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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우리 학교 학생들 어학연수 관계로 호주와 말레이시아에 다녀왔습니다. 호주에서 이틀, 말레이시아에서 이틀이니 별로 본 것도 없습니다. 혹시 그 동네 어학연수에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 보세요. ------------------------------------------------------
어학연수 답사 - 호주, 말레이시아 유철환 <8월6일> 06시 06분 동대구 출발(KTX), 07시 54분 서울 도착. 09시 공항 리무진으로 인천 공항 도착. 11시 35분 말레이시아 행 비행기 출발, 코타키나발루 공항 환승, 19시 10분 쿠알라룸푸르 도착. 20시 45분 시드니 행 비행기 출발, 7일 06시 35분 시드니 도착.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말레이시아 반도의 아래쪽의 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 위쪽의 동말레이시아로 나뉘어져 있다. 동말레이시아는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서 거의 밀림에 가깝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처녀림을 답사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 바로 코타키나발루인데, 여기서 내리고 타고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비행기는 약 한 시간 정도 코타키나발루에 머물면서 거의 절반 가까운 손님을 갈아 치운다.
공항은 그야말로 시골의 조그마한 대합실 정도로 보잘것없다. 그래도 긴 비행에 굳은 몸을 잠시 풀면서 담배도 한 대 피우고 목도 축여 본다. 패키지 여행이 아닌, 홀로 여행에서 처음으로 겪는 이국의 체험은, "Do you have orange juice?", "How much?"로 시작했다. 링깃이라는 낯선 돈을 주고받으며 이런 게 정말 견문으로서 여행임을 실감한다.
약 한 시간 정도 육지와 바다를 번갈아 보며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닿는다. 코타키나발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하고 현대적인 공항이다. 인구 2,000만 남짓한 나라,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4,000 USD가 채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로만 생각하다가 인천 공항 못지않은 시설과 규모의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보니 숫자로 느끼는 말레이시아와 몸으로 느끼는 말레이시아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드니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검색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호주에서 나온 보안 직원이 비자를 보자고 한다. 호주와 우리나라는 협약에 의해 비행기표 구입과 동시에 전산으로 비자 처리가 이루어져서 일반적인 서류 비자 발급이 없어진 상태이다. 이 거대하고 살이 디룩디룩한 여자 직원은 그 사실을 아예 모른다는 듯이 우릴 몰아붙였다. 돋보기 같은 기구를 들고는 여권을 내놓아라 신분증을 내놓아라 하면서 이리 들여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사람을 째려보고 야단이다. 나대로는 불안한 마음에 전산 처리된 결과(electronic visa)를 여행사 직원에게 내놓으라고 해서 갖고 온 것이 그나마 물에 빠진 사람의 지푸라기 역할을 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10분 가까이 설명을 하다보니 “~ look around school ~"에 이르러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레이시아 직원에게 인계한다. 긴장이 풀리고 나서 생각하니 가방에 고스포드 교장이 팩스로 보낸 서한문이 있었는데, 그걸 보여 줄 걸······.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8월 7일> 06시 40분 시드니 도착. 동대구역을 출발한 지 무려 25시간 만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여 비로소 답사 일정이 시작되었다. 시드니 공항은 검역이 매우 철저하다. 대륙과 독립성이 강하다 보니 병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목재로 만든 아무것도 갖고 올 수가 없는데, 선물로 가져간 하회탈 액자가 문제가 되어 가방을 다 열고 검사를 받았으나, 인조 목재로 판명되어 다행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J&B International 허우홍 사장이 우리를 마중했다. 스물 대여섯쯤 보이는 한국 직원이 동행했는데, 시드니 대학에서 유학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허사장을 돕는 건실한 청년(차군)으로, 그가 오늘 우리의 하루 일정을 안내하기로 되어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잘 보인다는 ‘미세스 맥콰리 포인트’는 이효리가 비타 500 광고를 찍은 곳이란다. 그게 한강 둔치가 아니었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남반구의 겨울은 생각보단 춥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늦가을 정도 되는 날씨였는데 낮 시간이 가까울수록 초가을 날씨로 바뀌는 것 같았다. 영국의 건물들을 흉내 낸 건물, 거리, 성당, 대학들이 호주인들의 영국에 대한 동경을 짐작케 한다. 이곳저곳 이동하며 보여주는 모습들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우리나라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볼 수 있는 ‘시드니 아쿠아리움’, 조그마한 항구인 달링 하버, 시드니 타워, 달성공원만도 못해 보이는 하이드 파크, 사암으로 벽체를 올린 세인트 메리 대성당, 1800년대의 건물이라는 퀸스 빅토리아 빌딩, 옥스퍼드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시드니 대학.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간간이 ‘아~’ 하고 바보처럼 입을 헤벌려 본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배에서 내리니 부두의 매표소 옆에서 아주 낯설고 재미있는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짙은 갈색의 몸뚱아리를 한 조각 천으로 중요 부분만 가리고 길바닥에 앉아 긴 대나무 막대 같은 악기를 불고 있는 원주민들이었다. 유칼립투스라는 나무 중에서 흰개미가 속을 갉아 먹어 뻥 뚫린 것을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이름이 디지리두라고 한다. 기실 낯선 땅의 여행이란 이런 것을 경험하는 것일진대, 차군은 그저 거리의 동냥꾼 정도라 설명하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후일 호주를 방문하는 이는 원주민의 이런 모습에 관심을 가질 터.
