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전화를 하고 독려를 한 덕분인지 청량리역에서 12시35분에 출발하는 경춘선열차를 타야할 목나회원들이 12시 쯤에 이미 집합완료했습니다.
특히 이번 시낭송을 위해 전남 광주에서 부러 상경한 김동하 아우가 어찌 대견하고 반가웠던지요.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오후 2시 30분에 남춘천역에 도착하니 김미래 회원과 평소에 나더러 찜질방을 가자고 사뭇 졸라쌋던 여류시인 채한주가 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어 별 어려움없이 김유정 문학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문학촌에는 춘천의 시인들과 문학촌장이신 강원대학 전상국교수가 우리 일행을 뜨겁게 맞아 주더군요. 그날 입은 화상(火傷)이 아직까지 얼얼합니다만- 청중을 배제하고 시인들끼리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으려했다는 춘천문인협회장 김금분 시인의 인사말을 말고라도 참으로 오붓한 자리였습니다. 신문을 보고 일부러 찾아온 팬이 한사람 있기는 했지만 그정도는 문제가 안되었고요.
한시간 반 정도의 시낭송을 마치자 춘천에 사시는 주왕?교수 댁에다 가든파티를 준비했노라는 안내를 따라 입성을 하니 푸짐한 갈비살에 쏘.맥 양주까지 곁들여 정성껏 대접하는데 집주인 주교수님의 넉넉한 인품도 인품이려니와 진정으로 우리를 반기는 마음이 환히 드러나 보임에 우리 일행은 내집처럼 편하게 즐긴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내 미련한 소치로 잠자리를 마련하질 못한것이 흠이 되었네요. 춘천문인들이 사전에 잠자리를 물어오길래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호언을 했는데 주말이고 보니 여관 호텔할 것 없이 만원이던걸요.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찜질방이리는 곳을 들어가 보았답니다. 그런데 찜질방이 그런 곳인줄 정말몰랐는데요 사람 참 많데요. 나는 평소에 채한주시인이/선생님 우리 찜질방가요/라고 하길래 /이놈이 이거 날 유혹하나?/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남녀노소할 것없이 빽빽하다는 표현이 알맞았으니요. 잘자고 잘씻고 나오면서 나는 후배 조희범 아우에게 /내가 남자인걸 아우가 증언하게나/하며 웃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채한주 시인이 걸핏하면/서울에서 선생님을 남자로 여기는 여류시인은 한사람도 없을껄요/라며 자주 응석을 부렸기 때문이랍니다. 그게 내심 억울했던 나는 함께 목욕을 하며 내 알몸을 모두 점검한 조희범이 아우의 넉살을 빌려 내가 남자임을 밝히자는 음모였습니다. 어쨌던간에 찜질방을 나와 아침 해장부터 또 술을 시작한 우리 일행 5명은 백세주 세병에 쐬주 세병?을 까 넘겨치고야 소양호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려
기쁜 마음으로 안내역을 자청한 여류시인 채한주의 차에 몽땅 타고 룰루랄라 하며 소양호에 도착하니 주말에는 차를 댐 아래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걸어올라가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있었으나 채한주 시인의 유창한 미사여구에 녹아버린 안내원이 할 수 없다는듯 통과시켜주어 걷는 수고를 덜게 되었지요.
