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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그리고 60년대 이야기
- 장편소설 『해루질』의 줄거리 -
강병철
1960년대 서해안 갯마을을 중심으로 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다사다난한 도정이다. 특정된 주인공은 없으며 30명 이상 인물들의 크고 작은 사연에서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 그리고 근대화의 다양한 상흔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편 성장소설(2,000매)이다.
지금은 간척지로 변신한 천수만 근방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일상이 아슴아슴 희망과 절망의 시계추처럼 오르내린다. 해루질과 노름판, 주먹싸움과 구구단 외우기, 머슴살이 총각들과 갯마을 소녀들의 러브스토리도 은은하면서 진한 날줄 씨줄로 얽힌 사건들로 등장한다.
바깥마당에서 돼지 파는 풍경을 구경하던 다섯 살 강철이가 기절하는 사태가 첫 기억이다. 작대기에 묶어 들어 올린 저울에서 낙상한 돼지의 비명에 놀라 돌연 쓰러진 것이다. 아이를 깨우기 위해 몸에 키를 씌우고 그 위에서 아낙네들의 오줌 누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나는 게 첫 스크린이다. 강 씨 할아버지와 6.25 전쟁 때 코가 날아간 영동 출신 눈사람아줌마가 훈수 두는 해학적 장면이 아주 잠깐 보인다. 상갓집에서 싸움을 벌였던 눈사람아줌마네 외아들인 다섯 살 동갑내기 봉구 그리고 가난한 집 둘째 정환이가 삼총사 개울가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옴팡집에 사는 이순이는 입학식 때 호명이 되지 않아 불안해한다. 그 당시 호적은 이장님이 보관했다가 신작로 출타 때 면사무소에 올리곤 했는데 깜빡 놓친 것이다. 그 와중에 가난 때문에 입학을 포기한 한마을 3년 위 이순임과 호적이 바뀌면서 6년 내내 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에 처음 접하면서 동급생 남자 익구와 동만이 등의 기싸움에서 밀리면서 여자가 사회적 약자임을 처음 인식한다.
농한기마다 한탕 요행을 노리는 노름판의 고질적 풍토가 등장한다. 강 씨 할아버지와 조 씨 등 마을 사람들이 원정 노름꾼들에게 번번이 재산을 털리는 풍경이다. 노름꾼 두세 명씩 편을 짜고 초장에는 잃어주는 척하는 가짜 포즈를 취하다가 막판에 논문서를 걷어가는 수법이다. 성 선생(강철의 아버지)네 머슴살이 강 씨 할아버지가 노름 밑천을 모두 잃자 주인집 생강 두 가마를 걸고 시도한 마지막 노름에서 또 잃는다. 이튿날 길거리에서 리어카째 빼앗겨서 성 선생이 쫓아가 손수레만 가져온다.
정환이는 원래 가난한데다가 아버지의 노름으로 가세가 더 기울지만 집안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와중에도 베트남 전쟁터에 간 정구 형님만 돌아오면 친구들에게 ‘바나나를 질리도록 사주겠다’고 장담하며 가난 속의 위안을 갖는다. 아무도 없을 때 정환이 혼자 맹호 부대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이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한결같은 겨레 마음 임의 지志를 따르리라. 정구 형님만 돌아오면 베트콩과 싸룬 전쟁담을 듣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어한다.
소년 강철이는 시장 구석 국화빵 좌판에서 빵 굽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팔봉댁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곁방 사는 팔봉댁의 아들 덕호 형이 이웃집 관모와 싸우다가 이마에서 피가 흐를 때 구경꾼이던 강철이가 오히려 더 크게 운 후부터 듣게 되는 소리이다. ‘남이 울 때 함께 우는 게 착한 심성이여’ 국화빵 아줌마가 남겨준 말씀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강철이는 차마 ‘나도 처음에는 관모 편이었어요’라는 고백을 꺼내지 못한다.
