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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호남에서 활동했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조선 전기의 대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의 사상을 검토해야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동시대의 인물인 이황이나 이이에 비해서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성리학에 대한 그의 이론은 한국 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황과 여러 해에 걸친 논쟁을 발였던 기대승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논의되기도 한다. 그의 문집에 전하는 한시는 1,600여 수 정도가 되며, 특히 그는 자신이 섬겼던 인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쓰러졌다가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귀향하였다. 얼마 전에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등재된 서원 중 장성의 필암서원에 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학자인 김인후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문학 세계를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대중들에게 그리 익숙한 인물이 아니기에, 저자는 ‘가상 대화’를 통해 김인후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16세기의 인물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자가 전자우편을 통해 연결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문집과 시 그리고 기타의 기록 등에 남겨진 내용들을 저자가 묻고 김인후가 설명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하여 ‘여는 글’에서도 김인후가 보낸 가상의 전자우편의 내용을 소개하고, 이러한 형식을 취하는 저자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의 일방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것보다, 가상이지만 과거의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점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김인후가 남긴 다양한 기록들을 섭렵하고, 학계에서 진행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의 일생과 사상을 조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 다섯 마당으로 이뤄진 목차를 통해서, 저자의 기획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 먼저 ‘집안’이라는 제목의 ‘첫째 마당’에서 김인후를 비롯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일생과 결혼 그리고 가정생활과 학업 과정 등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김인후를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기실 그 내용은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양반들의 일반적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겠다. ‘조선의 하늘과 땅’라는 제목의 ‘둘째 마당’에서도 역시 지방에 거주하는 사대부들의 고향에서의 생활과 서울에서의 관직 생활의 면모를 김인후의 기록을 토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어지는 ‘셋쩨 마당’에서는 ‘인간에서’라는 제목으로, 당시 양반들의 교유 관계와 학문에 입문하는 절차 및 과거를 통한 관직 진출, 그리고 김인후가 섬겼던 인종과의 특별한 관계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대나무 숲’이라는 제목의 항목에서는 인종이 죽은 이후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와 지내면서, 은거하는 와중에 지인들과의 교유 양상에 대한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 항목인 ‘천명도’에서는 정지운이라는 선비가 성리학의 이론을 그림으로 그린 ‘천명도(天命道)’를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 그 내용을 수정했던 사연을 담아내고 있다.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틀을 갖추고 있기에, 그것을 도식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황과 기대승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논쟁을 벌였다고 하겠다. 결국 김인후가 수정한 ‘천명도’가 그의 사상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의미로, 그것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했다고 이해된다.
실상 이처럼 대화 형식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가 그 상대인 김인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그렇게 소화한 자신의 견해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김인후의 사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고 이해된다. 더욱이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논의는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지루하고 어렵게 생각되기 마련인데, 대상 인물과의 가상 대화 형식을 취했기에 용어나 내용에서도 조금은 쉽게 풀어낼 수 있었 것이라고 이해된다.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실록에 기록된 김인후의 ‘졸기(卒記)’와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한 ‘김인후 연표’ 그리고 ‘북한에서의 김인후 연구 자료’ 등이 첨부되어 있다. 이를 통해 김인후라는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확인할 수 잇을 것이라고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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