하늘에서는 싫지 않을만큼의 가랑비가 내리고 비치파라솔 아래서 또 술판을 벌리니 가히 주선(酒仙)들이라할 만하지 않은가요? 소양21호 주점의 주모?는 또 왜그리 미인이던지. 우리 대화를 듣던 주모는 일행들이 시인이라는걸 알고는 그렇게 싹싹하고 부침성있게 환대를 해 주더군요. 이름이 남궁순자라는 이 주모는 나이가 30대 중반 쯤이었을까? 정말로 아낌없이 주더군요. 물론 돈이야 우리가 내는 터수였지만 안주를 담아내는 그녀의 손끝에서는 기쁨이 묻어나더군요. 그녀의 싱글벙글 싱글벙글이 안주에 듬뿍쌓여 어찌나 맛이 있던지요. 한동안을 그렇게 마시다가 즉석 두줄시 짓기로 접어들어 한 편씩을 적었습니다. 아마 최병두 회장이 올릴테니 읽어들 주십시요. 그렇게 희희낙낙하는 가운데 손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춘천의 고전무용가 임춤입니다. 이름이야 따로 있지만 우리 목나회원들은 그녀를 임춤이라고 부른답니다. 왜냐하면 아시는 회원들은 아시겠지만 어느 해 가을 /여보게 내가 자네 무용을 보며 시를 쓰고 싶으니 춤을 추게나/해서 그녀는 아시아선수촌 공원에서 하루종일 춤을 추고 나는 시2편의 시를 썼는데 그 시가 임의 춤이어서 그녀를 임춤이라고 부르고들 있어요. 그건 그렇고 /선생님 어디계셔요?/ /응, 나 지금 소양호에 있네//어머, 저도 지금 소양호예요//그래 그랬군, 나 21호에 있어//알겠습니다/ 전화 뚝. 저쪽에서 서둘러 찾아오는 임춤을 내가 두손을 맞잡고 맞아들이니 술자리가 더 환해지는데 주정연 시인은 임춤을 수차 만났는데도 /누구시더라? 모르겠는데/로 반가움을 배가 시키면서 임춤을 놀려대더군요. 화기애애한 가운데 술자리를 마치고 고려건국당시 견훤과 왕건의 전투에서 열세에 몰린 왕건을 대신해서 목숨을 던진 충신 신숭겸의 묘를 찾아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춘천의 명물 닭갈비에 막국수, 그리고 또 동동주, 흐어흐어 술타령입니다. 당나라의 이백이 황하강물을 바라보며 평소에 내가 마신 술이 저만큼은 되리라고 했다더니 문사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전남 광주까지 가야하는 동하아우를 먼저 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YMCA 뒷편의 이숙진씨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梨園에 들려 또 맥주를 여나무병 해치우고야 헤어졌습니다.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광주의 아우 동하가 체팅들어와 /성님, 잘드러가셨슈?/ /응, 자네도 잘들어갔등가/로 시작해서 /그래, 참으로 죽기 딱 좋은 날이었어/로 체팅을 끝냈습니다. 보고를 끝내면서 그날 낭송했던 내 시를 올립니다.
-서해남부圖
여행은 詩를 아는 친구와 함께 하시게.
애인같은 궁항의 미끈하게 다듬어진 맨살에 실려
위島 지나 거륜島까지
왕복 도선비 아흔아홉냥을 속어림 해 보시다가 혹여 모자라거던
잘못 찾아든 먹댕기 도요처럼
둘이서 어둘녘 갈대밭이나 겅중거려도 무방하리.
두물과 석물 사이에 서서 혹은 앉아서
태고를 겹겹이 포갠 채석강 면전에서 너울대는 바다의,
저 극진한 찰라의,
푸른 물이 든 물방울의,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을 바른손 엄지로 꾹꾹 눌러 터뜨리며
손끝에 감지되는 무색의 염원이나 눈대중으로 넘겨 짚다가
禮스럽게 남아야 할 새벽의 아름다운 목숨이
외로운 금줄에 목을 메는 수평선 너머로
무명 한 폭을 만장처럼 걸고 가신 임 기다려
절창진 한평생을 이곳에 묻으셨다는
갯마을 홀엄씨의 싯피어린 사연이 출렁대며 일어서는
혼굿-
그 애끓는 남도唱이야
일러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깊어질 망정
돌아서시게나.
돌아서며 다시오마는 언약은 두지 마시게나.
비로소 찾은 서해남부圖.
그 서늘한 물빗살에 쓸리며라도 끝끝내 살아내야 할
우리네 몫 또한
저만큼은 도도한 파고(波高)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