고서, 나는 다시 자전거에 짐을 싫고 올라타 페달을 굴렸다.
왠지 모르게 생소한 느낌이었다. 집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다시 페달을 구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비록 하루 숙박비보다 비싼 돈이 날아갔지만, 그래도 국토 종주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는 축산항에서 다시 7km 정도를 더 이동해 병곡이라는 동네에서 숙소를 잡아 묵었다. 7km를 오는 내내 평지였어서, 오늘의 마지막으로 아주 신나는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오르막 내리막 길을 만나면 속도도 일정하지 않고 힘들어서 마음 놓고 즐기기가 쉽지 않았는데, 오늘의 마지막 주행 길을 즐길 수 있도록 쭉 뻗은 평지가 나와주었다.
오늘 밤은 행복비치모텔이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고, 하루 숙박비는 5만 원이었다. 성수기가 아니다 보니 확실히 숙박비가 쌌다.
나는 모텔 사장님에게 근처 식당을 물어서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곤 다시 숙소로 돌아와 검정고시 공부를 짧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씻고 농땡이 피웠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전화 통화도 했다.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했고, 털어놓았다. 동시에 내 스스로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잘 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 통화를 마치며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첫날만큼 몸이 피곤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피곤한 하루였다. 작은 사고였던 첫 펑크와, 내 부주의로 일어난 큰 사고였던 두 번째 펑크. 그리고 이 두 차례의 펑크로 인해 엮이게 된 많은 인연들이 잠자리에 든 내 머릿속에 두서없이 나타났다. 누군가 잠들 때 양을 센다면, 나는 잠들 때 오늘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 마음의 조급함과 다투는 날이었다. 내 마음 속 조급함의 농도에 따라 내가 만난 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모두를 선명하게 보고 싶은 걸까.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까. 단언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었기에, 나는 만족하며 잠에 들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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