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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아마도 과거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표현일 것이다. 상황에 걸맞게 대처하지 못하뿐 아니라, 오히려 익숙하지 못하고 서투른 상황을 연출하는 상대에게 내뱉는 대사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위에서도 많은 이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를 꿈꾸며 산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연스럽게 대처하여, 혹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마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에게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면, 과연 그러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일까? 혹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그것을 위해 수많은 시간 준비하고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이해된다. 스스로를 ‘무명의 배우엄마’라고 규정하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16살의 나이에 ‘셰익스피어에 매료되어 배우가 되기로 꿈을 꾼’ 이래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저자의 삶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비록 여전히 ‘무명’의 배우이지만, 저자는 이제 결혼과 함께 찾아온 아들을 위해 ‘엄마’의 역할을 더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배우의 길’을 걸으며 살았던 저자는 자신의 삶의 역정을 이 책에서 그대로 풀어내고 있다. ‘배우의 꿈’을 위해 예고에 진학하고, ‘아비뇽’의 열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 연기 공부를 했던 힘겨웠던 과거의 이야기는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저자의 그러한 삶의 과정을 되새기며 꼼꼼히 기록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자부를 표출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배우엄마’로 살고 잇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삶의 과정은 그대로 책의 목차에서 드러나고 있다. ‘열여섯,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다’라는 1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책과 연극을 통해 배우의 꿈을 키우고, 한 달 동안 열리는 연극축제를 둘러보기 위해 찾았던 ‘뜨거운 아비뇽’의 기억과 경험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난 프랑스로의 진출, 그리고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장학금까지 포기하고 찾았던 학원에서의 기억들이 2장의 ‘오~샹젤리제! 무작정 꿈을 키운파리에서의 6년’이라는 항목을 통해서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특히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20대를 온전히 바쳐 생활했던 프랑스를 끝내 떠나야만 했던 자신의 처지를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처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연극배우로서는 비교적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시작한 도전을 ‘서른하나, 연극무대에 데뷔하다’라는 3장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전히 무명으로 살면서 결혼과 함께 찾아온 아이는, 저자에게 ‘꿈꾸는 배우엄마의 리얼 생존 라이프’(4장)라는 현실을 절감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육아를 담당하면서, ‘아이가 잠들면 시작되는 엄마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아직 대중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자는 스스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명이지만 아마추어는 아닙니다’라고 5장의 글들을 통해서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마지막 6장의 제목처럼 ‘나는 배우다’라는 저자의 자신감이 전제되어 있고, 비록 기회가 많지 않더라도 ‘울음으로 울림을 줄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될 수 있기를 다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배우로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배우의 길’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존재와 역할 덕분에 ‘유명 인사’들의 활동이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분야이든지 독불장군처럼 혼자만 잘나고 능력이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수많은 ‘무명’들이 있기에 유명인들의 역할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과 ‘무명’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며 사는가 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바로 그런 점에서 ‘무명이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저자와 같은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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