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그에게서 신선한 향기가 났다
총 25편의 작품을 건네받은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꽤 긴 시간 시조 공부를 해왔을 듯한 공력이 담긴 작품들이었다. 일정 수준에 올랐지만, 앞으로 누가 더 걸작을 낼 것인가 판단한다는 건 실로 조심스럽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범상한 소재를 다룬 영화라도 감독의 시선에 따라, 또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의해 관객 동원에 성공하는 사례가 있다. 시조 작품 역시 뻔한 일상을 뻔하지 않게 풀어낼 때 그 묘미가 살아난다. 거기엔 작가의 말부림도 한몫하겠지만 그 말속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느낌을 조합할 줄 아는 감각 또한 요구된다고 하겠다. 시어 하나가 작품 전반에 은은한 향기를 감돌게 한다. 그러한 시어를 발굴하는 시인은 언어의 조향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독특한 향기가 사람을 매혹하기도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향기에 은근히 끌리기도 한다. 알 것 같으면서도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향기에는 친밀감이 흐른다. 반면 이미 식상해 버린 익숙한 느낌이라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점 때문에 판이 뒤집히는 바둑과 같이 그 묘수를 익히기 위해선 더욱 뜨거운 연마가 지속되어야 한다. 작품을 빛나게 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고심한 단 한 구절의 묘사 혹은 시어 하나로 말미암은 것임을 경험한 사람만이 저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가 아닌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프로 근성이 몸에 배야 한다.
몇 편의 작품을 놓고 그러한 기질을 가려내기 위해선 계속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두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면 먼저 안이하게 손을 뗀 작품은 표가 나기 마련이다. 고답적인 시풍, 기시감이 있는 출발이나 결말, 관념어로 다듬은 표현 등 이런 부분을 가려내면 비교적 점수를 잘 지켜낸 작품들이 남는다.
양서은의 「길의 끝에 차꽃이 피어 있다」외 2편을 신인상으로 올린다. 양서은은 작품 속에 자신만의 향기를 담고 있었다. 굳이 덧붙이자면 그의 작품에선 하나의 낱말이 동일한 의미로 거듭 나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새로운 시어로 대체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글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신인상 수상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시조에 대한 열정을 안고 함께 응모한 분들껜 격려의 박수를 드린다. 이번의 도전을 일취월장의 토대로 삼아 새롭게 도약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김종빈 이광(글)
길의 끝에 차꽃이 피어 있다 외 2편
양서은
길의 끝에 차꽃이 피어 있다
바위에 기대앉아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굽이 굽이 굽은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람이 사는 마을은 소실점으로 멀어진다
지나가는 이들마다 숨소리가 가쁘다
그 길이 어떠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내게는 감출 수 없는 눈물 맺힌 굽이였다
누군간 바위 위에 무장 글을 새기고
누군간 탑을 쌓아 무장 기도를 하고
또 누군 차꽃 피고 지는 세월만 바라봤다
아버지의 생명줄이 살뜰히 피운 찻잎
길과 길로 잇고 세상과 나를 이어
오래된 풍경이 되네 차꽃 피는 외진 산막
어머니의 항아리 속엔 무엇이 있었을까
푸른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꿈을 꾸고
아버지는 나를 낳았다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한 번도 익은 적 없이 매달려 있는 나의 꿈들.
어머닌 땡감을 항아리에 넣어 두셨다가
긴 긴 겨울밤 달디 단 감으로 내어주셨다
어머니 항아리 속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소쩍새 한 마리 온 산을 울게 하고
이팝나무꽃 한 그루 온 물가를 웃게 하듯
푸른 꿈, 붉은 감으로 익히는 비법이었나.
맥문동 잎새 위, 보란 듯
내 작고 작은 화단에 사마귀가 살더니
어느 날 맥문동 가는 잎새 위에
보란 듯 사체 하나가 버젓이 누워있다.
사라진 머리만큼 큰 사마귀 곁에 누워있다
지아비의 머리를 먹은 어미의 가슴을 뚫고
내년 봄 신생 사마귀 보란 듯 태어나겠지.
당선소감
양서은
경기 안양 출생
‘얼떨떨’
메일을 보지않았다는 독촉 문자에 확인을 했습니다.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
‘어머니의 항아리 속엔 무엇이 있었을까’ 의 시조에서 처럼 푸르디 푸르기만 했던 저의 꿈들이 이제 익어가나 봅니다.
마감 시한에 급하게 원고를 보내고 난 뒤, 올라오는 첫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제대로 다듬지 않은 글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말입니다. 다만 ‘맥문동 잎새 위 보란 듯’ 시조에 이제 갓 태어난 사마귀처럼 배우고 훈련하는 자세를 가지려합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길입니다. 고전인 논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바꾸려고 차를 마시다 화윤 박남식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감회를 시로 써 보라 조언해주시고 백이운 스승님을 만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시의 고전인 시조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공자의 예와 악이 형상화되어있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이제 깊이 우물을 파려 합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나아가려 합니다. ‘길의 끝에 차 꽃이 피어 있다’ 에서 처럼 말입니다.
졸작에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편집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