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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각각 다른 영화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3년 전 같은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래,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이 미국에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이제 한국 영화는 세계적으로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구축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고전평론가를 자처하는 저자가 영화 <기생충>을 자본주의 시대의 가족의 존재와 사회적 소통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이다. 저자의 관점은 <기생충>의 두 가족, 반지하와 대저택에 사는 이들의 형상이 ‘핵가족 붕괴로 인한 자본주의 하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맞춰져 있다. 영화의 원제가 ‘데칼코마니’로 하려다가 <기생충>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원제는 비록 경제력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두 가족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현실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먼저 1부에서 봉준호 감독의 이전 영화들, 즉 <괴물>에서의 ’위생‘이라는 문제와 <설국열차>의 ’계급‘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덧붙여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돼지를 다룬 영화 <옥자> 역시 자본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기생충>을 ‘핵가족의 붕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2부에서는 외부와의 소통이 없이 단지 가족 구성원들로만 살아가는 ‘반지하와 대저택의 데칼코마니’에 주목하여, ‘핵가족의 섬뜩함’을 드러낸다고 분석하고 있다. 반지하의 삶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가족 구성원들이 대저택의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계획’을 설계하고, 마침내 그들의 세계로 침투해들어가는 과정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들에게 ‘계획’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것에 불과할 뿐,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마침내 대저택에서 함께 지내지만, 두 가족 사이에는 넘지 못할 가상의 ‘선’이라는 경계가 그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각자 설정한 ‘선’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가 넘었기에, 이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3부의 제목처럼 ‘핵가족, 음울한 묵시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논하고 있다. 이들 두 가족 이외에 감추어진 존재로 살아가는 지하의 가족들 역시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된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하겠다. 반지하의 가족들에게는 대저택의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고, 그들의 삶을 욕망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밖에 없다. 대저택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의 가족들을 통해서 ‘외부가 없는 핵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디지털로 조작된 ‘계획’으로 ‘단번에 도약을 꿈꾸는 가난한 가족’에게 미래의 삶에 대한 진정한 ‘계획’은 생각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저자는 ‘핵가족의 폐쇄회로에서 탈출하기’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일단 ‘계획을 버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향해 나가도록 힘차게 응원해 주는 연대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일컬어 ‘생명과 생명으로서의 연대감’이라고 규정하면서, 모든 이들이 ‘저절로 자존감을 지키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 함부로 살지 않’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이미 저자는 수많은 이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한 삶의 형상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보았던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를 되세겨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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