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가고, 어제 싸놓은 짐을 챙겨,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 한구석에 정차해 놓은 자전거에 잠금장치를 풀고, 짐을 실은 뒤 자전거를 끌어서 주차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직 잠에서 덜 깬 피부를 차가운 바람이 때려댔다. 나는 꾸역꾸역 바람을 맞아가며 쓰고, 장갑을 꼈다. 종주 셋째 날,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시작이다.
출발 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오늘 가야 할 길을 살폈다.
종주 첫째 날부터 둘째 날까지 내가 주행해 온 거리는 약 90km였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약 100km. 그리 적지 않은 거리였다. 애초에 계획 없이 시작한 종주였지만, 그래도 남은 거리로 볼 때 이틀 안에 종주를 마무리 짓는 것이 깔끔해 보였다. 그리고 종주 마지막 날에는 좀 쉬엄쉬엄 가고 싶었기에, 결국 국토 종주 셋째 날인 오늘, 가능한 한 먼 거리를 빼놓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리하여 오늘은 최대한 먼 거리를 가는 걸 주행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지도를 살펴보고서, 목적지는 울진군으로 잡았다. 현재 출발지부터 울진군까지의 거리가 약 60km. 내가 생각했을 때 하루 내에 주파 가능한 선에서 맥시멈으로 잡은 거리가 60km였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굴렀다. 떠오르는 태양, 햇빛을 가리는 안개, 불어오는 바람이 오늘 하루도 종주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저번 학기를 마치지 전, 내가 현곡께 받은 화두가 하나 있다. 바로 병 안의 새라는 화두이다. 병 안에 갇힌 새를 새가 다치지 않고, 병을 깨지 않고서 어떻게 꺼낼 거냐는 것이 그 내용이다.
나는 이 화두를 받은 이후로 일부러 화두에 대해 그저 드문드문 떠올리기만 하며 지냈다. 굳이 화두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는 이유는, 내가 화두를 두고 심도 있게 들여 보려 할수록 되려 화두에 관한 생각만 많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만 많이 하면서 어떻게든 납득하고 해석하려고 해 봤자 무언가를 깨우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뭔가를 억지로 하지 않은 채 가끔 떠올리는 정도로 대하고 있다. 그렇게 드문드문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화두가 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번 여행 중에도 종종 화두를 떠올리며 지냈다. 열심히 페달을 구르는 와중에 잠깐, 한 번씩은 화두에 대해 떠올렸다.
‘병 안의 새.’
그러나 화두에 대해서는 그저 떠올리기만 할 뿐, 역시나 그 외에 생각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되려 조급한 마음에 어서 빨리 화두를 붙잡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았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스리며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급함은 내가 안고 사는 심성이다. 조급함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뭔지도 모른 채 물고, 뜯고, 씹어 먹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뭘 먹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닥치는 대로 손에 닿는 것은 가리지 않고 집어 먹고 있는다.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화두를 다루는 동안에는 조급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행을 이어갔다. 물론 오늘은 가능한 먼 거리를 주행하는 걸 목표로 삼았지만, 그래도 쉬어갈 때는 쉬어갔다. 카페에서 쉬어갔고, 땀이 많이 날 때는 작은 항구에서 갈매기들과 함께 쉬어갔다.
갈매기라고 다 같은 갈매기는 아니어서, 내가 갈매기들이 쉬고 있는 항구로 들어섰을 때 어떤 갈매기들은 곧바로 퍼덕거리며 도망갔고, 어떤 갈매기들은 가만히 눈을 부라리며 나를 주시했다. 나는 갈매기들이 수고스럽게 도망가지 않기를 바랬기에, 가능한 갈매기들과 떨어진 반대편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바닷가 구경을 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단 위에 걸터앉아 발밑의 바닷물을 바라보니, 물이 참 맑고 파랬다. 나는 그 맑은 바닷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저 옆에 갈매기들도 구경했다.