고스포드로 가는 고속도로는 자연의 상태를 최대한 활용하여 무척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도로변의 꽃아카시아는 호주의 국화로 초록의 잎 사이에 노란 꽃들이 한창 피기 시작하여 봄이 가까웠음을 말해 주는 듯했다. 한 시간 반 정도나 달렸을까? 푸른 바다를 끼고 조그만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집들은 숲 속에 숨은 작은 짐승 마냥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고, 다양한 색의 지붕들이 모두 단층처럼 보여, 삭막하기만 한 아파트 문화에 젖은 우리로서는 참 신선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감탄사를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 위에 하얀색의 요트들이 집의 수보다 더 많아 보였고, 도로는 바닷물과 맞닿아 바로 곁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도시의 집 하나하나가 모두 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부러움의 찬사는 나의 삶과 나의 조국에 대한 실례이므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허씨가 마련한 숙소는 그러한 집들 중의 하나를 통째 빌린 것이었다. 성수기에는 한 주에 300만원 정도 하는 곳이어서, 집도 좋고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정경도 멋있었지만 칫솔 하나 사는 데도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그나마 저녁 여섯시면 문을 닫는) 외진 곳으로, 여행지에서의 가벼운 일탈을 꿈꾸던 우리에게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적막강산의 귀양지였다. 저녁 간식과 내일 아침 식사로 허씨는 식빵 한 봉지와 땅콩쨈, 딸기쨈, 과일 약간, 포도주 한 병, 맥주 캔 여섯 개를 사 들고 왔다. 투덜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호주 사람들의 건전하고 성실한 삶을 다소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래,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지, 일탈은 무슨.
숙소에서 멀리 보이던 해변의 호텔에서 우리는 고스포드 학교의 교장 부부와 정년을 앞둔 할머니 교감 선생을 만났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니 맥주를 한 잔 하겠느냐고 묻는다. 밥은? 하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허씨는 식사의 절차가, 먼저 식욕을 돋우는 음료수나 가벼운 맥주로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데 대부분 양식의 절차 그대로다. 스프, 야채, 메인, 포도주, 후식, 차. 복잡하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음~. 굿, 딜리셔스 등등의 감탄사를 해 주는 것이 예의다. 처음 만났으니 가벼운 선물도 주고받는다. 별로 먹을 것도 없고, 절차만 복잡하고, 비싸기만 한 식사. 그래도 이들은 이런 만찬을 베풀고 대접받으며 몹시 즐긴다고 한다.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 나누는 정 때문이리라.
<숙소>
<8월 8일>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화살처럼 쏘여 들어와 피곤한 잠을 깨운다. 바다의 잔물결 위로 남국의 태양이 어지럽게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이다. 밤새 추위로 옹송그렸던 몸을 펴고 토스트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운다.
고스포드 학교는 초, 중, 고가 하나로 되어 있는 (한국에 비교하면) 자그마한 학교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몇 개의 건물은 모두 단층으로 되어 있다. 비스듬한 언덕에 쇠기둥을 의지하고 지어진 목조건물은 낡은 듯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운치를 지니고 있었다. 허술해 보이는 난간과 교실 사이에는 판자로 된 널찍한 복도가 있고, 학생들의 가방이 한쪽 구석에 놓여 있다. 학생이 그리 많지 않고 교실마다 수업을 받는 학생 수는 10명 내외인데다, 우리처럼 지정된 자기 교실이 있는 게 아니다보니 사물을 이 교실 저 교실로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다. 하긴 사물이래야 하루 5,6 교시 정도 하는 교과서가 다일 테니 가방에 든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고스포드 수업>
오후에는 학생들이 어학연수 체험활동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사막 체험(sand safari)을 했다. 해변의 모래가 해풍에 밀려 시나브로 사막이 넓어져 가는데, 이 사막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해 보였다. 파선된 배를 수리한 뒤에 처리를 하지 않아서 바다 가운데 처박혀 있는 배나,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펠리칸 먹이 주는 곳도, 팔다 남은 생선을 던져 주다보니 7,80여 마리의 펠리칸이 모이게 되었다는 별것 아닌 재료를 가지고 관광 코스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런대로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체험이었다.
