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리아 여인은 바로 우리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 우리 모두는 육신의 목마름, 인간관계의 목마름, 영혼 구원과 관련된 영적 목마름을 느끼며 살아간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육신의 목마름을 느낀다. 수많은 이가 취업난 속에서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가슴 졸이며 살아간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정서적으로도 목마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조각난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위로와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한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을 때 욕구불만과 정서불안에 시달리며, 나아가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자기부정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가.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세상에 가장 만연된 질병이 우울증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도 우울증 약이다. 에펙서-XR이나 프로작과 같은 우울증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이가 많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 저에게 그 물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고 물을 길으러 여기 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는 고백은 바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절망적 외침이요 간절한 기도인 것이다.
만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의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것은 우리 자신한테도 던져야 할 물음이다. 만일 그때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만일 그대 내가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그동안의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의 삶은 더 비참했을 것이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결코 좋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동거 중인 남자가 그녀를 버리면 다시 보호자가 될 새로운 남자를 만났을지는 의문이다. 속절없는 세월과 함께 나이는 들어가고, 남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매력도 미모도 사라져 갔을 테니 말이다. 만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죽었다면 아마도 그녀의 묘비에는 다음과 비슷한 내용의 묘비명이 새겨졌을지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 잠들다.
허나 쉬지는 못하다.
사랑하다.
허나 사랑받지는 못하다.
즐겁게 해주려 애쓰다.
허나 즐김을 받지는 못하다.
그렇게 살았듯이 그렇게 죽다.
외롭게 살았듯이 외롭게 죽다.
이것은 실제 미국 텍사스 로크 힐 공동묘지에 있는 한 여인의 묘비명이다. 우리는 이 묘의 주인이 어떻게, 또 얼마나 힘겹게 살다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묘비명을 통해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묘의 주인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과 진정한 만남을 가졌더라면, 외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영적으로는 기쁨과 희망을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이렇게 허망한 묘비명을 남기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