국토 종주를 하다가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종주 중에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면, 그때마다 별 저항 없이 그 새로운 것들로 내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나아갈 때는 그 열기로, 오르막을 오를 때는 그 막막함으로,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그 날쌤으로, 그리고 지금처럼 바닷가의 맑은 물과 갈매기를 바라볼 때는 금세 그것들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마다 변화하는 새로움에 따라, 나 또한 자꾸만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애초에 나와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처럼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원래 변화라는 게 이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었나? 설령 변화의 물결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 물결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었나?
그러나 이런 생각이 무색해질 정도로, 변화는 마치 나와 하나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내가 처음 세상에 발을 내딘 어린아이처럼 별거에 다 오두방정 떨고 있으니, 저 건너편의 갈매기들이 하나둘 날아가더니 이내 모두 다 날아가 버렸다. 아.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도 싶었는데. 허나 날아갔다고 해 봤자 갈매기들은 바로 앞 돌섬 위에 앉아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척 봤을 때는 다 똑같이 생긴 녀석들 몇십 마리가 돌섬 위에 앉아 있으니, 문득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내 스스로 있을 만큼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페달을 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열심히 달렸다. 물론 쉬어갈 때는 충분히 쉬어갔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의 메인 테마는 분명 열심히였다.
나는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서 페달을 구르다 보니, 어느새 진짜로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속도는 금방 지쳐버릴 만큼 빠르지 않고, 그렇다고 금세 긴장이 풀려버릴 만큼 느리지도 않았다. 그저 적절히, 내 몸에 알맞은 속도대로 일정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속도는 나에게 일종의 리듬이었고, 감각이었다. 지난 삼일 간 자전거 페달을 구르며 자연스레 내 몸에 체화한 감각. 바로 나만의 페이스였다.
자전거의 속도는 경사도에 따라, 몸에 걸린 부하에 따라 기복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복에 연연하지 않은 채, 나는 지난 삼일 간 몸에 새겨진 리듬에 따라 주행을 이어나갔다. 지난 삼일 간은 주행하다 보면 찾아오는 여러 환경적 요인에 따른 주행을 이어왔다면, 이제는 그 지난 삼일 간 축적된 경험을 통해 나아가고 있었다.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어느새 쌩쌩 나아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나만의 페이스를 찾았다는 사실이, 마치 나만의 자리를 찾은 것만 같이 기뻤다. 새삼스레 두 다리는 아파 오고, 몸은 지쳐가고, 후끈한 열기가 몸을 감싸며 땀이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거칠게 들이쉬는 공기는 맑았고, 주변 풍경은 꾸준히 바뀌어 갔다. 그러다 그늘진 쉼터가 있으면 거기서 쉬어갔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돌 단 위에 누워 바닷가를 바라봤다.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봤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후끈 달아오른 몸을 식혀 줬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도 몇 점 있었다. 형태가 그리 뚜렷하진 않았고, 살짝 옅은 모습이었다.
내가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자, 뒤편 도로로 차 몇 대와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갔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소리로, 스쳐 지나갈 때 불어오는 바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몸이 뻐근하면 자세를 고쳐가며 쉬었다. 새삼 이 모든 것 속에서도 나는 나였다. 나는 그렇게 몸을 꼼지락 거리다가, 이내 일어날 마음이 들었을 때 일어나서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몰았다.