어미의 배에서 처음 나온 돼지 무녀리가 젖꼭지가 모자라 굶게 된다. 강철이가 뽕나무 밑을 파고 거적을 깔아 아기자기한 무녀리 보금자리를 꾸며 따로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새기며 보람을 느끼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하굣길 집에서 어른들끼리 애저를 삶아 술안주로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시대 초등학교 풍경도 해를 바꾸며 몇 꼭지 등장한다. 헌병 출신 최 선생님이 구구단 외우는 순서대로 집에 보내는 등 경쟁을 시키는 건 당시의 흔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마지막까지 못 외운 종복이의 아랫도리를 벗긴다. 철부지 친구들은 그냥 재미있게 웃기만 했으나 저무는 철봉대 아래에서 엉엉 우는 종복이의 모습이 처연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선생님한테 따질 거여. 왜 옷을 벗겼느냐고.’라는 결의를 듣고 깜짝 놀란다. 강철이도 ‘남들 앞에서 절대로 알몸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가을 운동회 오후의 절정이 학년 별 계주라면 오전의 절정은 오자미 던지기로 바구니를 터뜨리는 게임이다. 오자미를 맞은 바구니가 터지는 순간 바구니에 갇혔던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고 운동장으로는 색종이가 쏟아지는 장면이다. 그래서 상급반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오자미를 준비해야 한다.
오자미를 만들지 못한 순임이의 고민이 서숙자 선생님이 주는 선물로 해결된다. 그 선물을 악동 익구가 빼앗아 교실 마루 구멍 난 곳에 빠뜨리며 엉엉 우는 사태가 발생한다. 집어넣은 손이 빠지지 않아 난리가 나면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아저씨가 톱으로 마룻장을 자른다. 알고 보니 오자미를 손바닥에 꼭 쥐고 있어서 빠지지 않은 걸로 판명이 나면서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강철이는 노총각 노승방 선생님을 존경한다. 비 오는 날 만홧가게에서 귀가하다가 우연히 선생님네 방에 들어가 백과사전을 보며 황홀함에 빠진다. 그런데 하필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대학 시절의 불온서적 탐독이 적발되어 징집 영장을 받은 날이다. 선생님이 ‘입대 전에 백과사전을 강철이에게 주겠다’고 말해서 엄청난 감동을 먹는다. 강철이는 노승방 선생님과 ‘어스름 달밤’에 백사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고 한 달 뒤 선생님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순임이는 딸부잣집 8남매의 다섯 번째인데 온 식구가 아들 하나만 낳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아홉 째 남동생 순규를 낳게 되어 기뻐했지만 그 막내 외아들이 이질에 걸려 죽는 장면을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직접 목격하게 된다. 죽은 아이는 그냥 지게에 지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묻으면서 허망하게 생이 끝난다.
아홉 살 강철이가 세 살 더 많은 식모 순이 누나와 교회에 가기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주인인 강철이 어머니의 완강한 거부로 예배당 출입이 좌절되자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가며 헤어지게 된다. 몇 년 후 순이 누나는 화려한 화장과 짧은 치마 복장으로 마을에 나타나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정환이가 퇴비장에 기웃거리며 내다 버린 누에 중 꿈틀거리는 놈들을 찾아낸다. 웃방에 채반을 만들고 누에를 키워 공판장에 내다 팔아 운동화를 사고 남은 돈은 저축하는 꿈을 꾼다. 다시 병아리를 키워 돈을 마련하는 화사한 계획도 세우지만 달걀을 사오다가 깨뜨린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킬 계획을 짜본다. 그 와중에도 베트남 전쟁에 나간 형이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바나나 실컷 먹여준다는 약속도 한다.
소아마비 기환이는 파월 장병 정구 형과 정환이 동생이며 기순이 기옥이의 오빠이다. 처음에는 동네 축구에서 골키퍼를 맡아 절름발이 몸으로 나름 역할을 하다가 입학 후 학교 골대가 너무 넓어 축구를 포기한다. 그리고 심심풀이처럼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에게 미술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는다. 정환이는 돈을 모아 동생에게 크레파스를 사주고 싶어한다.
강철이는 강아지 타이거(만화 『타이거 마스크』에서 따온 것)와 깊은 정이 들면서 가족 같은 느낌으로 함께 한다. 시간이 흘러 타이거의 몸집이 커지면서 꿩도 잡고 물가에 빠져 죽을 뻔한 혹부리 영감도 구해낸다. 그러나 새끼를 잉태하지 못하는 결정적 약점이 노출된 게 문제이다. 아버지 성 선생이 보신탕집 장사꾼과 흥정 후 개를 팔면서 절망에 빠진다. 첫 번째 위기는 모면했으나 다시 식당 주인의 설득에 다시 보신탕 집으로 팔려가게 된다. 실용적 인식을 가진 큰형 성렬이와 팔려 간 타이거 문제로 엄청나게 다투며 서로 상처를 받는다.
