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운동
이 운동은 196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밴 나이스 성 마가 성공회 교회의 목사 데이빗 바네트신부가 예배 도중에 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5개월 전에 자기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실을 고백한 사건에 비롯되었다고 본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자기 교단을 떠나지 않고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바네트 신부처럼 공개적으로 자기 교단에 머물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은사운동은 ①방언과 함께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약간은 부드러운 입장을 취한다. ② 공중예배시 방언하는 것을 자제하나 은사집회에서는 방언을 사모하며 신유를 구한다. ③방언의 은사를 받은 후에도 자기의 교단에 그대로 머문다. ④은사운동은 방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기적의 체험등을 같은 무게로 강조하며 2000년 전에 이스라엘 가운데서 기적을 베푸시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신유의 은사를 베풀고 계신다고 믿는다.
3.전통적 복음주의 운동
필자는 특별히 합당한 제목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전통적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이 제목은 복음주의 운동 가운데에서 방언, 방언통역, 신유, 기적 행함 등의 은사들이 사도시대가 끝나면서 중지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일컫는 말로 쓰여졌다.
이 뿌리는 프린스턴의 벤자민 위필드(Benjamin Warfield)와 존 캘빈(John Calvin)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인 복음주의 운동은 개혁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존 스토트(John R. Stott)는 1966년 베를린에서 있었던 세계복음주의 대회에서 "교회에서 주어진 사명은 병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 오늘날 교회는 기적적인 치유사역을 행할 권세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Wager, 1987:35). 우리는 전통적인 복음주의 운동의 입장을 패커 (J. I. Packer) 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분명히 볼수 있을 것이다.
은사운동자들이 주장하는 바 오순절 운동으로부터 이어받은 사도시대의 은사들이 현재도 나타난다는 이론은 적용이 불가능하다. 신약성경의 은사들, 방언, 방언통역, 신유, 기적행함등의 은사가 현재에도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도 확인할수 없고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Packer, 1984 :229)
4.제3의 물결
피터 와그너 (Peter Wagner)는 빈손 사이넌 (Vinson Synam)과 제임스 왕(James Wang)을 인용하면서 제 3의 물결을 주장한다 (Wagner, 1987:20). 와그너는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 은사들은 교회성장과 그리스도의 복음확장과 성도들의 삶에 생명을 공급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음의 네 가지 점에서 그의 제3의 물결은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과 다르다. ①신약성경에서 보는 성령님의 힘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성령세례(Baptism in the sprit)란 표현보다는 성령충만 ( filling with the sprit) 으로 이해해야 하며 성령을 받은 성도들도 계속적으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② 성령세례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성령님을 받아 교회의 지체로 가입하는 것 (고전 12:13)으로 보아야 한다. ③ 방언도 성령의 은사이나 모든 성도가 다 방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④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필요에 따라 성령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사람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수도 있다(Wagner, 1987:27-28). ⑤ 신유의 은사는 매우 중요한 성령의 은사로 그리스도으 복음증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은사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체로 위의 네가지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에 서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이나 제 3의 물결의 입장은 그 정도나 강조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신유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에 신유의 은사를 이야기 할 때에 별로 저항감 없이 받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복음주의 입장에 서게 되면 사도시대와 함께 신유의 은사는 끝이 났기 때문에 오늘날 신유의 은사를 이야기 할 때에 상당한 저항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먼저 치유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를 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건들을 종합하면서, 하나님의 치유를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기적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믿음"의 사건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흔히 병고치는 은사로 이야기하는 신유는 하나님의 치유 (영적인 치유)의 과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II.치유의 네가지 유형
아퀴나스 신학교 (Aquinas Institute of Theology)에서 목회학을 강의하다가 병으로 고통받는 형제들과 자매들의 상담을 받으면서 그들을 돕고자 기
그레스는 그 사람의 뇌파의 활동, 면역의 균형, 혈압과 피의 공급, 호흡의 속도와 호흡량, 내분비, 소화과정 등에 현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Pelletier, 1977:35-36)
이렇게 감정이 원인이 되어 질병에 이르렀을 때에는 의학적인 치료와 함께 상담이 필요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들과 억압들과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시도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3.육체적 질병
이것은 질병, 사고 심리적 스트레스 등의 정신-신체적 (Psychosomatic)인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질병으로 성경은 이러한 질병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있다고 증거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육체적 질병이 환자의 신체에 장애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자에게 총체적인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예컨데 마가복음 1장 40-45절에 나오는 문둥병자들을 보자. 그의 질병은 부녕히 문둥병이라는 육체적인 원인에 의해서 왔다. 그러나 이 문둥병은 ①그에게 정신적으로 공포, 불안, 수치, 죄책감, 분노, 스트레스 등의 정서적 질병을 가져다 주고 있으며 (정서적인 장애). ②가족과 사회와 사랑하는 이웃과 격리되어 문둥병자촌에 수용되는 사회적 소외를 당하고 있으며 (사회적 장애). ③이웃과의 친밀관계가 단절되는 아픔을 경험하며 (관계의 장애). ④하나님께 재앙을 당하고 있다는 저주받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장애)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신체적 장애는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이렇게 신체적인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 질병은 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를 위한 기도를 드릴 것이다. 신체적인 병이 총체적인 장애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신체적인 질병의 치유와 함께 총체적인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4.귀신에 의한 병
성경은 귀신들려 질병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가나안 여인의 딸은 귀신들려 정신적으로 미쳐 있었으며 (마15 : 21-28) , 귀신이 들리면 간질병에 걸리기도 하며 (막9:14-29).눈멀고 벙어리 되게 하기도 한다.(마12:22)오늘 어떤 이들은 모든 질병이 귀신들림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에 흐르고, 다른 이들은 오늘날에는 귀신들림으로 병이 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극단에 빠진다.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 아닌 것은 사실이나 질병 가운데에는 귀신에 기인한 것도 있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이다. 이렇게 귀신에 기인하는 질병은 귀신을 쫒아내는 축사의 방법을 활용할수 있다. 그러나 중세기 이후에는 기도의 방법으로만 - 귀신들린 사람을 고칠때에는 그 귀신에게 책망하여 그 사람에게 떠나기를 명하고 있다(Green, 1994 : 185-186).
그러면 이상과 같이 질병의 유형이 다양하다고 하면 병든 사람을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프랜시스 맥너트는 다음의 3단계 치유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 1 단계 : 근본적으로 어떠한 질병인가? 그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어디가 아픈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어 내는 단계
제 2 단계 : 질병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 "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내는 단계.
제 3단계 : 어떠한 기도가 필요한가? 그 밖의 다른 치료법 (상담, 의학적 치료, 약물치료등)이 필요한가 등을 결정하는 단계.
하나님께서는 이 세가지 과정을 거쳐 환자를 총체적으로 치유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실 때에 기도라는 한가지의 통로만을 통해서 고치시지 않고 그 외에도 그 발병의 원인에 따라서 약물치료, 의학적수단, 축사, 상담, 목회등의 통로를 통해서 얼마든지 환자를 치유하신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라는 한 가지 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신유의 은사를 주신다고 믿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