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1)
1.
영화 <국제시장>은 손녀의 손을 잡고 국제시장 골목을 걷던 할아버지 덕수가 손녀로부터 느닷없이 “할아버지, 기억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1950년 한국전쟁에 대한 덕수(황정민 분)의 기억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후퇴를 거듭하던 미 해병대의 피난선을 흥남부두에서 타게 되는 지점에서 덕수의 기억의 방점이 찍힌다. 살기 위해 몸부림으로 피난선을 타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등에 업었던 여동생을 떨어뜨리게 되고(동생은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서 이산가족 찾기 행사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이 여동생을 찾기 위해 배 아래로 다시 내려가지만 배가 떠나버려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절박한 목소리로 아버지는 말한다.
“넌 아버지 대신이다. 이제부터는 네가 집안의 가장이다. 엄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의 웅변은 차라리 처절한 절규 자체였다. 무섭고 무거운 말씀의 뜻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아들이었지만 아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니 거의 반사적으로 “예, 알았어요”하며 꾸역꾸역 기억의 창고에 새겨 넣는다.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말이다.
이내 부산 국제시장 근처로 피난 내려온 덕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족들을 지켜 내기 위해 열심히 그야말로 열심히 살아간다.
구두닦이를 하던 덕수는 서울대에 합격한 남동생의 등록금과 학비를 벌기 위해 서독으로 광부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 그곳에서 시체 닦는 일을 하던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가 된 간호사 ‘영자’(김윤진 분)를 만나 연애를 하고, 광산의 붕괴 사고로 매몰되어 죽을 고비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어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뒤늦게나마 그렇게 원했던 대학교에 합격을 하였지만, 자신에게 물려준다고 하던 고모의 가게를 고모부가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려고 하자, 그 가게를 매입할 돈과 여동생의 결혼자금을 벌기위해 다시 월남전에 참전하려고 떠나려 한다. 그러자 아내는 " 왜 당신은 자신을 위해 한번도 살지 못하고 남을 위해서만 고생하는 삶을 사느냐,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구요" 라며 만류하지만 덕수는 흔들림 없이 이국으로 떠난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거나 살아갈 수 없었던 덕수의 힘겨운 인생살이.
덕수는 평생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장의 책무인 가족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잃어버린 동생과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또한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고모네 가게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여동생에 대한 기억의 명징한 세례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절규하는 아버지의 기억에 대한 응답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주인공의 한평생의 생활을 지배하는 바탕은 오로지 기억.
“넌 아버지 대신이다. 이제부터는 네가 집안의 가장이다. 엄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 에 머물러 있다.
그 기억이 약속이 되어 구두닦이도 독일광부도 월남 전쟁 참가도 감히 목숨을 걸고 도전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붙들고 잊지 않았음을 몸부림으로 온 몸으로 증명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기에 마지막에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을 붙들고 감히 이렇게 독백할 수 있다.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첫댓글 눈보라카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노래가 떠오릅니다. 화요반 갔다가 근처 cgv로 흡수하려는 오늘의 희망사항에 성공이 있기를..아들부터 잠에서 깨우기..
사실에 대한 기록인지, 기억하는 사실에 대한 기록인지, 기억되는 사실이 과연 객관적인 사실인지, 논란이 일고 있는, 뜨거운영화지요. 어떤 관점을 택하건, 한 개인의 입장에서 피눈물나는 절대선택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라 먹먹해지는 것은, 당시대의 끝자락을 조금은 알기 때문인 듯하네요. 우리가 아는, 이제 머리가 희끗해진 많은 영식이, 영희들의 가슴도 먹먹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