언제부터인가, 정환이의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일단 몰래 숨긴다. 서숙자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생전 처음 보건소라는 곳을 가본다. 벗 봉구와 강철이가 번갈아가며 보건소를 동행하면서 우정이 더욱 두터워진다. 페니실린 주사가 너무 아파 몇 차례 몰래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한동안 위험했던 결핵을 치료하며 위기를 벗어난다.
시골에 흔히 나타나는 뱀 이야기 몇 차례 등장한다. 정환이 동생 기순이가 뱀에 물려 온몸이 파랗게 퉁퉁 불었다가 살아나는 게 첫 장면이다. 또 하나는 4학년 아이들이 만우절 깜짝 이벤트로 교탁 밑에 뱀을 던져놓았는데 너무 놀란 서숙자 선생님이 어린애처럼 펑펑 운 사태이다. 게다가 교무실 서랍에 몰래 집어넣었다는 또 다른 뱀의 정보에 깜짝 놀란 반장 동만이가 소각장에 처리한다. 교감 선생님에게 틀켰으니 오히려 정력제라며 아까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방과후 반장 동만이로부터 악동들이 기합을 받는다. 동급생 반장의 체벌이 권장되던 1960년대이다.
정달이 형님, 증섹이 형님 등과 오밤중에 해루질에 나간다. 달이 떴다가 기우는 밤 풍경 속에서 그동안 청년들 사이게 감춰졌던 러브스토리를 나누면서 갯장어 잡기에 푹신 빠진다. 강철이는 미래의 꿈이 ‘푸른 바다’라는 정달이 형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깔깔 웃는다. 자정 즈음 돌아왔다가 강철의 부모님한테 엄청 야단 맞아 슬프긴 했지만 아름다운 밤바다 풍경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팔봉면에서 원정 나온 머슴 청년 정달이 형님은 주인집 마루 밑의 굴속에 저장해놓은 생강을 겨울에 팔아 몫돈 마련에 모든 희망을 건다. 그 생강굴 덕분에 강철이 남매의 아늑한 휴식 공간이 되었지만 정달이 형님이 썩은 생강의 유독가스에 쓰러진 채 숨을 거둔다. 벗 정석이 형과 사모하던 순실이 누나 등이 엄청 슬피 운다. 정달이 형의 시신을 불에 태운 다음 그 재를 바다에 뿌려지면서 그의 해루질 때 말처럼 ‘푸른 바다’가 되었다.
정환이는 장마철에 웅덩이에 모인 민물장어를 팔아 돈 벌 생각이다. 혼자 가려던 계획이 동생들에게 들키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는 바람에 온갖 고생을 겼는다. 날이 어두워졌는데 술 취한 혹부리 영감이 나타나면서 소아마비 동생 기환이의 감정이 갑자기 폭발한다. 기환이에게 지나친 동정심을 보이는 영감과 반발하여 다투다가 모든 즐거움이 무너진다.
간척지 경비원 정석이 형님이 재벌 사장한테 조인트 맞는 장면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우등상을 탄 순임이가 자신의 자랑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간척지 경비소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긴장하던 정석이 형이 칭찬하느라 잠시 한눈판 사이에 회장이 공사판에 나타나면서 근무태도 불량으로 물리적 질책을 받는다. 모두 걱정을 하지만 정석이 형님은 ‘이런 건 그냥 물로 닦으면 되는 거여’ 하며 무심히 웃을 뿐이다.
저학년 신체검사 때는 남녀 모두 상의 탈의로 실시했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상황이 바뀐다. 5학년 소녀들 가슴둘레 검사 때 담임 기송학 선생과 다투는 장면도 여학생 성장 과정의 상처가 된다. 담임은 신체검사 측정의 정확성을 주장하지만 첫 번호부터 막힌다. 출석부 명단이 생년월일 순서로 되어 있는데 특히 용자는 두 살 더 많아서 상의 탈의한 채 검사받는 건 불가능했다. 담임의 양보로 일단락 되었지만 창문 틈으로 몰래 훔쳐보던 사내아이들이 우르르 미끄러지는 황당 사태도 발발한다.
