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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월요일부터 4월 18일 목요일까지 삼무곡에서는 3박 4일간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시간, 다양한 삶의 형태로 묵묵히 제 자리에서 인생을 살아오신 스승님들을 만나 배움을 얻는 여행. 이번 여행의 배움 주제는 ‘일상이 명상이다’였다.
첫째 날 우리는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내안재에서 영성가 김철원 목사님을 만났다. 우리는 스승님께 올리는 삼배의 예를 드린 뒤, 내안재 안에 위치한 예배당에 둘러 앉아 김철원 목사님께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철원 목사님께서 가장 먼저 말씀해 주신 것은 바로 명상을 하는 이유였다. 목사님은 어떠한 일의 근본적 물음을 알고 싶어 하셨고, 그 방법으로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보다 왜 명상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우리는 이번 여행의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명상이란 내가 쓰고 있는 여덟 겹의 막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 내면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고, 그를 통하여 내면의 나, 즉 참 나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라고 말씀해 주셨다. 평소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무언가를 마주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를 통하여 마주하게 되고, 이는 왜곡된 감상과 곡해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명상을 하며 내면의 고요함으로 들어서는 과정에서는, 외부의 어떠한 자극이 왔을 때 이를 정의하는 과정을 갖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면 속으로 ‘생각, 생각, 생각’하고 세 번 외우고, 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들음, 들음, 들음’, 어떠한 형상이 보이면 속으로 ‘보임, 보임, 보임’하고 섣불리 받아들인 정보에 대하여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을 반복하며 이를 원점으로 삼는다. 그렇게 자기 삶의 방식과 잠시 거리를 두고 원초적인 나의 의지를 마주하는 것, 행간의 원인이 되는 나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명상의 정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명상은 앉아서 하는 방식인 좌선 뿐만이 아니라 서서 하는 입선, 걸으면서 하는 행선 등 특정한 자세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즉 크고 작은 일들이 뒤섞여 일어나는 일상을 명상으로 살아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둘째 날 오전 시간에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순일선원에서 순일 큰스님을 만났다. 순일 스님은 불교의 초기 경전들을 공부하는 종파인 원음종을 창설한 분이셨다. 젊어서는 천주교 신자셨으나, 한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후 우연히 불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출가 하셨다.
순일 스님은 우리에게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인지. 스님은 모든 사람에게 천사의 두 날개가 달려있다고 하셨고, 그 왼쪽 날개는 보시를, 오른쪽 날개는 계율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언제나 규칙을 지켜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베풀고 용서하는 것. 이로써 사람은 그 너머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순일 스님과 말씀을 나누고 난 후, 우리는 순일선원에서 밥 한 끼를 대접받았다. 이후 순일선원을 나서서 여주의 남한강 콘도에 도착해 휴식 시간을 가지고, 4시에 다시 모여 신륵사에 들러 절 산책을 한 뒤, 저녁 시간에는 현곡의 젊었을 적 친구분들을 만나러 갔다.
현곡의 친구분들은 돌아가면서 우리에게 인생 선배로의 조언을 들려주셨다. 어떤 분은 성공의 비결을, 말하시고, 어떤 분은 때를 강조하시고, 어떤 분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하라 말하시고, 어떤 분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다. 언뜻 비슷한 내용도 있었지만 각자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내어 그 경험을 통해 해 주시는 조언이었기에, 말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한 생을 잘 살아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도 어른이 된다. 각기 다른 삶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는 것. 한 분 한 분 우리에게 다른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셨지만, 그럼에도 공통으로 하시는 말씀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자신 역시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몇 마디 말씀 나누고 있지만, 본인 또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사람이라고. 그런 거만하지 않은 모습이 진정으로 한분 한분의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친구 사이로 있는 것도 신기했고, 또 각자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가 한분 한분 먼 길 오가며 찾아뵈는 스승님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현곡의 친구분들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셋째 날 오전에는 이천 도자기 예술마을에서 서양화가 박호창 선생님과 윤보리 선생님을 만났다. 먼저 박호창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윤보리 선생님께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견해에 대하여 들었다. 카메라의 개발로 인해 르네상스의 시대가 끝이 나고 고갱, 고흐, 마네와 모네 등의 화가들이 인상파라는 추상적 그림의 시대를 열었던 이야기. 그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하는데 초점이 잡힌 현 미술 시장. 그리고 현대 미술이라는 언뜻 보기에 다소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의 세계 등등. 결국 예술 작품이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마주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 담겨 있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의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나서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잣대를 작품에 들이대며 재단하려 하는 사람은 결코 작품의 진짜 모습을 마주 볼 수 없다. 윤보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작품을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은 직접 윤보리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선생님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살펴보았다.