저녁엔 허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시간을 보냈다. 한국을 떠난 지 이삼일밖에 안 되었는데도 식탁에 오른 된장국과 김치가 반갑기 그지없다. 가게 하나 없는 조용한 주택가에 아담한 이층집을 짓고 사는 이 부부와 아이들은 우리가 만난 몇몇 호주인들처럼 검소한 생활 태도와 차분한 말씨가 배어 이들도 반은 호주인이 된 듯했다. 숙소로 돌아와 캔 맥주 몇 통을 홀짝거리다 잠이 들었다. <8월 9일> 오전에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했다. 허씨와 관련을 맺고 약간의 가계 보조 수단으로 홈스테이를 하는 집 같았다. 우리처럼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 내지 1년 정도 아이들이 머무르는 집들이다. 주인은 다정다감하고 친절해 보였고, 홈스테이를 하는 학생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보살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후 세 시 정도면 학교가 파하고 그 이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들과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연수가 되려면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반쯤은 어학연수 과정에 참여하여, 오늘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라, 내일은 선생님에게 이런 것을 물어보라는 식의 과제를 준다고 한다. 그리고 하교해서 돌아오면 그 내용을 확인하고, 가족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단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학교가 마음에 들고 홈스테이 가정이 마음에 들면 아예 한국의 학교를 그만 두고 몇 년씩 머물러 사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처음 아침을 먹었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다. 우동과 김밥, 초밥 등을 파는 일본 식당인데, 그 주인은 한국인이란다. ‘스시는 일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식당으로서는 시드니 최고라는 대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그 우동이나 초밥이 내겐 신통찮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인의 입맛이 그만큼 고급스럽고 까다롭기 때문일까? 14:20분 시드니 출발, 20시 45분 말레이시아 도착. 검은 양복을 입은 30대 초반의 사내와 검은 원피스를 입은 20대 후반의 여자가 공항에서 우릴 마중했다. 영어가 능숙치 않아 지극히 간단한 몇 마디만 주고받으며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승용차로 30분 가까이 달려 말레이시아의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에 있는 마리오트 호텔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들의 검은 색은 림콕윙 대학의 상징 색이란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인들처럼 말이 많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서로 처음 본 사이니 뭐 그리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리조트 내에 있는 이 호텔은 꽤 규모가 크고 시설도 괜찮았다. 하루에 약 8만원 정도로 한국에 비하면 매우 싼 편이다. 호주에서의 귀양 생활을 떠올리며 여긴 그래도 뭔가 좀 볼거리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격으로, 택시를 타고 3, 40분 이상 나가지 않으면 식사할 곳도 없는 외진 곳이었다. 기내식(機內食) 이후 오랫동안 비어 있는 위장을 달래며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호텔 레스토랑에서 토스트와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손님이라곤 우리 둘과 또 다른 두 사람이 전부인데, 라이브를 하는 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신나게 춤까지 추면서 열심히 노래를 한다. 낯선 땅 낯선 사내의 박수에 그녀는 손짓과 절로써 답례하며 또 그렇게 노래를 불렀고, 1,2,3층을 뻥 뚫어 놓은 중앙 홀의 위압적 무게에 짓눌려 아무래도 살아나지 않는 흥을 접으며 우리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마리오트 호텔 입구> <8월 10일> 호텔 조식. 림콕윙 대학으로 이동. 부학장 면담. 어학연수원 견학. 대학의 건물은,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우리나라 1970년대쯤 되어 보였다. 쌓아올린 벽돌 블록 그대로이거나 시멘트를 발라 놓은 그대로의 벽체에 페인트로 무늬를 놓았는데,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어중간한 상태였다. 하지만 학교 전체의 운영 시스템은 우리 대학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면서 세계화되어 있었다. 산학 협력 체제, 이론보다 실제를 중시하는 교육, 특성 학과의 육성, 개방적인 학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적 구성 등.