윤기윤 선생님이 우등생 몇몇에게 시험지 채점과 성적표 기록까지 맡긴다. 채점 이후 통지표에 숫자를 정확히 옮겨 쓰긴 했으나 강철이의 악필에 놀란 담임의 노여움이 폭발된다. 뺨 한 대에 훌쩍훌쩍 우는 제자에게 ‘축구 골대를 40초 안에 돌고 오라’ 엄명을 내린다. 40초 명령을 지키느라 정신없이 달리다가 어느새 눈물이 마르며 어물쩍 끝이 난다.
담임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순서대로 집에 보냈다. 강철이는 가장 먼저 외웠으나 담임님이 놓친 ‘계발’과 ‘개발’의 차이를 정리한 다음 하굣길에 나선다. 생강밭 매던 관모와 순임이 엄마를 만나 ‘아무리 늦어도 해 떨어지기 전에는 보내유’라며 안심을 시킨다. 밭 매다가 손자가 오지 않는 걸 걱정하는 따래할멈에게 ‘관모가 달리기는 최고예유’하면서 위로한다.
고향이 충북 영동인 눈사람 아줌마의 본명은 수희이다. 일제가 전쟁에 패망하면서 일본 여자 담임인 나츠네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특이하다. 5년 후 6.25가 발발하면서 노근리 굴다리에서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미군의 총에 맞고 숨지는 엄청난 사태가 터진다. 가족을 잃은 수희는 시체더미에 깔린 채 살아났으나 콧등이 사라져 안면 장애가 된 채 한머리로 거처를 옮겨 봉구의 엄마가 된다. 봉구 탄생 과정의 의문점은 일단 숨긴다.
1박 2일의 간월도행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은 서숙자 선생님이 제안 때문이다. 착한 선생님의 지도 아래 생전 처음 캠프 화이어까지 누리며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느낀다. 이튿날 몇 시간 더 놀다 가자며 조르는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지만 점심 먹을 식량이 없다. 그러다가 저마다 보따리에서 남긴 음식을 꺼내며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식단이 차려진다. 순임이는 오자미의 콩을 꺼낸 후 헝겊은 따로 남겨 집에 보관한다. 서숙자 선생님의 선물 흔적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용 강사님과 윤기윤 선생님의 연애 소문이 들리면서 상급반 여자들이 수근거린다. 순임이는 단지 용자가 ‘윤기윤 선생님과 무용 선생님이 반말 쓴다’라는 메모에 ‘헐, 대박’이라고 세 글자만 썼을 뿐이다. 그게 걸려서 50대를 맞으며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잘못이라는 생각을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아픈 경험이 되었다. 불미스러운 소문에 불안해하던 무용 강사님의 화풀이 매질이었던 것이다.
정환이, 강철이, 봉구 그리고 한 살 더 많은 동급생 관모까지 네 명의 하굣길에 짚누리에 버려진 소주병을 발견한다. 강철이는 겁을 먹고 망설이지만 관모의 충동질에 모두 소주에 입을 대게 된다. 몇 잔 들이키자 순식간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저마다 한탄과 희망을 토로한다. 관모는 육상 선수로의 포부를 밝히고 정환이는 중학교에 갈 돈이 없어서 걱정을 한다. 봉구는 중학교 진학은 해결이 가능하지만 얼굴이 망가진 엄마 눈사람아줌마에 대한 아픔을 하소연하며 펑펑 운다. 그러다가 불쑥 나타난 혹부리 영감의 ‘애기들, 술 마셨니?’라는 물음에 정신을 차리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이웃 소재지 인치초와 축구 시합을 벌이며 경운기를 타고 원정 응원을 나간다. 전반전에는 관모, 정구, 동만이 등의 개인기로 2대0까지 앞서다가 후반전에 2대2로 비겼다가 연장전에서 3대2로 역전패를 당한다. 모두 절망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원망할 때 정환이가 앞에 나타나 응원을 시작한다. 응원단 역시 합세하면서 ‘승자든 패자든 정성을 다하면 모두 우리 편’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기싸움을 벌이던 상대 인치초 학생들도 가세해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환이는 공납금 마련을 위해 망둥이를 잡아 바닷가에 건조시킨다. 그러다가 도둑고양이 하나가 나타나 생선을 물고 도망간다. 처음에는 ‘나누어 먹어야지’하며 여유를 보이다가 점차 고양이의 숫자가 불어나면서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고양이 부대기 최신형 무기까지 갖추면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고양이 부대의 오줌 폭탄을 맞고 놀라서 깨어나 보니 요 위에 오줌 자국이 흥건하다. 정환이가 오줌싸개가 된 마지막 사고였다.