사실 작품을 마주 보는 방법을 들었다고 해서, 정말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깊은 뜻까지 전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막상 윤보리 선생님의 작업실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윤보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윤보리 선생님의 작품 중에는 오드리 햅번과 마를린 먼로를 잡지를 오려 붙여 만든 그림이 있었는데, 보리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그 잡지가 모두 유명 여배우의 스캔들을 오린 것이라고 하셨다. 상징적인 존재와 이에 상응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입혀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또 작품에 파란 아크릴 상자를 씌운 작품들도 존재했는데, 이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을 표현하여 이를 숨겼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언뜻 보기에는 이쁘기만 한 작품들에도 알아채지 못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윤보리 선생님은 이러한 예술의 세계를 우리에게 언뜻 비춰 보여주신 스승님이셨다.
박호창 선생님은 전시회를 준비해야 하셔서 윤보리 선생님 만큼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들려주시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한 말씀을 하셨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왜인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결국 그림 그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이 말씀이, 내게는 깊게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요 근래 내가 품고 있는 의문점이 바로 ‘왜?’라는 물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그것을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오로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마땅한 말이 존재하는가. 왜 사는지, 삶은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는지, 글은 왜 쓰는지, 관계는 왜 가지는지, 사랑은 왜 하는지. 나는 답을 알지 못 했고, 이러한 질문들은 끌어안은 채 이번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실 여행을 다니며 스승님을 계속 만나면서도 스승님의 이야기에 깊게 집중하지 못 하였다. 왜 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셋째 날 오후에 우리가 만난 스승님께서는 이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셨다.
도예가 이호영 선생님은 굉장히 활달한 정신세계를 지닌 분이셨다. 도예가 이호영 선생님은 20년간 자기를 펴내는 일을 한 분이셨다. 자기란 도자기에서 흙이 완전히 익기 전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이호영 선생님은 세상에 도기를 펴낸 사람들은 있어도 자기는 당신이 최초라고 단언하셨다. 누구도 불가능 할 것이라 말 하는 일을 기꺼이 하고, 이를 성공해 내신 분. 이호영 선생님은 젊어서부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남들과 같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정이 있으셨고, 그만큼 매우 동적인 삶을 살아오셨다. 그렇기에 한 가지 일을 시작하고 나면 끝까지 가는 버릇이 있어서, 안 좋은 것들도 시작하면 끝 그 언저리까지는 가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것이 자신을 망가트리겠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끊어버리셨다. 결국 무엇이든 끝에서 끊어낼 수만 있다면 깊게 경험할 수록 그게 나중에 가서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게 이호영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인생이란 그냥 사는 거라고. 왜냐면 사는 게 재밌으니까 사는 거라고. 정말 이 말씀은 나에게 있어 예상외의 말이었다. 하지만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이호영 선생님 또한 인생을 살아온 한 분의 스승님으로서 해주신 말씀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넷째 날에는 명상 스승 박석 교수님과 조각가 김은현 선생님을 만났다. 먼저 김은현 선생님과의 시간에는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실습을 했다. 아직 구워지기 전 도자기에 각자만의 그림을 그리고, 나중 5월이 되면 각자의 도자기를 구워서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각자 마음에 드는 모양의 자기를 골라 먼지를 털어내고 무슨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고 있자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단 그려봐.”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에는 굉장히 정교한 그림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고 나서는 시간이 남아 두 번째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훨씬 단순하고, 가벼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하니 김은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첫 번째 그림을 그려서 두 번째 그림이 있는 거라고. 또 두 번째 그림을 그리기로 선택해서 이런 작품이 나온 거라고. 단순한 실습의 형태만으로 김은현 선생님을 만났지만, 그 시간을 통해 김은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후 김은현 선생님과의 수업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박석 교수님께 명상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명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건 바로 노래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약 2시간가량의 강의 내용을, 단 한 곡의 가사에 담아 부를 수 있다면 더 전달이 잘될 거 같아 노래를 만드셨다고 한다. 우리는 총 2곡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중에서 두 번째로 들은 곡의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 한반도 땅덩어리보다 더 큰 몸집을 지닌 물고기가, 꿈을 품은 그 물고기가 대붕이 되어 하늘을 나는 이야기. 노래의 이름은 물고기의 꿈이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있는 발아하지 않은 씨앗들. 마음의 밭에 심어진 가능성. 솔직한 한마디 감상들. 명상을 통하여 이러한 작고 놓치기 쉬운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매 순간 일상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삶의 노랫소리 속에서 내 마음이 불러오는 한줄기 작은 음색을 듣고 행하는 것. 명상이란 세미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소리. 그리고 이러한 소리를 따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이번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만난 스승님들이었다. 그렇게 박석 교수님과의 수업도 끝이 나고, 우리는 마당으로 나와 우리가 모신 스승님께 마지막으로 삼배의 예를 올렸다.
이로써 마침내 여행은 끝이 났다. 이번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배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답한다. 정확히는 한마디 말로 배움을 정의 내리는 것이 부질없게도 느껴져서다. 중요한 건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고, 말에는 담기지 않는 것들이다. 직접 실행하고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 중요한 거고, 그를 통해 떳떳이 일어서야 한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글쟁이들은 글을 쓰고, 말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것은 바로 존중으로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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