이후로는 계속 바닷가를 따라 도로 위를 주행해 갔다. 도중에 몇몇 마을을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바닷가에 큰 시가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울진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나 있는 길은 꼬불탕해서 어떨 때는 저 멀리 울진이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울진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다 보니, 어느새 울진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울진군 안으로 처음 진입하자, 먼저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시가지가 보였는데, 문제는 어느 길로 가야 시가지에 들어설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울진군은 높은 언덕들을 낀 채로 길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서, 나는 외각 부근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굴다리를 통해 남의 밭 사유지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곳을 빠져나오다가 미친 듯 짖어대는 개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겨우겨우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옅은 경사가 한참 이어져 있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렇게 힘들여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자, 역시나 저 아래까지 가파르게 이어져 있는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오르막이 있으면 항상 그 뒤엔 내리막이 있는 법. 이번 종주를 통해 내가 뼈저리게 느낀 점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은 고달프지만 마치 복을 쌓는 것과 같고, 그 뒤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힘들게 쌓은 복에 대한 보상이다. 그렇게 잠시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나면, 어느새 다시 밑바닥이다. 아주 잠깐 시원하고 좋지만, 힘들게 오르막을 올랐던 것에 반해 금방 끝나버리는 내리막을 보면 새삼 허탈한 마음이 든다. 마치 오르기는 한세월이지만, 무너지기는 한 순간이라는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쨌거나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 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리막길 앞에 설 때면, ‘어차피 다른 길도 없는 거, 그냥 속도를 즐기자’는 마음으로 신나게 내려가고는 했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자세를 낮춰 빠르게 주파했다. 그러다 문득 저 아래 길이 꺾이는 것을 보고, 그에 따라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자전거의 주행 방향은 내가 상정한 것만큼 돌아가지 않았다. 예상보다 자전거가 조금밖에 돌아가지 않자,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이대로면 커브길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도에 박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전거는 짧은 순간 안에 나의 예상을 두 번째로 배신했다. 강하게 붙잡은 브레이크에 바퀴는 더 이상 구르지 않고 멈췄으나, 어째서인지 멈춘 바퀴는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렇게 자전거는 인도를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당황은 한순간이었다. 자전거 앞바퀴가 인도 경계블록에 닿기 직전, 순간적으로 나는 부딪힐 각오를 먹었다. 그렇게 마음 먹은 직후.
쾅!
자전거 앞바퀴가 경계블록에 부딪혔다. 그러나 자전거가 곧바로 고꾸라지리란 나의 예상과 달리, 자전거는 경계블록을 따라 덜컹거리며 나아갔다.
쾅! 콰곽 가가가가각. 덜커덩 덜컥 덜커덩.
일순간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부딪히자마자 넘어질 거란 생각과 달리 자전거가 정신 사납게 나아가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전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경계블록을 긁으며 나아가던 자전거는 얼마 못 가 고꾸라졌다.
콰과과곽.
나는 거친 소음과 함께 자전거에서 떨어져 인도 위를 굴렀다. 순식간에 몸이 바닥을 구르며 나는 과격한 소음이 들려왔고, 몸 이곳저곳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날카로운 통증을 흘렸다. 그렇게 정신 없단 찰나가 지나자, 어느새 정신이 돌아오면서 온몸에 통증이 밀려왔다.
자연스럽게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나왔다.
“아… 습, 아….”
연신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꼬고 있자, 문득 도로 위에 널브러진 자전거가 보였다. 그리고 자전거 물통 칸에서 빠져나와 가파른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옥수수 수염차도 보였다.
“아… 씁, 아 씨!”
순간 굴러가는 물통을 그냥 굴러가도록 내버려둘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내리막길 아래를 살펴보니 그곳에는 차들이 다니는 사거리가 보였다.
나는 넘어지고 나서 쉴 틈도 없이 억지로 일어나 굴러가는 물통을 향해 달려갔다.
“아! 습… 아!”
다친 몸을 곧바로 움직이니 정말 온 몸이 아팠다. 그러나 이놈의 물통은 어찌나 빨리 굴러가는지, 아파도 꾹 참고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저 아래 사거리까지 굴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행히 굴러가던 물통이 바닥에 걸려 멈췄다. 나는 몸을 숙에 옥수수 수염차를 집어 들고는, 다시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 뒤뚱거리며 걸어 올라갔다.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산 9-8)
한적해서 차가 잘 지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도로는 의외로 차가 자주 지나다녔다. 그래서 나는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던 자전거를 인도 위로 끌어 올리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간 부속품들을 주웠다. 부속품들을 살펴보니 핸들에 달려 있던 벨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부서진 벨의 부속품들을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넘어진 자전거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자전거는 핸들이 완전히 돌아가 있었고, 변속기 레버가 꺾여 있었으며, 짐가방은 끈 한 쪽이 끊어져 있었다. 우선 다이소에서 산 공구를 가지고서 뒤틀린 핸들을 맞추고, 꺾인 변속기 레버는 힘으로 다시 돌렸다. 그리고 끊어진 짐가방 끈은 포기하고 다른 끈에다가 짐가방을 걸었다.