준철이와 호동이 형제가 읍내 경시대회에 출전해서 준철이만 군내 2등에 입상한다. 기분 좋은 성 선생이 술자리에서 ‘둘 다 1등을 했으면 진짜 경사인데 하나가….’라는 소리에 호동이에게 빨래 방망이를 든다. 술기운에 혼내는 시늉을 한 건데 형제들 모두 너무 놀라 충격을 받는다. 준철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호동이는 ‘다음에는 꼭 이기갰다’며 형에 대한 질투를 보인다. 마지막까지 잘 견디던 준철이는 ‘연애 박사’라는 놀림에 분노하며 동생을 때린다.
강철이는 6학년이 되면서 점차 성적표 점수의 불안감의 도가 진해진다. 5월 고사에서 첫 시험에 실패하고 마침내 시험 중 무단 조퇴를 시도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저녁 때 봉구를 불러 시험 문제를 알아내다가 ‘비겁자’라는 핀잔을 먹는다. 그렇게 중간고사에서 2등 정도를 유지했으나 정환이와 기석이 등 몇 친구에게 반틱이라는 지적을 당하며 마음의 가책을 느낀다.
그 사태는 정환이를 불러 노승방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백과사전을 모두 넘기는 계기가 된다. 표정이 수상하게 느껴진 정환이가 몇 차례 추궁을 하지만 강철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이미 성적표의 짐이 무거워졌음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정환이네 식구가 베트남 전쟁에서 제대한 정구 형님을 차부에서 기다리지만 막차가 올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이튿날 장대비를 뚫고 돌아왔을 때 목발을 짚은 모습이어서 온 가족이 놀란다. 정환이는 그보다 전쟁터에서 만난 늦깎이 군인 노승방 선생님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와중에도 벗 강철이에게 어떻게 전달할까가 더 큰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날 밤 강철이가 백과사전 열 권을 모두 정환이에게 넘겨줄 때 불안한 마음으로 스승의 전사 소식을 전달한다.
강철이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 모두가 부엉이 바위로 달려 나온다. ‘성적표 조작의 부끄러움’과 ‘존경하는 스승의 죽음’ 등 복합적 상황에 대한 절망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강철이는 절벽 소나무 가지에 지탱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부끄러움을 모두 토로한다. 성 선생도 자식들의 성적표 집착에 대한 반성을 하고 서숙자 선생님이나 순임이까지 모두 ‘돌아오라’며 애원을 한다. 도저히 설득시킬 수 없을 것 같던 강철이가 돌아오면서 1년 휴학을 결정한다. 공부를 포기하고 책만 읽으며 마음이 조금씩 순화된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담임이 순임이를 부르며 ‘학적부 이름을 순이에서 순임으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열세 살이 지나기 직전에 비로소 자기 본명을 모든서류에서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뜻밖으로 공부를 잘했음을 처음 알게 된다.
정환이는 중학교 입시를 치렀으나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한다. 쇳밭둑 당숙모가 이웃집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허탕을 친다.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등교했더니 마이크로 이름을 부른다. 등록금 내지 못해 입학이 취소되는 줄 알았더니 ‘공동 수석’이라는 반전 소식을 듣는다. 열심히 하면 다음 학기도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격려하지만 남은 언덕이 여전히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명징한 결말을 만들지 않은 채 다음 스토리의 공간을 열어 놓았다. 특정한 주인공이나 소영웅을 배제시켰으며, 민초끼리는 증오의 감정에서 화해의 분위기로 통로를 열어놓았다. 격동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평범한 민초들의 감성 묘사에 티테일하게 치중했음을 고백한다. 열세 살 이후의 사연은 다음 성장소설에서 기약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