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리아 여인은 왜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을까?
당시 여인들은 더위를 피해 주로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길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러 왔다. 왜 그랬을까? 학자들은 이 여인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는 것이 싫어 아무도 없는 대낮에 물을 길러 왔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그녀의 정서적인 내적 목마름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여인은 거의 자포자기하여 되는 대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삶의 방향을 잃고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이 쉽게 도망치는 곳이 잠이다. 모든 것이 귀찮고 아무 데도 마음 쓰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잔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배를 타고 도망친 요나가 그랬다. 그는 배에 타자마자 곧바로 선창 밑으로 내려가 잠을 잔다. 그가 타고 있던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 부서지게 되자 선원과 승객들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 안의 짐을 바다에 던지는 상황에서도 그는 선창 밑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요나 1,5) 하느님한테서 자신을 소외시키면서 갖게 된 삶의 무력감을 느끼고 잠으로 도망친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목숨은 끈질기고 육신의 목마름은 간절하기에 그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할 수 없이 대낮에 물을 길러 온 것이다. 사실 사마리아 여인은 바라지 않는 상황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 숨 쉬기도 힘들 만큼 어려움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여인의 무력감과 자포자기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자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는 말 속에 진하게 묻어 있다. 이 말을 풀면 이렇다. “저는 물을 길러 여기까지 오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벅찹니다. 그러니 당신이 말한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다면 더 이상 힘들게 물을 길러 나오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이처럼 타오르는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던 여인 앞에 생명의 주님이 다가오신 것이다. 그녀의 타는 목마름을 깊이 느끼신 예수님이 새벽부터 서둘러 유다 땅에서 야곱의 우물까지 땡볕 속에 걸어오신 것이다. 여인에게 따스함과 다정함으로 다가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려 하신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사람들이 나눈 대화가 많이 나온다. 그중 가장 긴 것이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다. 예수님은 목말라하는 여인과 가장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며 희망과 구원을 주셨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난하고 불쌍하며, 죄스러운 인간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육화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아기 예수님을 조배한 이들은 목자들이다. 예수님이 특별히 누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려주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목자들을 첫 조배자로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먹고사는 데 짓눌려 삶의 의미나 인간 존엄성은 생각해 볼 엄두조차 못 내던 이들이요, 또 사회적으로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천대받던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