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정끝별
춤
내 숨은
쉼이나 빔에 머뭅니다
섬과 돔에 낸 한 짬의 보름이고
가끔과 어쩜에 낸 한 짬의 그믐입니다
그래야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내 맘은
뺨이나 품에 머뭅니다
님과 남과 놈에 깃든 한 뼘의 감금이고
요람과 바람과 범람에 깃든 한 뼘의 채움입니다
그래야 점이고 섬이고 움입니다
꿈만 같은 잠의
흠과 틈에 든 웃음이고
짐과 담과 금에서 멈춘 울음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두 입술이 맞부딪쳐 머금는 숨이
땀이고 힘이고 참이고
춤만 같은 삶의
몸부림이나 안간힘이라는 겁니다
멜랑콜리커의 발
가만한 발에 검정 바다가 왔다
그만이라는 발바닥에 가장 검정 바위가 알을 슬었다
작은 뭉개구름은 백 톤에서 천 톤의 무게다 사십 마리에서 사백 마리의 코끼리가 하늘에 떠 있다는 거다
그러나 구름은 가벼워서 뜨는 게 아니다 구름보다 더 무거운 바람이 구름을 침범했기에 뜨는 거다
처음엔 다들 바다를 믿었으나 소음된 믿음이 바람을 불렀다 검정 구름이 폭음처럼 솟구쳤다
별이었다면 그렇게 금세 쏟아지지 않았을 텐데
뭐든 가만 참다보면 줄이 풀리고 발을 적시는 순간
발이 젖었으니 넘칠밖에 쏟아질밖에
빌도 없이 달려오는 검정 바람에 소문의 파고가 높았다
미상과 불명의 침몰일수록 오래 유출되는 법
매미처럼 울었다 같은 데서 멈춰 같은 데를 노래하다 같은 데서 길을 잃고 같은 데로 쏠렸다 개미처럼 사소해졌다
발이 없으니 번개가 날개였고 안개가 베개였다
물었던 걸 또 묻는다 되묻는 간격이 짧아진다 물을 때마다 다른 인생에 가까워진다 묻고 묻다보면 신생아가 될 것 같다 검정 바다에 가까워질 것이다
천 날의 발이 젖고 천 날의 발을 잃었으니
사이렌과 세이랜으로 떠가는 중이다
오늘도 검정이라는 사이를 인양중이다
합주
혼자서는 느리거나 빠르다
둘이면 조금 빨라지고
셋이면 조금 더 빨라진다
사랑에 빠질 때도
사랑이 빠질 때도
둘의 박동은 심장을 건너뛰고
셋의 박동은 심장을 벗어나기도 한다
희망에 달려갈 때도
희망이 달아날 때고
셋이면 경쟁이 되고
넷이면 전쟁이 된다
여럿이 부르는 신음을
우리는 화음이라 한다
관음(觀音)
겨울 가습기를 치우고
말간 물을 가득 채운 수반에
참숯 세 개를 세워놓았더니 밤새
마른 목울대가 꿈틀
참숯 물 빨아들이는 소리
쩍 쩍 도끼날 받듯
밤의 아가미를 열어 눈물을 빨아들인다
맨 끝 맨 끝 잔별들까지 글썽이며
천수천안관세음을 불러댄다
쓰린 것들 쓰라린 것들
밤새 해갈하는 소리에
이웃한 관음죽 한 그루
연한 식은땀을 흘리며 때 이른
아기 잇 싹 같은 봄 꽃대를 내빼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