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건 무엇보다도 당장의 군사력입니다.
아무리 넓은 땅과 무수한 곡물이 나는 기름진 땅이 있다해도 당장의 군사력이 모자라면 내일 아침에는 그 땅이 강한 자의 손아귀에 들테니까요.
고구려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넓긴 했지만, 그 자그마한 인구로도 북방을 제패했던 이유가 그 강대한 군사력에 있었지요. 당서에도 보면 가장 천한 문지기도 5살 때부터 경당에 가서 책을 읽고 활을 쏜다고 합니다. 5살 때부터 벌써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는거지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그렇듯 남동쪽의 기름진 땅을 가지고 무수한 인구를 가졌지만(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당시 수나라는 인구 1천만호, 고구려는 인구 26만호), 번번히 고구려에게 패배를 맛봐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군사력에 있었던 점이지요.
국사 교과서에는 고구려가 아주 조그맣게 나옵니다. 만주조차도 1/3 로만 지배한걸로 나오는 어이없는 우를 범하지요.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세력권은 북쪽으로 어마어마했을겁니다. 그 북쪽 넓은 숲이 고대에는 엄청난 자원꺼리이지 않습니까? (철 광산이나 엄청난 양의 목재. 단단하기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이런 고구려도 말년에 가서 정말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영류왕 본인의 외교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우를 범한거지요.
나라를 반으로 쪼갠 실책.
고구려 멸망에 앞장섰던 설인귀, 소정방, 그리고 연개소문에게 죽은 방효태. 이들은 원래대로라면 고구려 동맹국인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허나 무식하던 영류왕은 자기 동맹국이 나가떨어지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고구려를 1차로 지켜주던 이들이 오히려 고구려와 맞대고 제일 먼저 돌격해가는 적들로 변하였지요.
원래대로라면 한족의 침입에 다같이 싸워야 할 이들이 한족과 합하여 쳐들어오는 형세입니다. 그래도 고구려는 고구려인지라 높은 성(요동성 30m)에 의지해 당 태종을 주필산과 안시성에서 혼내줍니다. 당 태종이 비단을 하사했다고 중국 사서에 쓰여있는데 이 또한 추격해오는 고구려군을 잠시 늦출라고 비단을 뿌린거라는 해석이 주입니다.
사실 당이 막 들어서고, 티벳 세력이 고구려에 장안을 들이치자고 제안할 때가 고구려의 엄청난 기회였지요. 이걸 뿌리친 영류왕과 덕분에 망해버린 티벳. 그 티벳이 당에 흡수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하는...
결국 이런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최후의 전쟁 때의 양상을 보면
고구려가 티벳 세력과 말갈 세력, 선비 세력, 한족의 세력, 신라의 세력, 거란의 세력을 모두 맞아 싸우는 형세가 됩니다. 그래도 고구려다보니 3번의 커다란 전쟁 중에 2번은 이겼다만, 결국 마지막에 패하여 멸망하지 않습니까? (이후에 이들 연합 세력은 갈리고 다시 발해로써 뭉치긴 하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6~7세기 고구려의 인구, 26만호라...
티벳은 망하지 않았지요. 티벳은 당이 세워질 무렵 송첸감포라는 명군이 등장해 티벳 전역을 통일하고 전성기에 들어갑니다. 장안 정복은 안녹산의 난 때의 일이빈다