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천사/죽산
크리스마스이브에 네가 왔구나
네가 주고 간 사랑이 너무 커서
그리워 그리워서
천사가 되어 왔구나
해피야!
작가의 의도
17년을 키우던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와서 많은 행복을 주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선 이국 땅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게 되었다. 거의 3년 동안.
나는 매일 밤 뇌암에 걸렸다고 하며 잠을 못 자고 울었고, 남편도 잠을 못 잤다. 몸무게는 거의 45kg이 안 되게 빠졌고. 모든 생활은 리듬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 가서 MRI을 찍어도 별 이상이 없었고, 스페셜 닥터 정신과까지 가게 되었다.
공황장애와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다. 생활은 자꾸 피폐해지고 남편의 짜증 역시 자꾸 늘어만 갔다. 방학 때 작은 아들이 오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한국에서는 아빠랑 싸우는 걸 못 봤는데 왜 여기서는 싸워요? 영어 땜에 그래요? 힘들어서요? 형과 나 잘 하고 있잖아요."
영어는 여기서 태어 난 아이들도 자기들보다 영어 단어 모르른다며 엄마는 거의 50이 다되어 왔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모르는 것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도와 드릴테니 걱정하지말란다. 그 말에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아들만 둘 있는 내겐 작은 아들이 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작은 아들은 나를 안고
"우리 엄마 울보네…‥" 하면서 등을 토닥토닥해주었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고 나면 그 병은 영락없이 도졌다.
그러던 2002년 나와 동갑인 백인 여종업원의 권유로 강아지를 키워 보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강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시큰둥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 몰래 수소문을 해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시츄! 그 강아지를 품에 안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내 품에 안았을 때 처럼. 그 아이(강아지)를 안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나는 그 강아지를 안고 그 보드라운 털에 얼굴을 묻고 콧물 눈물 범벅이 되게 울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처음 안은 그 강아지가 내 품이 엄마 품인 양 얼굴을 폭 묻고 가만히 있었다. 강아지가 엄마 떨어져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져 다시 꼭 껴안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할머니는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피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그 백인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한참 뒤에, 족히 3~40분은 됐지 싶다.
"Are you OK? Do you like this puppy?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영어로 나의 의견을 타진했다. 그 할머니 말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로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말도 못 하고 크게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할머니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사실 네 마음에 들 줄 알았다. 네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하며 돌아갔다. 나는 강아지 이름은 짓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새벽 세시쯤, 자다 말고 꿈속에서 강아지 이름이 생각났다.
"해피!"
곤히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 강아지 이름 '해피'야!"
남편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해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우리는 매일 수십 번 수백 번 행복(Happy)이라는 그 단어를 큰소리로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거짓말같이 두통이 사라졌다. 그 아인 우리 집에 웃음을 찾아주었다.
"해피야! 고맙다. 하늘나라에서도 귀여움 받고 있지?'
9월 30일 로키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산행 중에 이 눈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정말 해피가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다카시로 써보았다.
첫댓글 아 그리운 해피
네. 지금도 내가슴속에 살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