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묘조장’(拔苗助長)(지소현)
강원장애인신문사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이 있다.
중국의 어느 어리석은 농부가 논에 벼를 심었다.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함에 날마다 논둑에 나가 살폈다. 주변 것 보다 자신의 벼가 작아 보였다. 순을 잡고 당겨 올렸더니 쑥 커졌다. 내친김에 모조리 뽑아 올렸고 저녁에 돌아가 아내에게 자랑했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논에 나가봤더니 모조리 말라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손해만 입은 헛수고를 한 것이다. 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돕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발묘조장’(拔苗助長)! 이것의 줄인 말로서 조장(助長)이란 단어가 있다. 부정적인 수식어로 흔히 쓰인다. 불안 조장, 혼란 조장, 갈등 조장 등등...
그 어리석음은 나에게도 넘쳐난다.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협력하여 행사를 주최할 때 동료들보다 일찍 현장에 나가 준비를 한다. 탁자를 배치하고 배포할 물건을 늘어놓는다. 그 때 뒤늦게 나타난 동료들이 의견을 모아 더 짜임새 있는 위치를 선정해서 다시 진행할 때가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헛일을 했으며 두 번의 수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없는 누군가를 픽업할 일이 생기면 일찌감치 약속 장소로 간다. 교통 혼잡한 큰길일 때는 뒤에서 빵빵대는 차들을 피해 주변 골목을 이리저리 돈다. 얼마나 쓸데없는 수고이고 시간 낭비며, 상대에게 미안함과 불편함을 조장하는 행위인가.
얼마 전 일이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려서 원주에 갈 일이 생겼다. 남원주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내려고 할 때였다. 통행료 감면 증빙자료인 장애인복지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뒤졌지만 없었다. 할 수 없이 정상 요금을 냈다. 평소의 두 배여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복지카드가 어디로 갔을까,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당장 재발급을 받기로 마음먹고 동사무소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민원인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일정 비용을 내고 재발급 신청을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복지카드가 얌전히 놓여있는 것 아닌가. 무엇이든지 생각난 김에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급함이 시간과 돈을 낭비한, 손해를 조장한 것이다.
이러한 손해는 인간관계에서도 벌어진다. 상대방이 같은 주제로 말을 길게 하면 조급증이 인다. 그래서 내 머릿속 결론을 들이대며 뚝 자르기 일쑤다. ‘이러이러하다는 뜻이지요?’ 하면 상대방은 머쓱해하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요 무례함인가. 이 밖에도 모임에서 인사를 나눌 때면 A라는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 시선은 다음 차례인 B에게 머물기도 한다. A의 입장에서는 잡은 손을 뿌리치고 싶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불만 조장의 씨앗인 나의 급한 성격! 건강에도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인 지인에 의하면 급한 성격의 소유자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맥박이 뛰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래서 악성 세포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이득 될 것이 없는 나의 성급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만들어 낸 것이리라.
이제부터라도 벼의 싹을 뽑아 올린 농부의 어리석음을 가슴에 새기고서 느림을 연습해야겠다. 인생 3막, 평온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첫댓글 필요에 따른 완급조절의 지혜를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