어학연수원은 능력에 따라 12단계로 반을 나누고, 학생 수를 15명 이내로 제한하였고, 매달 테스트를 통해 레벨 업하고 있었다. 수업 참관을 하는데, 호주의 고스포드 고등학교에서처럼, 누가 교실에 들어오고 자기 수업을 구경하고 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자신의 수업을 홍보하는 기회로 여기는 듯했다. 수업 공개를 부담스러워 하고 심지어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우리의 풍토와 많이 달라 보였다. 대부분의 교실은 둥글게 자리를 배치하고 교사가 그 가운데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초등학교처럼 너도나도 저요 저요 하며 나서지도 않았고, 우리의 고등학교처럼 아무리 물어도 반응 없는 늪도 아니어서, 용융과 침잠의 중용이 재미있고 활기찬 수업을 만들고 있었다. 림콕윙의 어학연수원은 영국에 본거지를 두고 대부분 영국의 강사가 파견되어 근무를 하고, 현지 강사는 철저한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강의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이다.
한국 학생은 연수원에 2명 대학에 3명 정도라고 한다. 연수 중인 학생 두 명이 통역 겸해서 우리와 함께 했고, 그 중 공주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올 때만 해도 영어 회화는 거의 제로 상태였는데, 2주 정도 지나니까 귀가 열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일상회화는 별 막힘없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현지에서 직접 부딪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가 보다.
<림콕윙 대학 광장>
큰 건물 두 개 사이에 넓은 광장이 있고 삼사백 석 되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각국의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야말로 인종 전시회라도 온 듯한데, 아무도 피부 색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거나 친소의 감정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다보니 행동이나 말과 같은 저마다의 예절은 기대도 요구도 할 수 없고, 다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배려만이 있을 뿐이었다.
최근에 지은 기숙사는 대학의 규모에 비해 어울리지 않게 큰, 고층 아파트 형태의 건물로, 중앙에 수영장도 하나 만들어 놓아 우선은 그럴듯해 보였다. 한 집에 서너 개 정도의 방이 있고, 한 방에는 한 명 또는 두 명이 기숙하도록 되어 있고, 규모에 비례하여 세탁소, 독서실, 휴게실 등의 시설도 잘 갖추어진 편이었다. 인건비가 싼 만큼 경비요원도 입구마다 24시간 배치하여 치안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림콕윙대학 기숙사> <8월 11일> 더 이상 림콕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현지 한국인 가이드를 샀다. 12인승 승합차를 포함해서 하루에 15만원이란다. 좀 비싼 편이긴 해도 7~8명이 탔다면 1인당 2만원 정도이니 쓸 만도 하다. 왕궁은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구경했고, KL(쿠알라룸푸르) 타워에서 내려다 본 시내는 쌍둥이 빌딩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힌두교 성지인 바뚜 동굴은, 272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팔공산 어느 구석에 있는 무속인들의 기도처 같은, 돌로 만들어진 천연의 동굴이었는데, 그런대로 볼만했다.
<바뚜 동굴 입구>
<KLCC 백화점 내부>
하루 종일 돌아다닌 피로를 풀 겸해서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한 시간에 15,000원 정도(50링깃)로, 30대 정도의 자그마한 사내가 마사지를 하는데 어찌 시원하게 잘 주무르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근처의 유명하다고 하는 샤브샤브 식당은, 우리 선생님들이 가끔 이용하는 ‘스팀 폿’과 흡사한데 세 사람이 3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맥주 두 병 곁들여 실컷 먹었다. 그만한 돈도 말레이시아에선 제법 큰 돈이어서 제딴에는 좀 산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란다. 초록색의 제복을 입은 정말 날씬한 아가씨가 식당 곳곳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따라 주길래 물어 보니 맥주 회사의 홍보요원이라고 한다. 마케팅 전략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라 생각하며 우리도 불러서 한 잔씩 받아 마셨다. 일박이 더 있었다면 몇 병 더 시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트라자야 수상 관저>
공항으로 가는 길에 푸트라자야 행정 수도에 들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청사가 있는 과천 정도라 할까? 야경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화려한 불빛의 야경이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도 없고 다정한 벗도 없고, 시간도 없고······, 게다가 덥고, 또 적막했다. 화장실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가 등에 축축히 땀이 흐를 때쯤에 이르러서는 ‘아이고 그만 가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언젠가 꼭 한번 다시 와야지 하는 다짐은 버리지 않았다. <8월 12일> 01시 05분 쿠알라룸푸르 출발, 08시 35분 인천 도착. 11시 30분 KTX로 서울 출발, 13시 5분 동대구 도착.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꿈이지만,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
첫댓글 에이 철환. 거짓부렁쟁이. 재미있는데 재미없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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