그렇게 자전거의 상태를 다 살펴본 후, 이제 나는 내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튼튼한 헬멧과 두꺼운 겨울옷 덕분에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특히 장갑과 외투는 찢어져 있었는데, 다행히 몸은 관절만 살짝 시큰할 뿐 타박상이 남진 않았다.
문제는 오른쪽 무릎에 큰 상처가 나 있었다. 넘어졌을 때부터 계속 지끈거렸는데, 막상 상처를 살펴보고 나니 더 아팠다. 반대쪽 무릎도 상처가 있었는데, 오른쪽에 비하면 다행히 크지 않은 상처였다.
그렇게 낙차라는 변수로 일어난 상황을 대강 정리한 나는, 이제 자전거를 끌고서 울진 시가지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대아모텔이라는 숙소를 잡고, 얼른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몸에 남은 에너지를 쪽 빨아내는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가장 긴 거리를 주행해 온 날이었고, 거기에 더해 낙차까지 했으니 몸은 순식간에 피로에 젖었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잘까.’
솔직히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아직 시간은 오후 5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몸에 쌓인 피로로 봤을 땐 지금 눈을 붙여도 푹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잠들지 않고, 먼저 치킨으로 저녁을 때운 뒤 요 앞 편의점에 가서 약과 밴드를 사서 상처에 붙였다. 그러고는 소설을 읽고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이내 씻고 나서 골아 떨어졌다. 새삼 종주 중에는 잠을 참 잘 잤다. 잘 먹기도 했고, 하여간 뭐든 평소보다 더 제대로 하게 되었다. 무엇 하나 열중해서 하는 일이 생기니, 일상의 다른 부분들도 생기 넘치고 제대로 굴러가는 것만 같았다.
잠들기 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침상에 누워 있었다. 사실 이번에 낙차를 한 것에 대하여 나는 한편으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첫 자전거 국토 종주에서 나름대로 종주를 잘 이어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만의 마음이 점차 피어나던 와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188km의 종주를 떠나는 와중에, 낙차 한 번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 내 마음에 기고만장한 마음이 드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기가 막히게 아주 제대로 낙차를 했던 것이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번 낙차가 스승님이 내 콧대를 눌러준 선물이라고는 생각도 들어서 재미있었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낙차가 있기 이전의 기억이었다. 낙차라는 큰 사건으로 인해 덥혀진 감이 있는, 오늘 있었던 일.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막 울진에 들어섰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만 잠을 청했다.
막 울진에 들어서 길을 헤매던 나는, 문득 바닷가 쪽으로 길이 나 있으리라 판단해 시골 마을을 횡단해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바닷가는 콘크리트로 막혀있었고, 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올라서 보자 작은 모래사장과 갈매기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모래사장이었지만,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갈매기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모래사장을 따라 쭉 이어져있는 갈매기 무리를 보며, 문득 나는 두 팔을 힘차게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그 수많은 갈매기들이 일제히 퍼덕거리며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대뜸 웃음이 지어졌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웃겨서 웃는 거였다.
나는 웃는 채로 다시 정차해 놓은 자전거로 돌아와, 펼쳐져 있던 자전거 지지대를 발로 차 접고는 페달을 구르며 생각했다.
‘내가 병 안의 새라면, 병이 너무 넓은 것 같습니다.’
그날따라 머리 위 하늘이 넓게 느껴졌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